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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역사를 리부팅하다… 싱가포르의 ‘고대사’ 연구
[글로컬 오디세이] 역사를 리부팅하다… 싱가포르의 ‘고대사’ 연구
  •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조교수
  • 승인 2021.07.06 0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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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_서강대 동아연구소

1819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스탬포드 래플스가 말레이반도의 끄트머리에 있는 섬에 발을 디뎠을 때, 이 섬은 ‘발견’된 것일까, ‘침략’당한 것일까.

이는 언뜻 사소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지금은 싱가포르라 불리는 이 지역 역사의 시작을 200년 전 대영제국의 식민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그 이전 현지인들의 삶으로 볼 것인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일차적으로 역사학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정체성 문제와 깊이 연계되어 있기에 해당 국가 공동체의 정치와 사회, 문화와 같은 영역에서도 중요한 이슈가 될 수 있다.

 

래플스가 상륙한 지점에 설치된 그의 동상. 싱가포르 내에는 그를 상징하는 명칭들이 곳곳에 있는데, 호텔, 교육기관, 쇼핑몰, 도로명, 지하철역 등 다양하다. 사진=위키커먼스
스탬포드 래플스가 상륙한 지점에 설치된 그의 동상. 싱가포르 내에는 그를 상징하는 명칭들이 곳곳에 있는데, 호텔, 교육기관, 쇼핑몰, 도로명, 지하철역 등 다양하다. 사진=위키커먼스

 

싱가포르 대표 정당인 인민행동당(PAP)의 발기인 중 한 명이자 오랫동안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저명한 정치인, 라자나트남(S.Rajaratnam)은 1987년 일찍이 “싱가포르의 과거는 기억할 것이 없어 대부분의 싱가포르인들이 그 역사에 대해 무관심함”을 한탄한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인구 구성상 싱가포르는 그 식민의 시작부터 꾸준히 중국계, 인도계가 유입되어 소수의 말레이인들과 공존하는 다인종 지역이었고,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으로부터 독립하여 건국됐을 때에도 인구의 대부분, 심지어 말레이인들조차 외부에서 유입되어 들어 온 이주민들의 후손이 세운 공동체였다. 그런 이유로 식민시기는 물론이고, 독립한 이후 공화국 시기에도 싱가포르 내부에서조차 그 역사의 시작을 1819년 영국의 싱가포르 발견으로 보아왔고, 그 이전에는 그저 소수의 말레이계 원주민들이 거주면서 테마섹, 싱가푸라 등으로 불렸다는 정도만 서술할 뿐이었다.

 

이민자로 구성된 디아스포라 도시국가

 

한 국가의 역사가 200년 전 영국의 식민지로 시작한다니 그 구성원들이 재미없어할 만하다는 생각도 들고, 냉전과 신자유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서울보다 조금 큰 면적의 섬과 몇 백만에 불과한 인구를 가지고 정글과도 같은 국제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정치인들에게는 국가 통합을 방해하는 장애물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옳고 그름을 떠나 유구하고 일원화된 것처럼 서술된 역사가 민족의 구성과 통합 논리에 얼마나 유용한지는 동아시아의 수많은 정치인들이 이미 증명한 바 있다. 싱가포르는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영어 공용화, 석유와 천연가스 등 동서 자원 무역의 중개, 금융 및 관광 허브 구축, 특유의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인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계와 연계된 거대한 중국시장의 존재 등을 통해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부자국가로 성장했지만, 역사 서술에 있어서 만큼은 ‘디아스포라 도시국가’라는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1819년 항구 건설 노동자에 의해 발견된 싱가포르 스톤. 발견된 것은 전체 석판의 일부로 문자는 아직 해독되지 않았지만, 고대 자바어 혹은 산스크리트어로 추정된다. 늦어도 13세기, 빠르면 10세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2006년 싱가포르 11대 국가 보물 가운데 하나로 지정된 바 있다. 인도네시아 마자파힛 왕국과의 연계를 짐작하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다. 사진=위키커먼스
1819년 항구 건설 노동자에 의해 발견된 싱가포르 스톤. 발견된 것은 전체 석판의 일부로 문자는 아직 해독되지 않았지만, 고대 자바어 혹은 산스크리트어로 추정된다. 늦어도 13세기, 빠르면 10세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2006년 싱가포르 11대 국가 보물 가운데 하나로 지정된 바 있다. 인도네시아 마자파힛 왕국과의 연계를 짐작하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다. 사진=위키커먼스

