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중국영화에 관한 비평문 한 편을 번역했다. 저자가 의도한 의미를 최대한 유추해서 비슷하게 전달해보고자, 이 문장의 뉘앙스가 어떤지 몇 가지 선택지를 만들어 중국인 친구를 괴롭히기까지 했다. 영화 언어에 대한 나의 무지도 한몫 했겠지만, 영화를 보지 못한 상태로 그에 대한 글을 번역한 건, 관련 어휘 등을 찾아보는 과정이 곁들여지며 과장 조금 보태면 ‘미지의 탐험’이었다.
비평문을 쓴 사람과 그 글을 번역하는 나 사이에는 끊임없는 미끄러짐과 겹침이 존재했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번역문을 윤문하던 편집자 역시 몇 가지 단어 의미를 확인하고자 상의해왔다. 중국어를 읽을 수 있지만 영화를 보지 못한 나와 영화를 봤지만 중국어를 모르는 편집자 사이에 오고 간 미끄러짐과 겹침은 이 글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 아무리 원문 그대로를 번역한다 해도 나는 그 글에 내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흔적을 남기며 번역했을 것이다. 편집자 또한 그 과정을 겪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편집이 완료된 글을 읽는 독자 또한 미끄러짐과 겹침을 반복하다 자신만의 흔적을 남길 수도 있지 않을까.
의미의 미끄러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여러 층위에 또 다양한 방면에 빈번하게 일어난다. 중국과 관련된 이슈도 그러하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한・중 문화 갈등을 바라보면 ‘이슈를 만들어내고 싶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효리가 던진 “마오 어때요?”라는 발언, BTS의 밴플리트상 수상 소감, 김치의 국적 찾기 그리고 중국 배우의 이름 스타일 등 양국 사이의 이슈는 끊임이 없다. 작게는 단어와 문장에서, 크게는 사회・문화 양식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분명한 것은 이런 이슈가 정치도 경제도 아닌 대중문화콘텐츠와 연관되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효리의 짧은 발언에 대한 중국의 반향은 해당 예능 프로그램을 봤기 때문에 생겨났을 것이고, 중국 배우 이름이 한국식이네 라는 반응 역시 중국 드라마 소비를 통해 장수잉(江疏影)이라는 연예인을 알게 됐기에 일어난 관심일 테다. 그만큼 우리는 국가적 경계를 허물고 문화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 다만, 콘텐츠를 콘텐츠로만 소비할 뿐 상대 문화에 대한 이해는 깊지 못하다. 혹은 그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하려 하지 않는 걸 수도 있다.
이런 문화적 갈등을 부추기는 것에 미디어도 책임이 적지 않다. 지난해 겨울, 중국에서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 기구 ISO에 등재됐다고 보도하며, 그 불똥이 한국 미디어에까지 이어졌다. 마치 중국 파오차이의 ISO 등재로 인해 김치가 중국 것이 된 것인 양 보도했다. 김치와 파오차이는 엄연히 다르지만, 이는 명칭의 혼용에서 생겨난 오해이다. 이 오해를 중국은 교묘하게 활용했고, 한국은 이를 가져와 부풀렸다. 나는 미디어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자 이 이슈를 끄집어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문화 갈등 이슈를 접할 때 유연한 사고와 사실관계 확인이 동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데리다는 그라마톨로지에서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텍스트 내부에 숨겨진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를 더 꼼꼼히 살핀 재문맥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무궁히 사유할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유할 힘은 의미의 미끄러짐, 즉 문자의 여백에서 생겨난다.
우리가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접하고, 그 정리가 전부인 양 인식해버리면 그것이 모든 것이 되고 내가 사유할 수 있는 빈틈이 사라진다. 그것은 현전의 감옥이 될 수 있다. 미디어를 통해 끓어오르는 이슈에 접근하고 이를 비판 없이 해석한다면 사유가 없는 현전의 감옥에 갇힌다. 전달되는 것이 전부가 되고 여백이 사라지고 그가 제시한 의도대로 그 사유대로 뒤따르게 된다. 이것은 무언가를 새롭게 읽어낼 힌트가 없는, 정답이 정해지고 정리된 공간이다.
크고 작은 갈등은 어쩌면 무지에서 비롯된 댓글에 의한 것이고, 강력하게 작용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의 반향일 수도 있다. 또는 사실관계 확인을 게을리한 결과일 수 있다. 다만 문화라는 것은 물처럼 흐르기 때문에 고체적 사고의 액체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경계 없는 세계를 영위하고 있는 오늘날, 익숙하지 않은 문화를 대할 때 유연한 사고를 위한 배려가 필요하고 때로는 성실함이 요구되지 않을까.
오소정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 책임연구원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에서 한국과 중국의 예능 콘텐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원대와 한국외대에서 중국과 문화콘텐츠 분야를 통해 학생을 만나고 있다. 친절한 연구자 소임을 다 하기 위해 콘텐츠를 읽고 문화를 관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