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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귀여움과 두려움 사이
아틀라스, 귀여움과 두려움 사이
  • 오창섭
  • 승인 2021.09.24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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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파노라마⑪
현대자동차자 지난 6월에 인수한 보스톤 다이내믹스의 로봇이 사람처럼 춤을 추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 유튜브 화면 캡쳐
현대자동차자 지난 6월에 인수한 보스톤 다이내믹스의 로봇이 사람처럼 춤을 추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 유튜브 화면 캡쳐

그 영상을 처음 본 것은 2016년 즈음이었다. 영상은 사람처럼 생긴 로봇이 혼자서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와 눈 쌓인 들판을 걸어 다니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바닥이 고르지 않아서인지, 눈이 쌓여서인지 영상 속 로봇은 이제 막 걸음을 배운 아이처럼 걸음이 서툴렀다. 기계적인 외형이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뒤뚱거리며 걸어 다니는 모습은 귀여웠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어느 날, 나는 다시 그 로봇에 관한 또 다른 영상을 보았다. 로봇은 걸음이 자연스러웠음은 물론이고 장애물들도 힘차게 뛰어넘었다. 상당히 난이도 높은 움직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잘 훈련된 군인의 몸놀림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 뛰어난 운동선수의 몸놀림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2년 전의 어설펐던 몸짓은 사라졌다. 진일보한 로봇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영화 「터미네이터」에 등장하는 로봇을 떠올렸다. 사실 그런 로봇의 모습은 SF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날 내가 본 것은 허구가 아니었고,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두려움이 번졌다. 

로봇의 이름은 아틀라스(Atlas)였다. 올림피아의 신들과 티탄족의 싸움에서 티탄족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제우스로부터 세상을 떠받들고 있어야 하는 가혹한 형벌을 받은 신화 속 주인공, 로봇은 바로 그 신화 속 존재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아틀라스를 개발한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현재 현대자동차그룹의 회사다. 지난 2021년 6월 인수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최근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2013년 구글은 여러 개의 로봇 관련 회사들과 함께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해 관련 분야의 사업화를 추진했었다. 하지만 로봇 관련 프로젝트를 추진하던 앤디 루빈(Andy Rubin)이 2014년 10월 구글을 떠나면서 동력을 상실했다. 구글은 2016년부터 회사 매각을 추진했다. 토요타가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예상을 깨고 2017년 6월 소프트뱅크로 넘어갔다. 이후 회사 사정이 어려워진 소프트뱅크는 다시 이 회사를 매물로 내놓았고, 결국 현대자동차그룹이 인수하게 된 것이다. 

2016년, 눈 쌓인 들판을 뒤뚱거리며 걸어 다녔던 아틀라스를 보면서 나는 귀엽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18년, 진화된 모습의 아틀라스를 보면서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무엇이 귀여움을 느끼게 한 것이고, 또 무엇이 두려움을 불러들인 것일까? 두 영상 속 로봇은 사람 모양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외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몸놀림이었다. 2016년에 본 아틀라스의 몸놀림은 어린아이를 떠올리게 했지만, 2018년에 본 진화한 아틀라스의 몸놀림은 특수부대원이나 뛰어난 운동선수를 연상시켰다. 결국 이 몸놀림의 차이가 다른 느낌을 만들어낸 것이다.

감정은 종종 권력 관계를 드러낸다. 귀여워하는 주체는 권력을 가진 자이고, 귀여움을 받는 대상은 권력이 없는 약자다. 이런 맥락에서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귀여운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통제를 벗어나 우리를 위협한다면 그런 대상들을 보며 귀여움을 느낄 수는 없다. 우리가 일상에서 그런 존재들에게 던지는 ‘귀여워’라는 표현은 권력 관계에서 우위에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런데 가끔 권력자를 향해 ‘귀여워’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적 권력을 가진 이들을 보며 ‘귀여워’라고 말한다든가, 문화적 권력을 가진 이들을 보며 ‘귀여워’라고 외치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자신이 다니고 있는 회사의 사장이나 상사에 대해 ‘귀엽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사례를 토대로 권력이 없는 약자가 권력을 가진 누군가를 귀여워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한 사례들도 기본적으로 귀여워하는 주체와 귀여움을 받는 대상 사이가 권력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 물론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전자와 달리 후자의 경우는 상상적으로 그 관계가 설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자에 대해 ‘귀여워’라고 말하는 자, 권력자에 대해 귀여움을 느낀다고 표현하는 이들은 그러한 행위를 통해 자신의 약함을 감추고 상상적으로 우위에 서려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은 권력자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대중들 속에 숨어서, 혹은 대상이 부재한 상황에서 권력을 가진 대상에 대해 귀엽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귀여워’라는 말, 혹은 그렇게 느낀다고 하는 말은 말하고 있는 이로 하여금 뭔가 강해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지도록 한다. 어쩌면 이것이 핵심인지 모른다. 

2016년의 아틀라스에게서 귀여움을 느꼈다는 것은 그 로봇과의 관계에서 내가 권력자의 자리에 있었다는 말이다. 그때만 해도 아틀라스는 약자의 몸짓을 취했다. 걸음은 서툴렀고, 움직임도 느렸다. 하지만 2018년의 아틀라스는 달랐다. 진화한 아틀라스는 일반적인 인간의 몸짓을 훨씬 능가했다. 어려운 파쿠르 동작을 해냈을 뿐만 아니라, 제자리에서 몸을 뒤로 젖히며 공중회전도 가볍게 해냈다. 눈밭을 뛰어다니기도 했다. 진화한 2018년의 아틀라스는 두렵다는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불과 2년 만에 나의 자리는 강자의 자리에서 약자의 자리로 바뀐 것이다. 그것은 로봇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자리가 바뀌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했다.

며칠 전 나는 다시 아틀라스가 등장하는 영상을 보았다. 그 속에서 아틀라스는 BTS와 춤을 추고 있었다. 아틀라스는 자신의 강함을 춤추는 귀여운 행위 속에 감추려고 애쓰는 듯 보였다. 많은 이들이 영상에 귀엽다는 댓글을 남겼다. 영상을 보며 나도 ‘귀여워’를 외쳤다. 하지만 ‘귀여워’를 외칠 때 나의 감정은 처음 아틀라스를 보았을 때 감정과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두려움을 딛고 있는 귀여움이었고, 따라서 내용을 배신하는 감정이었다. 그렇다면 그날 ‘귀여워’라는 나의 외침은 여전히 귀여움을 느끼는 자리에 있다는 착각을 불러들이는 주문은 아니었을까?

오창섭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교수
디자인연구자로 한국디자인학회 최우수 논문상(2013)을 수상했으며,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안녕, 낯선 사람> 전시(2017)와 DDP디자인뮤지엄의 <행복의 기호들> 전시(2020)를 기획했다. 저서로 『내 곁의 키치』,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 메타디자인을 찾아서』, 『인공낙원을 거닐다』, 『9가지 키워드로 읽는 디자인』, 『근대의 역습』, 『우리는 너희가 아니며, 너희는 우리가 아니다』 등이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메타디자인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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