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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할 만한 총장은 없었다
존경할 만한 총장은 없었다
  • 김정휘
  • 승인 2021.08.25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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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김정휘 춘천교대 명예교수·교육심리학

거인 총장의 모습이 그립다. 분야나 영역에서 출중한 위업을 성취하고 대학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공로를 남긴 인물이 현시대에 필요하다. 예를 들면, 현재의 대학 발전에 획기적 공헌을 한 분이 강원대학교 전임 총장인 이상주 박사인데 그럼에도 아직 대학 측과 교육계에서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한 움직임이 없어서 아쉽다. 그리고 교육계의 거인이셨던 이영덕(1926∼2010) 서울대 교수(교육학과), 정원식(1928∼2020) 서울대 교수(교육학과)도 그 적임자이다.

교수가 대학사회에서 보직을 맡아서 대학총장과 같은 권력자가 되면 총장의 신분에 어울리는 언행을 하게 된다. 총장이 되면 평교수 시절의 모습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서 위엄과 권위, 융통성보다도 완고하고 경직된 원칙 고수자가 되어서 주위에서 사람이 변했다는 비난을 받는 사례가 많다.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인물과사상사, 2020)는 예리한 비판적인 담론과 사회 정치 문화적 통찰력으로 실존 지능 문제를 논평한 바 있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펴낸 양서의 제목인데, 함의에 공감하는 바가 있어서 이 기회에 관련된 논평을 한다. 정치외교, 교육계와 종교계에서 지도자로 행세하는 권력자는 엘리트는 아니다. 강준만 교수는 “권력자가 자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해악”이라는 논거를 자신의 저서에서 밝혔다. 필자도 재직한 대학교에서 함량 미달의 총장급 폴리페서(polifessor)의 허위의식과 일탈, 위선을 경험한 바가 있다. 

미국의 탁월한 정치가인 헨리 키신저는 권력에 중독된 폴리페서들이 최음제에 취하는 걸 경고했다. 그런 폴리페서들은 키신져의 충고를 감식하는 통찰력도 부족하다. 이런 인물이 총장이 되면, 대학의 존재이유를 망각하고 지성의 전통과 창의성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존중해 주기 보다는 어설픈 관료화 행정으로 대학 행정과 교수들을 장악하려고 행정가 기질을 발휘한다. 그래서 거인 총장의 처신보다 졸렬한 서무과장형 인물이 된다. 직선제 총장에게서 발견되는 과거의 대학 행정의 문제점을 개혁하기보다는 신임 총장으로서 권력의 장악을 시도하는 데 있다.

폴리페스가 드러내는 허위의식과 일탈

또한 『지식인의 두 얼굴』(폴 존슨 지음, 윤철희 옮김, 을유문화사, 2005)은 역사와 사상 문화 철학계, 문학계에서 거인이고 저명한 지식인 13명의 삶의 행로(life path)를 추적, 위대한 명성 뒤에 가려져 있는 위선과 허위의식 즉 이중성을 진솔하게 고발했다.   

이 양서는 “권력자가 되면,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라는 논거를 저명 인사들(예컨대, 루소, 칼 마르크스, 입센, 톨스토이, 헤밍웨이, 버트란트 러셀, 사르트르, 윌슨, 조지 오웰과 노엄 촘스키 등)의 인생 행로를 추적해서 설득력 있게 설명하였는데 이 권력자에는 민선, 직선이거나 간에 저 높은 임명권자에 의해서 지명된 인물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대학 총장이나 장관, 대통령, 기업체 회장을 포함하여 권력자들 대다수를 국민이나 교수들은 사연 많은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닮고 싶은 롤 모델(role model)로 이상화하는 데 적합한 인물인 것으로 미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동시에 훌륭한 현존 인물을 찾아서 공적을 기려야 한다.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한 공로로 한 때는 위인으로 존경받았으나 원주민을 학살, 폭력, 성병(Venereal Disease)을 퍼트렸다는 죄와 벌이 알려져서 현재에는 위인 반열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래서 세간에서 위인이라는 평판은 조작된 담론이라는 것이다.

