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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물질문명과 재앙, ‘소박의 미학’으로 치유
현대 물질문명과 재앙, ‘소박의 미학’으로 치유
  • 유무수
  • 승인 2021.07.30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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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기교 너머의 아름다움』 최광진 지음 | 현암사 | 320쪽

소박의 미학이 외면받은 건 천박한 배금주의 때문
우리 전통 예술에 담긴 무위자연의 정신성에 주목

저자는 한국 전통 미술작품의 다양한 영역에서 공통적으로 흐르는 정신이 ‘소박의 미학’임을 통찰했다. 소박의 관점으로 바라보니 중국, 일본, 서양의 화려해 보이는 예술에 깃든 인위적인 기교가 선명해졌고, 초라하고 산만하게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보였던 우리 전통 예술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무위자연’의 정신성도 뚜렷해졌다. 

중국 하남성의 「숭악사탑」은 12각 15층에 높이가 40미터이며 섬서성의 「합십사리탑」은 높이가 148미터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는 서양의 고딕 성당처럼 숭고함을 표현한 것이다. 숭고하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이 굉장하다는 의미이다. 반면, 한국의 석탑은 장식적인 요소를 최소화하고 4각 3층으로 가장 간단한 골격만으로 추상조각의 정신성을 담아내고자 했다. 여기에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조화를 아름답게 여김으로써 인위가 절제되는 ‘소박의 미학’이 반영되었다. 

세계화의 대세에서는 어떤 인위적인 기교가 자연을 착취하고 정복했을지언정 인간의 위엄을 드높였다면 능력 있다는 동경의 시선을 받았다. 소박의 미학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독백처럼 설득력이 없었다. 저자는 이러한 경향은 배금주의에서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보다 돈 많이 버는 학과로 몰리고, 자아실현보다 빌딩주를 꿈꾸는 천민자본주의로 전락했다.” 그리고 불안하고 공허하다. 그저 돈을 많이 벌어야만 숭고해질 수 있다는 시대의 선전과 유행에 휩쓸렸기 때문이다.

과학문명과 자본주의는 온갖 기교로 숭고해지는 것을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은 특별히 존중할 대상이 아니며 수단일 뿐이다. 이러한 탐욕이 담긴 세계화가 확산되는 추세에 비례하여 자연은 지속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으로 훼손되고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거대한 직격탄을 맞고 나서야 전 세계가 얼떨떨해하며 주춤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에는 한국 전통의 건축(풍수지리, 정원, 한옥, 석탑)과 공예(고려청자, 분청사기, 조선백자, 막사발, 목가구), 그리고 문인화(사군자, 화훼영모화, 산수화, 서예)와 관련한 200여 점의 미술작품 사진이 실렸다. 저자는 서양과 중국과 일본의 작품 사진도 실어서 우리나라 작품과의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소박의 미학’이 무엇인지 설명한다. 한국 특유의 소박미를 현대 미술로 계승한 작가들(김환기, 김종영, 윤광조, 이우환)은 마지막 장에서 소개하고 있다. 이는 서양문화를 받들어 모시며 모방하지 말고, 한국적인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고 융통성 있는 변화를 해나가자는 저자의 의지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맺음말에서 저자는 현대 물질문명의 부작용을 치유할 종합백신은 바로 ‘소박의 미학’이라고 강조했다. 

<교수신문>과 서면 인터뷰에서 저자 최광진은 “문화는 차이를 통해 가치를 갖는 것이고, 한국 고유의 미의식이 문화의 시대를 이끄는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있어서 당연시 했던, 한국 전통의 독특하고 탁월한 강점은 ‘소박의 미학’임을 증언했다. 세계화가 ‘소박의 미학’을 신중하게 고려했더라면 그다지 맞고 싶지 않은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예약까지 해가면서 맞아야 할 생태계의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고유의 ‘소박의 미학’에는 시대를 초월한 선지자의 감성이 깃들어 있다. 홍익대 초빙교수이며, 호암미술관 큐레이터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저자의 설명은 무덤덤하게 보였던 우리 전통미술 작품에 어떤 소박미가 깃들어 있는지 드러낸다. 그리하여 미술 문외한도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신명’과 ‘해학’의 미의식에 이어 이번 책을 통해 ‘소박의 미학’을 조명한 저자는 불화나 불상 같은 종교미술을 통해 ‘평온의 미학’을 다룰 예정이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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