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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위의 악법
헌법 위의 악법
  • 이지원
  • 승인 2021.08.11 15: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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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지음 | 삼인 | 388쪽

 

1948년 제정된 가장 오래된 악법,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 

이 책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1948년 12월, 이념적 대치가 심한 특별한 상황에서 임시법 형태로 제정된 이후, 몇 차례의 개정 및 폐지 논란 속에서도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그 효력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하는 보편타당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기획하고 원고 집필에 주체적으로 참여한 이들은 스스로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의 변론의 역사는 곧 민변의 역사”라고 밝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이 개인의 인권과 국민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시대착오적인 악법이라는 신념하에 사회 각 분야에서 남용된 적용 실태 및 악용 사례와 법리적 근거 등을 제시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의 당위성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발간사에 들어 있는 아래의 글을 보면 국가보안법 폐지를 완수해야 할 민변의 투철한 신념과 소명의식이 느껴진다. 

민변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시대적인 요청인 동시에 사명으로 인식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천명하고자 이 책을 기획·구성하는데, 1부에서는 국가보안법 제·개정의 역사, 폐지 운동, 적용 실태를, 2부에서는 국가보안법이 가진 인권 침해 요인과 그것이 실제적으로 드러난 구체적인 악용 사례를, 3부에서는 가장 악명 높은 ‘제7조’가 왜 위헌이고 폐지 대상일 수밖에 없는지를 밝히는 다양한 근거를 조목조목 논거로 제시하는 데 할애한다. 

 

바로 지금이 국가보안법 폐지의 네 번째 기회 

이 책의 저자인 민변은 제정된 지 73년이 지난 국가보안법을 ‘가장 오래된 악법’, ‘헌법 위에 존재하는 악법’으로 규정하면서 그 폐지의 필연성을 논리적으로 개진하는데, 책 서문에 국가보안법을 바라보는 민변의 입장이 아주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민변은 본론을 서술하기에 앞서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이후 이를 폐지할 수 있었던 기회가 세 차례나 있었음을 소개한다. 이를 요악하면, 1948년에 여순사건 때문에 급히 만들어진 국가보안법이 “처벌되었어야 할 반민족행위자들이 권력에 재진입하기 위해 되살려낸 일제 신민 통치의 유산”임을 전제하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고 일제의 구 형법을 대체할 새로운 형법을 제정하는 1953년이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수 있었던 첫 번째 기회였고, 두 번째 기회는 1990년 사회주의권 국가가 몰락하고 냉전이 와해되면서 찾아온 남북 교류의 장이 열렸을 때로 국가보안법의 논리적 근거가 상실되었을 때를 꼽는다. 하지만 여전한 정치세력화된 반공주의자들의 조직적 방해 끝에 좌절되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 기회는 2004년 노무현 정부의 여당이 국회 과반 이상을 차지했을 때로, 대통령이 직접 “국가보안법이라는 낡은 칼을 칼집에 넣어 박물관에 보내야 한다.”는 말까지 했는데도 국회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폐지보다는 개정 쪽으로 방향이 틀어지면서 끝내 불발되었다는 것이다. 

민변은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의 역사와 실패를 되짚으면서 2015년 헌법재판소에서 심사한 국가보안법 위헌 심의에서 비록 합헌 결정이 나긴 했지만 3인 재판관이 위헌 소견을 밝힌 바 있고, 2021년 5월 국가보안법 폐지 청와대 청원에 10만 명 이상의 국민동의가 있었으며 그 직후 국회에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이 발의된 지금이 국가보안법 폐지의 네 번째 기회라고 말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의 시대적 요청을 역설한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자 증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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