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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할 안(安)을 둘러싼 잘못된 상식
편안할 안(安)을 둘러싼 잘못된 상식
  • 김 혁 경상국립대 교수
  • 승인 2021.09.15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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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安자는 어떻게 만들어진 글자일까요?” 安의 자원에 대하여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90% 이상이 “집 안에 여자가 있어서요”라고 대답한다. 한자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대다수 이와 같은 대답을 한다. 집 안에 아빠가 있으면 불편한가? 좀 그런 거 같기도 하다. 한자의 자원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갑골문에서 가장 초기의 형태를 찾고 고대 중국어에서의 의미와 연계하여 전문적인 자료들을 분석한 후,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여 제시하여야 한다. 갑골문, 금문 등 중국 고문자 자료와 그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 오랫동안 소개되어 기존의 잘못된 자원 인식이 많이 수정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잘못된 자원 설명들이 한자 관련 교양서적에 넘쳐나고, 심지어 전공 서적에도 최신 자원 정보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한자의 자원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역대로 가장 권위를 가졌던 중국 나라 허신(許愼)이 집필한 「설문해자」라는 책이 있다. 갑골문을 보지 못하고 저술된 책이기 때문에 지금 연구자들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참고하고 있는데, ‘여자가 집에 있어서 편안하다’라는 安자의 자원 역시 여기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필자가 박사과정으로 유학했던 상하이 푸단대학의 출토문헌고문자연구센터의 천지엔(陳劍) 교수가 2006년에 「安자에 대하여 논함」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논문이 발표된 이후 중국 문자학계에서는 安자의 자원 정보가 완벽히 새롭게 바뀌게 됐다. 

설문해자에서는 安자를 이렇게 설명한다. “安은 ‘평안하다’는 뜻이다. 여자가 집에 있는 것을 따랐다.” 그리고 원나라 대동(戴侗)이라는 학자가 「육서고」에서 “집안은 여자가 편안히 여기는 곳이다. 그러므로 安자에 ‘女’가 있는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그 이후 이러한 해석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고, 우리나라에서도 집안에 여자 또는 엄마가 있기 때문에 ‘편안하다’라는 뜻을 나타낸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갑골문, 금문 그리고 전국시대와 진한시대의 문자 자료에 출현하는 安자를 보면 매우 특이한 점이 보인다. 

위에 보이는 세 자형은 갑골문에서 모두 安자로 해석이 되는 글자들이다. 왼쪽 첫 번째 글자는 女자 아래 사선의 필획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女자는 여성이 두 손을 모으고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여긴다. 그런데 위에 집 모양의 宀이 없고, 그저 女자의 다리 아래에 필획이 더해진 모양 자체로 安을 표기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安자 자원의 핵심은 ‘집’이 아니라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운데와 오른쪽 글자는 집을 뜻하는 宀이 더해졌고, 모두 여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부분’ 또는 그 주변에 필획이 들어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安자가 고대 중국어에서 ‘앉다’는 뜻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일주서」에 무왕이 주공에게 하는 말이 기록되어 있는데, “安, 予告汝”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安은 ‘앉다’는 뜻으로 ‘앉아라, 내가 너에게 고하노라’로 해석된다. 그리고 중국 고대의 마차 가운데 입거(立車)와 안거(安車)가 있는데, 입거(立車)는 서서 타는 마차를 뜻하고 안거(安車)는 앉아서 탈 수 있는 마차를 뜻한다. 따라서 安자의 본래 의미는 ‘편안하다’가 아닌 ‘앉다’이고, ‘편안하다’는 의미는 ‘앉다’에서 파생된 의미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갑골문의 安자에 필획이 들어가 있는 것은 바로 ‘앉아 있음’을 강조하기 위한 부호였던 것이다. 여기에 집을 뜻하는 宀이 추가된 것은 아마도 외부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안전을 강조하기 위하여 들어간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실내가 바깥보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국 고대 한자에는 安의 근본 의미를 알 수 있는 필획이 있었는데, 예서체 이후로 ‘앉다’는 뜻을 강조한 필획이 생략되면서 지금의 安의 모양으로 전해졌고, 후대 사람들은 가부장적 사고가 지배하는 전통사회의 여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집 안에 여자가 있기 때문에 ‘편안하다’는 뜻을 나타낸다고 착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安자는 본래 앉아 있음을 강조한 글자에 안전한 실내라는 의미에서 집을 뜻하는 宀을 더하여 만들어진 글자인데, 앉아 있음을 강조한 필획이 생략되면서 지금의 安자가 된 것이다. 따라서 安자의 근본적인 글자 원리로 보면, 집 안에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앉아 있는 사람’과 안전을 위한 ‘집’이 있을 뿐이다.

김  혁 경상국립대 교수(중국고문자학)

고려대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문자학전공으로 석사를 마쳤으며, 상하이 푸단대 출토문헌고문자연구센터에서 7년간 연구하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9년부터 경상국립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중국고문자를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한자, 그것이 알고 싶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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