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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치인을 존경하는 이유
내가 정치인을 존경하는 이유
  • 김소영
  • 승인 2021.07.15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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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이준석 현상은 신념윤리의 중요성을
180석 민주당은 책임윤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김소영 편집기획위원(카이스트 교수)

오래 전 유학 가서 대학원 공부를 시작할 때 읽은 논문 중 인상 깊었던 서두가 있다. 『집단행동의 논리』로 유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맨서 올슨(Mancur Olson)이 민주주의에 대해 쓴 논문이었다.  『집단행동의 논리』는 집단행동의 딜레마, 즉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동이 구성원의 무임승차로 인해 실패하는 현상을 분석한 저작으로 10여 개국에서 번역될 만큼 널리 읽혔다. 

올슨의 논문은 사회과학 논문으로는 특이하게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담은 서두로 시작한다. 올슨이 나처럼 대학원 시절에 연구차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인상 깊었던 만남을 쓴 것이다. 

이탈리아는 우리처럼 지역 간 불균형이 심한 나라다. 남부의 낙후된 섬에서 태어난 안토니오 그람시가 북부의 공업 도시 토리노에서 활동하면서 쓴 『남부 문제』에서 다룬 것처럼 이탈리아는 한 국가에 이질적인 시간과 역사적 경험이 공존하는 곳이다. 올슨이 경제학 전공자로 민주주의 문제에 천착하게 된 계기가 바로 남부의 어느 마을에서 촌장을 인터뷰하게 된 덕(탓?)이었다. 

촌장은 요즘 유행하는 민주주의가 무엇인고? 라고 물으며 자신이 평생 살아보니 뭐니 뭐니 해도 왕국이 최고라고 어린 대학원생에게 훈수를 두었다. 민주주의에서는 모두가 주인이라는데 그럼 아무도 나라를 관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왕국에서는 나라가 자기 것인데 왕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가꾸겠는가. 

이 촌장의 말에 미국 시민으로 뼛속까지 민주주의가 당연했던 올슨은 큰 충격을 받았다. 올슨은 이후 모두가 나라의 주인인 민주주의가 과연 어떤 정치체제인지에 대한 연구에 천착하여 집단행동을 새로운 연구 분야로 개척했다.

내가 정치인을 존경하는 이유는 바로 모두가 주인이라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정치체제에서 나라를 챙기려고 나서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 사느라 바쁘고 힘들어서 웬만해서는 모두를 위한 일에 무임승차할 것이다. 형편이 된다 해도 귀찮아서 무임승차하거나 아예 형편이 되지 않아 무임승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정치인에 대한 신뢰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세계경제포럼의 세계경쟁력보고서에 따르면 7점 척도에서 정치인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 수준은 2.53점인데, 우리가 늘 벤치마킹하는 선진국은 4.5~5점대(미국 4.85, 영국 4.81, 독일 5.14, 스웨덴 5.24)이고 주변국도 3~4점대(일본 4.51, 중국 4.47, 러시아 3.43)이다. 우리와 같이 2점대인 나라들은 대부분 남미와 아프리카 개도국이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이 가진 근본적인 딜레마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 사이 갈등이라 지적했다. 신념은 옮고 그름에 대한 확신으로, 요즘 언어로 표현한다면 ‘성장’이든 ‘공정’이든 ‘자유’든 바람직한 사회란 어떠해야 한다는 믿음이다. 책임은 성과 혹은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요즘 우리 사회에 빗대면 부동산, 입시, 비정규직, 지방 소멸 등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책임지는 능력이다. 이 둘이 갈등 관계인 것은 당연하다. 신념만 따라서는 성과를 얻을 수가 없고, 반대로 성과만 쫓아서는 비전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의 이준석 현상은 책임을 떠나 신념이 얼마나 소중한 정치인의 윤리인지 보여주고 있다. 180석 민주당은 신념을 떠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 정치인의 윤리인지 보여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임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정치인이 존경스럽지만, 이 둘을 갖춘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존경받아야 한다.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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