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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사는 과학자 위인들의 연대기가 아니다
과학사는 과학자 위인들의 연대기가 아니다
  • 김태호
  • 승인 2021.09.09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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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오답이라는 해답』 김태호 지음 | 창비 380쪽

과학기술 전문가 아니더라도 말할 수 있어
과학기술 ‘사용기’로 드러내는 과거와 현재

이 책은 <주간경향>에 ‘구석구석 과학사’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원고를 다듬어 엮은 것이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60편의 주제로 과학이라는 활동의 본질을 여러 각도에서 곱씹어 보려 하였다. 

최신 스마트폰을 발표하는 이벤트는 잘 기획한 한 편의 쇼와 같다. 디자이너, 하드웨어 엔지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등 각 분야를 담당했던 전문가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신제품의 장점을 부문별로 자세히 설명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전문가들만 최신 스마트폰을 소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 뺨치는 깊은 수준의 리뷰도 있지만, 평범한 사용자의 입장에서 쓴 리뷰들도 많다. 보통의 사용자들에게는 이와 같은 평범한 리뷰가 오히려 더 선택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전문가들이 자기들끼리 알아볼 수 있는 미세한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분투한다면, 사용자들은 그 스마트폰이 일상생활의 나머지 부분을 어떻게 또 얼마나 편리하게 만들어줄 것인가에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일종의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는 모두 이런 커뮤니케이터의 활동이 필요하다. 한 분야의 전문가도 자기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다른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한 명의 시민이기 때문이다. 

나는 과학기술자는 아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책을 썼다. 할 수 있는 일인가? 해도 되는 일인가? 해야 하는 일인가? 현재의 나는 셋 다 “예”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을 직접 연구하지 않더라도 과학기술에 대하여 말할 수 있고, 나의 역할을 알고 선을 지킨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나아가 과학기술의 전모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 사회에서는 누군가 이런 중간자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이 책은 과학기술에 대한 책이지만 과학기술 전문 연구자들이 쓰는 책과는 관점이 다르다. 전문가들이 과학기술의 전문적인 내용을 해설하는 데 자신의 역량을 집중한다면, 과학기술 전문 연구자가 아닌 나와 같은 사람들은 일종의 과학기술 ‘사용기’를 쓰고자 한다. 지금 내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과학기술은 왜 이런 모습으로 진화해 왔을까, 이것이 우리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내가 이것을 이해하여 어디에 써먹을 수 있는가 등에 대해서는 때로는 그 분야 전문가의 이야기보다 비전문가가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는 이야기가 더 쓸모있게 들려올 때도 있다. 

다만 나는 이 책에서 한시적으로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맡았지만, 정체성을 따지자면 역시 과학사 연구자다. 과학사를 공부하면서 내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이나 재미있다고 느낀 것들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글을 쓰게 된 것이고, 전문 과학사 연구자의 울타리를 넘어 보편적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다 보니 과학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과학의 역사를 통해 살펴보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사를 이야기하는 책이며 동시에 과학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책이다. 

이미 세상에는 수많은 과학사 책이 나와 있으므로 이 책을 거기 보태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생각해야 했다. 나의 답은 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소재로 과학사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사의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함으로써 과학이나 역사를 대하는 관점을 성찰하도록 해 보자는 것이었다. 과학사는 과학자들의 위인전이나 흘러간 사건의 연대기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이 더해지는 역동적인 분야이고, 세계사나 한국사를 해석하는 관점에도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역사 전문가를 위한 책은 아니지만 이런 역동성의 일부분이라도 담아내고자 했다. 이 책의 독자들이 과학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갖거나, 인간의 역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지은이에게는 무엇보다 큰 보람이 될 것이다.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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