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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과 막스 베버
김정일과 막스 베버
  • 김성희
  • 승인 2021.09.08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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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North Face ⑦

“저기 갱입구만을 생각하자. 거기만 나서면 버럭을 쏟아버리고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키게 된다. 그러나 그다음은 한숨 쉬고나서 또 갱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또 래일은? 그는 또다시 생각하였다. 나의 희망은?”

송상원 『총검을 들고』의 표지

송상원의 2002년 소설 『총검을 들고』에는 김남철이라는 병사가 등장한다. 그는 전투부대에 배치된 것이 아니라 금강산댐을 건설하는 부대에 배속된 병사이다. 금강산댐의 지하수로를 뚫는 작업에 투입된 그에게 노동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300m의 경사갱”은 “1, 200개의 발자국”을 옮겨야 “돌파”할 수 있지만, 그 일은 “카로리” 소모가 너무 심한 작업이다. 그에게 배급되는 식량으로는 버텨내기 힘든 일이다. 그래도 그는 “체중이 한두키로그람” 줄어든다고 큰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그가 이제 일이 하기 싫어졌다는 것이다. “래일은? 나의 희망은?”이라고 속으로 외치며 그는 지루한 노동의 나날을 견디기보다는 차라리 전투에 나가 무공을 세우거나 명예롭게 죽기를 원한다.  

노동자들에게 물질적 보상을 하기 어렵게 된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 정권은 노동을 물질적 보상을 위한 행위가 아닌 좀 더 고상한 동기를 지닌 행위로 포장해야 했다. 그래서 북한 문학에 김남철과 같은, 일하기가 싫어진 젊은 병사가 등장해서 노동의 동기와 목적을 깨닫는 이야기가 생산되었던 것이다. 

노동현장에서 자기 대신 동료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정일을 직접 만나고 『총검을 들고』의 주인공 김남철은 그 지루하고 고단한 노동의 나날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전사”로 거듭난다. 물질적 보상 때문도 아니고, 세속적 명예를 위해서도 아닌, 조국과 지도자를 위해 그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북한의 노동관은 1992년에 출판된 『김정일 선집』에도 잘 드러난다. 진위를 확인할 수 는 없지만, 1967년 김정일이 했다고 하는 「정치도덕적 자극과 물질적 자극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질 데 대하여」라는 연설에서 김정일은 노동의 정신적인 특질을 강조한 바 있었다. 제목에서 이미 알 수 있다시피, 물질적 자극보다 정치·도덕적 자극이 사실상 노동의 생산성을 더 높여준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물질적 자극을 주기 어려워진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은 정치·도덕적 자극을 거의 종교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리려 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북한의 문학과 프로파간다에 희생과 죽음에 관한 종교적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게 된 것도 1990년대의 물질적 어려움 때문일 수도 있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영문판 (안)표지.

하지만 종교적이라고 해서 전근대적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노동을 소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물질적 이익을 위해 일하는 폴란드 노동자보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노동을 신이 준 소명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독일의 노동자들의 노동생산성이 더 높다고 주장했다.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은 그러한 노동의 정신성이 딱히 종교개혁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애초에 노동 자체에 그런 정신성이 내재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개혁 이전, 중세 유럽의 수도사들은 성경을 외며 노동을 했다. 그들에게 노동은 수도(修道)와 기도(祈禱)의 일부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노동의 이러한 정신적인 특질만이 노동을 근대적인 실천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정신적 자극만으로는 노동의 생산성을 높여줄 수 없는 것이다. 에릭 윌리엄스는 『자본주의와 노예제도』에서 아메리카대륙에서는 노예 노동의 저생산성이 항상 문제였다고 말했다. 종교를 노예들에게 이식할 수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노동의 생산성을 높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종교적 노동은 여전히 근대의 노동에 미달했다. 

김남철을 비롯한 『총검을 들고』의 모든 노동자들이 정신적으로 크게 앙양되어 죽음을 각오하고 일하지만, 그러한 노동이 실제로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21세기를 앞두고 휴전선 북쪽에서는 많은 죽음이 있었고, 사회주의 북한은 한동안 극심한 경제적 침체를 이겨내지 못했다. 물론 그 침체가 지금까지도 종결된 것은 아니다. 북한은 이제 노동의 정신성과 물질성을 동시에 충족하면서, 노동을 온전히 근대적인 실천으로 만들어야 하겠지만, 이는 북한 체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김성희 숭실대 한국기독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문학과 영어논문쓰기 등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문학이론, 북한문학, 동아시아 냉전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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