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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57] 혁명보다 반항을, 알베르 카뮈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57] 혁명보다 반항을, 알베르 카뮈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1.09.01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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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①

19세기에 시작된 국민국가라는 새로운 세계체제는 제1차 세계대전의 국가총력전에 의한 대량살상과 파괴를 결과했고, 19세기 과학기술문명을 기반으로 한 진보와 발전에 대한 무한한 신앙을 뿌리부터 흔들었다. 그래서 개인을 압살한 지배제도에 대응한 피지배 개인의 존엄을 중시하는 실존주의가 생겨났다. 실존주의자에는 여러 사람이 있지만, 앞에서 본 사르트르보다 아나키즘과 훨씬 더 가까운 실존주의자인 카뮈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가난한 백인 정착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빈곤에도 불구하고 태양이 뜨거운 지중해와 그 선명함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평생 간직한 그는 축구 경기장에서 윤리를 배웠다. 대학 졸업 후 언론인이 되었고 1934년에 공산당에 가입하여 알제리인들에게 선전 활동을 했으나 곧 자신의 아나키 휴머니즘과 어긋나는 공산당을 떠났다.

 

알베르 카뮈(1913~1960)
알베르 카뮈(1913~1960)

 

첫 단편소설 『이방인』(1939)에서 카뮈는 단순한 게임처럼 아랍인을 살해한 혐의로 그를 비난하는 판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을 거부하는 청년을 묘사했다. 그 소설은 부르주아 사회에서 진실을 찾는 사람은 외부에서 온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제외하고는 명백한 메시지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지만, 2차대전의 부조리 속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어 발표한 철학적 에세이 『시지프 신화』(1942)에서 부조리에 대한 탐구를 심화하면서 “정말로 심각한 철학적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자살이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삶이 살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카뮈는 인간의 조건이 근본적으로 터무니없는(즉 부조리한)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욕망과 현실 사이에는 지울 수 없는 불일치가 있다. 즉 인간은 죽기 위해 태어났지만 그는 영원을 추구한다. 그는 확실한 지식을 갈망하지만 의심의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므로 터무니없는 것은 ‘비이성적인 자들의 대립과 명료성을 위한 거친 갈망’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나는 땅에 충실하기 위해 정의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자살 자체에 있지 않다. 카뮈는 우리가 계속 살면서 부조리에 반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사람은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영원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의 일시적으로 제한된 자유, 미래와 필멸의 의식이 없는 반항을 확신한 그는 평생 동안 모험을 떠난다.' 시시포스처럼 그는 '신에 대한 경멸, 죽음에 대한 증오, 삶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면서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돌을 오르막으로 굴려간다. 그는 자신의 임무가 궁극적으로 무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에 대한 확실한 만족으로 그것을 언제나 똑같이 완료한다. 자기 상태의 한계 내에서 그는 자신이 시대의 주인이며,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부조리는 행복의 초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초월적 현실을 부정하면서도 카뮈는 인류의 발전을 위해 지구에서 일할 수 있음을 느낀다. 여기서 그는 단호한 휴머니스트로 남는다. 그는 전쟁 중 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땅에 충실하기 위해 정의를 선택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세상에 최종적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속에 있는 어떤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사람입니다. 그가 하나를 가질 것을 요구하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시지프 신화'(1942)
'시지프 신화'(1942)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카뮈는 프랑스로 이사했다. 1943년부터 1946년까지 <콩바(Combat)> 지에서 사르트르와 협력하면서 레지스탕스로 일했다. 그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예술가이자 어리석은 이교도의 사도로 예견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그 시대의 정치적 혼란에 몸을 던졌다. 청년시절의 공산주의자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로 이어진 추상적인 정치적 이상을 점점 더 의심하게 되어 혁명보다는 반항을 높이 보기 시작했다. 전자가 종종 개인의 희생으로 끝나는 반면, 후자는 본능적으로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거부하고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전쟁 전에 공산당을 떠났지만 1944년에도 여전히 소련의 외교 정책을 방어했다. “우리는 러시아가 집단 안보 시스템을 헛되이 제안한 후에야 러시아가 지금 추구하는 민족주의 정책을 채택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한다. 러시아는 다른 모든 국가 중에서 혼자서 일반 군축을 제안했다는 사실을 우리도 잊어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가 아니라 빈곤으로부터 자유를 배웠다

 

