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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79] 양갱에서 연료까지, 아낌없이 주는 우뭇가사리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79] 양갱에서 연료까지, 아낌없이 주는 우뭇가사리
  •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1.09.27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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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립생물자원관
사진=국립생물자원관

 

일전에도 아내가 희뿌연 우무(한천)를 길쭉길쭉하게 채 쳐서 고춧가루·식초·간장·깨소금·참기름과 다진 파, 마늘 섞은 양념장을 낙낙하게 뿌린 우무 무침을 해주었다. 또 가끔은 고소한 콩 국물에 우무를 걸맞게 썰어 넣고, 거기에 잘게 썬 오이와 실고추·통깨·달걀 고명을 얹은 여름 별미인 우무 냉국도! 글을 쓰는 오후 시간에, 퍽 출출한지라 생각만 해도 군침이 한입이다. 새삼 고맙게도 우무는 바닷말(해조, 海藻)의 일종인 볼품없는 우뭇가사리에서 얻는다.

우뭇가사리(Gelidium amansii)는 우뭇가사리과의 해초 중 홍조류(紅藻類)로 한천(寒天, 우무, agar)의 원료이다. 해조류(海藻類, sea algae)에는 3종류가 있다. 엽록소가 많아 녹색을 띠는 파래·매생이·청각 같은 녹조류(綠藻類, green algae)와 엽록소a와 c 및 갈조소(褐藻素)가 듬뿍 든 미역·다시마·모자반 따위의 갈조류(褐藻類, brown algae), 또 엽록소 대신에 아토시아닌(anthocyanin)이 많아 홍색·황색을 띠는 우뭇가사리·김 같은 홍조류(紅藻類, red algae)가 있다. 셋을 비교하면 녹조류는 가장 얕은 곳에, 갈조류는 중간에, 홍조류는 제일 깊은 곳에 산다. 

홍조류인 우뭇가사리는 보통 자줏빛을 띤 붉은색이고, 식물체가 납작한 것이 굵은 실처럼 생긴 잔가지를 올올이 뻗어내어 다발을 이룬다. 줄기(가지)는 미끈미끈한 것이 물렁물렁하고, 길이는 줄잡아 8~30cm에 달하며, 거기에 뭉툭한 깃털 꼴의 잎들이 달린다. 그리고 우뭇가사리는 한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지역의 해안에서 자라며, 다년생으로 바다 밑 20∼30m 깊이의 바위에 붙어산다. 여름 번식기가 지나면 본체(本體)상부는 녹아 없어지고 하부만 남아 있다가 이듬해 봄에 다시 새싹이 자라난다. 

우뭇가사리는 5월에서 10월에 걸쳐 채취한다. 해녀가 잠수하여 낫으로 잘라 내거나 배 위에서 채취 기구를 내려서 벤다. 채취한 싱그러운 해초는 맹물로 씻어 소금기를 뺀 다음 바닷가에 널어(홍색이 없어지고 백색이 될 때까지) 볕에 바랜다. 그리고 이것을 쇠솥에 넣고 눅진눅진해질 때까지 설렁설렁 휘저어가며 삶는다. 군더더기를 걸러내고, 국물을 가는 베주머니에 넣어 지그시 눌러, 짜내어 냉각시키면 차차 굳어진다. 이것이 우무요, 이 우무를 건조 시킨 것을 보통 한천이라 한다. 응고된 투명한 우무를 널빤지 모양으로 만들거나 가늘고 긴 굵은 빨대 꼴의 국수로도 뺀다. 

다시 말해서 우뭇가사리를 물에 오래오래 끓이면 콧물처럼 끈적거리는 점액 물질이 잔뜩 녹아 나오니 바로 우무(한천)이다. 우무는 끈끈한 갖풀(아교풀) 닮은 것이, 영양소는 단백질 2%, 지방 0.5%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탄수화물인 다당류이다. 다시 말하면 우무에는 삼대영양소가 매우 적게 들었다.

한천은 반들반들하고, 매끈하며, 단단하면서도 탱글탱글하여 잼이나 젤리에 섞을뿐더러 제과, 유제품, 식품첨가용, 또 각종 화장품, 약용, 학술연구용 등으로도 그 쓰임새가 무척 다종다양하다. 또한 다른 해초들과 함께 화석연료 대용인 생물연료(biofuel/bioethanol)로 쓰기 위한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이라 한다.

다음은 양갱(羊羹, 양羊 국물羹) 이야기다. 양갱은 애초에는 일본 과자 요깡(Yōkan)에 그 뿌리가 있으니, 요깡은 삶은 밭을 으깨 어레미에 거른 팥소에 설탕과 우무(한천)를 넣어 반죽하여 찐 대표적인 일본식 과자다. 또 다른 설로 양갱은 원래 중국에서 양(羊)고기를 푹 끓여 얻은 콜라겐(collagen)으로 만든 것이었다 한다. 

어쨌거나 오늘날의 양갱은 일본에서 고안된 것으로 羊(sheep) 고기를 푹 고운 羹(짙은 수프, thick soup)처럼 맛난다는 뜻이라 한다. 양갱은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팥양갱·밤양갱·녹두양갱·완두양갱·고구마양갱·감양갱·무화과양갱 등이 있고, 설탕 대신에 꿀․흑설탕․당밀을 넣기도 한다. 양갱엔 수분이 적고 설탕을 많이 넣은 연양갱(煉羊羹)과 물기가 많고 염분이 든 수양갱(水羊羹)이 있는데 시판되는 것은 연양갱이다. 

흐물흐물한 한천 용액은 이내 고체로 응고된다. 그래서 한천은 미생물배양 배지(培地, medium)로 쓴다. 주로 파이렉스(Pyrex)유리로 만들어진 페트리접시(Petri dish/Petri Schale)에 한천과 여러 영양소를 넣은 배지를 만들고, 미생물을 배양한다. 이때 한천은 영양소로 쓰이는 게 아니고 일정한 틀을 잡아준다. 그리고 영양가가 거의 없는 우무는 장운동을 조절하는 식물성 식이섬유와 기능이 다르지 않아 변비에도 효과가있다.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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