 

그러나 21세기 들어 1819년 이전, 즉, 식민 이전의 역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최근에는 그 역사를 14세기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싱가포르의 역사가 200년이 아닌, 700년에 달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는 학계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다. 사실 14세기는 수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두 이웃 국가인 중국, 인도와 비교했을 때 그리 긴 역사도 아니고, 세계사적으로 봐도 근세에 해당하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역사가 200년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왔던 싱가포르인들에게 700년 전의 역사는 가히 ‘고대사’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확장이다. 소수의 말레이 현지인과 그보다 더 적은 중국, 인도, 아랍계 상인들로 구성되었을 것으로 예측되는 싱가포르의 ‘고대인’들은 별달리 남긴 기록문자도 없었기에 그 실체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진 바도 없었다. 그들의 존재가 확실하게 드러난 계기는 바로 땅속으로부터였다.

 

관이 총괄하고 학이 주도하는 역사재건

 

싱가포르와 관련된 고고학적, 문헌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1300년대 이후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대표적 고고학자가 바로 싱가포르국립대학의 존 믹식(Jonh Miksic)이다. 그는 실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1300년대 이후 싱가포르섬의 실제적 교역 상황과 지위 등을 분석해 오고 있다. 이러한 학계의 연구성과는 그대로 정부의 정책에도 반영되고 있는데, 주로 동남아시아 내외부 국제질서나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사회과학 중심 국책연구기관인 ‘동남아연구소(ISEAS)’ 산하에 2019년에 설립된 ‘테마섹 역사연구센터(Temasek History Research Center)’가 그 증거다. 싱가포르의 과거 명칭인 테마섹에도 드러나듯, 해당 센터는 “전근대 싱가포르의 역사, 주변 지역과의 경제적, 사회문화적 연계, 교역중심지로서의 역사적 역할” 등을 입증할 고고학적 발굴과 연구에 중점을 두고 설립되었다. 아울러 그 연구성과들을 싱가포르 역사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들에게 전달하려는 목적도 있다. 싱가포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역사의 확장을 통한 국가 통합을 꿈꾸며 각지에서 땅을 파고 있다.

 

싱가포르 국립대학 캠퍼스 내에 위치한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SEAS) 전경. 국책연구기관이자 국제정치, 사회, 경제 관련 사회과학 연구를 지향하는 이곳에 최근 싱가포르의 고고 발굴을 총괄하는 고고학 연구센터가 설립되었다는 사실은 싱가포르의 고대사가 단순히 역사학의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출처=위키커먼스
싱가포르 국립대학 캠퍼스 내에 위치한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SEAS) 전경. 국책연구기관이자 국제정치, 사회, 경제 관련 사회과학 연구를 지향하는 이곳에 최근 싱가포르의 고고 발굴을 총괄하는 고고학 연구센터가 설립되었다는 사실은 싱가포르의 고대사가 단순히 역사학의 차원에서 다루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출처=위키커먼스

 

 

김종호

서강대 동아연구소 조교수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전시기(1937-1949) 화교 송금과 화교 기업가의 대응’을 주제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이후 남중국해를 사이에 두고 중국 화남지역 교향과 동남아시아 화교화인 공동체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주요저서로 『화교 이야기: 중국과 동남아 세계를 이해하는 키워드』(너머북스, 202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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