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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무를 다하려면 분노하라
인간의 의무를 다하려면 분노하라
  • 김선진
  • 승인 2021.07.09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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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의 재미_『분노하라』 | 스테판 에셀 지음 |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88쪽

 

증오는 적개심이지만 분노는 약자 위한 투쟁
전 세계에 ‘분노 신드롬’을 일으켜 행동으로 이끌다

역사를 읽어보면 세계사든, 지역사든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에는 예외없이 분노가 있다. 권력의 부당한 억압과 불의에 맞서게 한 에너지의 근원은 항상 분노였다는 사실이다. 유명한 사회운동가이자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였던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그런 점에서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위기의 시대에 상생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지구적 시민들의 잠자는 의식을 일깨우기에 시의적절한 책이다.

책이 출간된 스토리를 알면 흥미롭다. 1917년생인 에셀이 아흔두 살이 되던 2009년, ‘레지스탕스의 발언’ 연례 모임에서 행한 즉흥 연설이 계기가 됐다. 그의 연설에 감동한 지역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연설 내용을 책으로 만든 것이다. 출간된 후 프랑스에서만 7개월여 간 무려 200만 부가 팔렸고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간되면서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났던 반정부 시위 ‘아랍의 봄’을 비롯, 전 세계에 이른바 ‘분노 신드롬’을 일으켰을 정도로 책의 영향력은 심대했다.

출판된 지 10년도 더된 책이 지금도 여전히 유용한 이유는 세계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와 금융권력의 글로벌 지배로 국가간, 계층간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극우 정권의 집권으로 쇼비니즘(맹목적 자국 이기주의)이 일반화되면서 약자에 대한 억압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배경이다. 

 

쇼비니즘 확산에 경종을 울리다

원서는 저자의 머리말과 직접 쓴 본문을 포함해 불과 34페이지밖에 안 되고 우리말 번역서도 저자 인터뷰 등을 포함해 88쪽에 불과한 팸플릿에 가까운 가벼운 책이다. 이렇듯 단숨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은 내용이지만 이 책은 한 글자도 버릴 게 없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요약하자면 양극화, 차별, 인권 탄압 등 부당한 정치, 경제, 언론 권력에 대한 저항과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다.

제목을 보고 자칫 오해하기 쉽지만 이 책에서 그는 ‘증오하라’고 말하지 않고 ‘분노하라’고 말한다. 증오는 적에 대한 적개심에서 비롯되지만, 분노는 약자에 대한 연민과 부당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비롯된다. 증오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서로 원수를 만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귀결되지만, 분노는 사람이 아닌 문제를 대상으로 하고 공동선을 목적으로 삼는다.

일찍이 ‘악의 평범성’을 갈파한 한나 아렌트는 ‘무사유’를 죄로 규정했지만 스테판 에셀은 ‘무관심’을 죄로 규정한다.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는 것을 근원적 문제로 지적했지만 에셀은 생각하더라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라 본 것이다. 에셀은 “분노와 참여를 차단하는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러한 무관심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우리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한 위기는 코로나가 아니라 천부인권에 대한 불의한 권력들의 억압이다. 이를 해결하는 길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건강한 분노, 의로운 분노라는 점을 저자는 역설한다. 그가 한 다음 말이 이 점을 한마디로 압축한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

 

 

김선진
경성대 교수·디지털미디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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