같은 해에 그는 프랑스에 대중적인 노동 계급 민주주의가 세워질 것을 촉구했다. 전쟁 후 레지스탕스가 혁명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프랑스에서 카뮈는 모든 혁명이 새로운 폭군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체주의가 투쟁한다고 주장하는 악이 전체주의 자체보다 더 나쁘지 않다고 확신했다. 공산주의에 반대하면서 그는 관용과 절제의 정치를 설교하기 시작했고, 비평가들에게 마르크스로부터 자유를 배운 것이 아니라 빈곤으로부터 자유를 배웠다고 말했다. 1946년에 그는 합법화된 살인의 공포에 관한 초기의 글인 「기요틴에 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Guillotine)」부터 「희생자도 집행자도 아닌」(1946)에서 불공정한 사회의 복수로서의 사형을 비판했다. 당시 프랑스의 스페인 아나코 신디칼리스트와 접촉하여 스페인 정치범 연맹을 지원하고 스페인 아나키스트 CNT의 신문 <연대(Solidaridad Obrera)>의 편집자와 협력했다. 그는 또한 프랑스 신디칼리스트이자 아나키스트 잡지들(Témoins, Le Libertaire 및 Le Monde Libertaire)의 편집자들과 교류했다. 그들은 그가 아나키즘 전통을 이해하도록 도왔고 좌파에서 반공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기요틴에 대한 고찰'(1946)
'기요틴에 대한 고찰'(1946)

 

그의 새로운 입장에 대한 가장 실질적인 표현은 그의 광범위한 영향력 있는 연구인 『반항인』(1951)에서 나타났다. 1953년에 나온 그 책의 영어 번역판 서문에서 허버트 리드(Herbert Read)는 이 책을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이 책이 출판되면서 1 세기 이상 유럽인들의 마음을 억압해온 구름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인간과 미래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다시 한 번 가능해졌다.” 이 작업은 허무주의와 테러로 너무 쉽게 타락한 추상적인 이상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이었다. 반항자들이 신이 없는 세상에서 살기로 선택하기보다 숭배할 새로운 폭군적 신성을 세우는 반항의 변태를 탐구한 이 책에서 카뮈는 자신이 당파적 정신이기는 하지만 아나키즘과 리버테리아니즘을 공부했음을 보여주는 반항의 문학적, 철학적 사례를 탐구한다.

 

반항은 도덕을 창출한다

 

예를 들어, 그는 사드(de Sade)가 다른 사람에 관계없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에 대한 절대적 자유를 요구했으며 그의 관대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절대 독재의 환상을 즐겼다고 주장한다. 신과 모든 가치에 대한 니체의 부정은 쉽게 왜곡되어 국가사회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모든 추상화를 파괴함으로써 슈티르너(Max Stirner)는 자신을 하나의 추상화로 만들었는데. 그의 '개인-왕'은 세상의 폐허로 끝나고 어떤 형태로든 파괴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바쿠닌(Bakunin)과 네차예프(Nechaev)는 완전한 자유를 요구했지만 그 결과 각각 레닌주의 독재 개념에 기여하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살인 숭배를 조장했다. 카뮈는 역사가 만들어 낸 가치 외에는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 헤겔과, 소련 경찰국가에서 유토피아적 메시아주의가 최종적으로 표현된 그의 추종자 마르크스에 대해 가장 크게 분노했다.

 

'반항인'(1951)
'반항인'(1951)

 

혁명과 반항을 구분하는 카뮈는 슈티르너처럼 혁명은 오로지 과거의 지배자를 새로운 지배자로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의 변하지 않는 반면, 반항은 새로운 형이상학과 도덕을 창조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고 보았다. 카뮈에 의하면 반항은 부조리, 고통 및 불의에 항의하고 절제라는 개념에 기반한 도덕적 가치를 창출한다. 그것은 개인의 성실성을 인정하고 정치에서 상대적인 목표를 추구한다. 반항은 대상으로 취급되고 단순한 역사적 용어로 축소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항은 외롭고 고독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연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의 세계를 피하는 모든 인간의 공통된 본성을 긍정한다. 부조리의 경험에서 고통은 개인적이지만 그것이 반항으로 이동하면 집단적인 '모든 사람의 모험'을 인식한다. 소외된 정신의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이 모든 인간과 그러한 소외감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따라서 반항은 개인을 고독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래서 카뮈는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존재한다”고 했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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