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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외교, ‘역외균형’으로 전환할까
미국 외교, ‘역외균형’으로 전환할까
  • 유무수
  • 승인 2021.09.1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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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미국 외교의 대전략』 스티븐 M. 월트 지음 | 김성훈 옮김 | 김앤김북스 | 432쪽

자유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 확산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재앙이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지역 안에서 ‘민주주의, 시장경제, 인권 등’에 입각한 재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자유주의 패권’ 전략으로 2001년∼2021년에 2천600조 원 이상(브라운대 부설 왓슨연구소 통계)을 들이부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원조를 국가발전보다 개인재산 증식의 기회로 이용했다. 지도층의 부패·무능·무책임이 난무하는 아프가니스탄은 골치 아픈 수렁이 되고 있었다. 

하버드대 국제정치학 교수인 저자 스티븐 M. 월트에 의하면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이 빌 클린턴,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정권을 거치며 일관되게 선택한 외교의 대전략은 바로 ‘자유주의 패권’이다. 미국의 우위를 유지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전 세계로 퍼트린다는 숭고한 의도가 깃들어 있지만 이는 잘못된 대전략이었으며 참담한 실패를 겪어왔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책의 원제는 ‘The Hell of Good Intentions’이다.

NATO의 확대로 러시아와 관계가 악화되고 러시아와 중국이 가까워지게 한 것, 중동에서 이중봉쇄(이란과 이라크 동시 봉쇄)로 미군 병력이 페르시아만에 잔류하게 되면서 9.11테러를 부추긴 것, 이라크와 리비아에서 정권교체에 막대한 비용을 쓰고 목표달성을 못한 것, 예멘과 시리아에서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고도 안정적인 친미 성향의 정부를 수립하지 못한 것,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 강화를 위해 50억 달러 이상 투자하고도 역효과를 낳은 것 등은 실패의 일부 사례다. 

위협 부풀려 이득 과장하는 전략

저자는 미국 외교안보에 얽힌 주요 집단을 총망라하면서 적극적 행동주의 카르텔을 세밀하게 비판한다. 공식 정부기관의 관료들, 외교 관련 회원제 단체와 싱크 탱크, 국방비 지출 관련 이익단체, 언론매체 등이 ‘자유주의 패권’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밀어주고 당겨주며 먹고 살았다는 것이다. 이 단체들에 얽히고설켜 있을 때 동종교배로 돌아가는 워싱턴에 진출하여 출세할 기회도 잘 잡을 수 있었다. 이들이 주로 쓰는 수법은 적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위협을 부풀리기, 자유주의 패권으로 얻는 이득 과장하기, 이 전략으로 소요되는 비용을 은폐하기 등이다. 트럼프는 미국 내부의 번영을 외치고 과거 자유주의 패권 전략의 오류를 질타하며 당선됐지만 경솔한 태도로 외교엘리트들과 갈등을 일으키며 미국의 신뢰성을 떨어트렸을 뿐이다.

저자가 제시한 대안은 소련 붕괴 이전의 전통적 대전략인 ‘역외균형(offshore balancing)’이다. 이는 먼저 역내 국가가 주도적인 책임을 지고 서로 견제하게 하고 역내 세력균형이 무너지거나 역내 국가들이 잠재적 패권국을 봉쇄하지 못할 때, 또는 미국의 사활이 걸린 이익이 직접 위협받을 때에만 해당 지역에 힘을 투입하는 현실주의적 전략이다. 

미군철수가 결정되자 자유주의 원칙과 거리가 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다. 카불에서 IS의 테러로 미군 13명을 포함한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국인이 8월 31일까지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시한을 승인했던 탈레반은 IS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잠재적 패권국인 중국은 잽싸게 탈레반과 거래를 트고 있다. ‘역외균형’ 전략에 의한다면 미국도 탈레반과 협의를 확대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유주의 패권’을 지지하는 외교커뮤니티 구성원의 세계관이 무너지는 상황이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o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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