권력자가 되면 왜 달라지는가

폴리페서는 학내 권력을 탐한다. 그래서 보직을 선호한다. 학내 보직에 중독되면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를 수행해야 하는 본업에 몰입하는 일이 불편하다. 동료 교수들에게서 학내 보직 교수시절의 공적으로 존경과 찬사를 많이 받기 보다는 그 사람 많이 변했어라는 조소와 비난의 주인공이 되고 동료 교수들과의 관계가 소원해 진다. 10년 이상 폴리페서 생활에 몰입했다면, 교수로서의 명성과 권위는 생명력과 축적된 유효기간이 지난 것과 같다. 위세를 부리는 권력에 중독이 되어서 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공적으로 시정해 줄 것을 건의해도 반영이 안 된다.

이스라엘의 건국 초기에 명망가인 아인슈타인 박사는 초대 대통령이라는 중책을 맡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고서 “인재를 구하는 애국심의 향방을 이해하지만, 나는 물리학을 전공한 대학 교수로서 정치외교는 문외한이라서 잘 알지 못하며, 대통령이라는 중책은 다수의 사람을 만나서 국사를 지혜롭게 처리해야 하는 위치인데 나는 사교성이 부족해서 직무수행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정중하게 입각 부탁을 거절하는 바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치졸한 총장과 보직자에 의해서 발생된 해악을 인사권자만 모르기 때문에 건의해도 시정이 안 되고 결정된 사항을 고수한다. 즉 교수 회의석상에서도 평교수가 대학 행정의 문제점을 예시하며 시정을 건의해도 즉 하의상달(下意上達)이 안 되고 민주주의의 적으로 비난받는 관료화, 경직화에 길들여진다. 그래서 직선제 총장을 도입했지만, 대학 운영의 민주화 실현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학내 보직에 몰입하면, 교수의 본업인 교육과 연구 및 전공 분야의 연찬(硏鑽)을 소홀히 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학내 보직을 끝낸 후에는 반 학기나 1년간 연구년으로 재충전을 하는 것이 직무 윤리에 맞는다. 단 연구 보고서를 의무적으로 대학에 제출, 발표하게 해야 한다.

졸부들은 권력에 도취되어서 균형 감각을 가지고 제대로 행사할 줄 모른다. 승자의 특권인 권력에 도취되어서 오만과 독선, 권위를 과시하는데 도취돼 아부파를 측근으로 기용하고 권력을 민주적으로 행사할 줄 모른다. 영국의 역사가인 액턴 경(Lord Acton)은 “견제 없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고 비판했다. 총장이 권력을 쥐면 평교수들보다 내가 더 잘 났다는 우월감과 능력주의에 함몰된다. 승패에서 이긴 권력자가 감당해야 하는 공감과 배려와 섬김, 동료 의식, 책임감, 사명감은 사라지고 지배하려고 한다. 평교수들은 민주적인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독불장군형 총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견제 없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영국의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전임 총장들은 신임 총장들에게 ‘교수들을 지배하지 말고 동료로서 섬기라’고 당부한다. 그 이유는 교육과 연구에서 유능하고 우수한 대학 행정가의 자질을 겸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재임 중에 총장의 적격성을 검증, 판별하는 중간 평가로서 심리 검사도 필요하다. 단 교수와 학생들의 평판도 필요하다.

어떤 이념에 중독되면 권력에 노예가 된다. 자신의 권력욕을 신념으로 포장하고 이성적 판단은 마비된다. 폴리페서가 함량 미달의 대학 총장이 되면, 대학 발전에 필요한 비전 제시나 대학 현대화와 우수한 교수진 예우도 못한다. 전 현직 총장을 교수와 학생 구성원 누구도 존경하거나 기억하지도 않는다. 

교육대학교 총장에게는 사람 안에 있는 진솔함 찾아내는 균형 잡힌 판단력과 지도력이 필요하다. 역대 춘천교육대 전임 직선제 총장 재직 시의 처신과 업적을 비교 평가해 보면, 자질이 부족했으며 대학발전과 비전을 어떻게 도전하고 실현했는지가 의심스럽다. 총장 선출이 직선제로 바뀌었지만 교수와 학생, 직원들은 근무 환경과 학습 조건, 연구 환경이 나빠졌다고 호소한다. 대학 자율성도 존중받지 못한다. 지원은 부족하고 간섭만 늘어났다는 것이다.

학문에 헌신하는 자질과 관료 행정 권력은 전문성과 책무가 다르다. 학문 탐구에 헌신하려고 학자가 된 교수들은 사람을 다루고 관료 행정에 종속되는 치졸한 총장이나 학내 보직을 거부하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명망 있는 거인 학자와 행동하는 지식인이 돼 학계에서 존경받는 인재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정휘 

춘천교대 명예교수·교육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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