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12-01 11:06 (수)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59] 미국 문화밖에서 반체제를 노래한 페레와 브라상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59] 미국 문화밖에서 반체제를 노래한 페레와 브라상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1.10.04 08: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페레와 브라상

 

체제 측만이 아니라 반체제 분야에서도 미국문화가 압도적인 한국에서 봅 딜란이나 조운 바에즈 같은 미국의 반체제 가수들에 대한 책이나 정보는 많지만, 미국 외의 반체제 가수나 그들의 노래에 대한 소개는 찾아보기 힘들다. 프랑스 샹송이나 이탈리아의 칸소네에 대한 책은 몇 권 있지만 반체제 가수에 대한 소개는 전무한 형편이다. 위키백과에 프랑스 아나키스트를 치면 자크 프레베르(Jacques Prevert, 1900~1977), 레오 페레(Leo Ferre, 1916~1993), 조르주 브라상(Georges Brassens, 1921~1981)과 같은 샹송 가수들의 이름이 뜬다. 다른 나라에서는 아나키스트 가수를 볼 수 없는 것과 비교하면 프랑스는 역시 예술의 나라라는 말이 실감 난다. 

프레베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수보다도 시인으로 더 유명하다. 그의 시집도 몇 권이나 번역되어 있다. 이브 몽탕 등이 불러 유명해진 ‘고엽’ 같은 노래의 시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그의 시집에서 아나키즘을 찾기란 어렵다. 

 

위선에 대한 경멸부터 솔직한 사랑까지 노래한 페레

 

레오 페레(1916~1993)
레오 페레(1916~1993)

프랑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마추어 아나키스트인 레오 페레가 프랑스 국경일인 7월 14일에 죽은 것은 삶의 작은 아이러니 중 하나였다. 아마도 이것이 그의 가족이 다음날까지 비밀로 유지한 이유였을 것이다. 민족 분쟁에서 돌아온 장군에게 미테랑 대통령이 레지옹 드뇌르 훈장을 주고 화려한 군사 퍼레이드와 애국적 팡파르가 퍼지는 가운데, 평화주의자 샹송 가수이자 정치적 반군인 페레의 죽음을 발표되는 것은 당연히 모순이었을 것이다.

러시아 아나키스트 크로포트킨(Kropotkin)을 추종한 페레는 신성하거나 세속적인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스페인 내란에서 프랑코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투쟁을 열렬히 지지하고 그들을 애도하는 노래를 불렀으며 오늘날 샹송 예술에서 가장 사랑받는 고전인 불멸의 열정적인 저항의 노래들을 많이 작곡했다. 많은 반항인과 마찬가지로 페레는 매우 존경받는 부르주아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몬테카를로(Monte Carlo)에 있는 카지노의 인사 담당 이사였고 그의 어머니는 모나코 출신이었다. 그는 엄격한 기독교 교육을 받았으나 학교에서 도망쳐 로마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파리대학교의 법학부를 다니는 등 파리의 지적 생활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오랫동안 음악에 매료되었다. 어렸을 때 비밀리에 피아노를 치는 법을 배웠고, 파리에 도착한 뒤에는 작곡을 시작했다. 라디오 몬테카를로(Radio Monte Carlo) 방송국의 아나운서이자 피아니스트로 음악 생활을 시작한 그는 350곡 이상의 노래를 작사 작곡하고 불렀다. 더 중요한 것은 비용(Villon), 보들레르(Baudelaire), 베를렌느(Verlaine), 랭보(Rimbaud), 아폴리네르(Apollinaire), 아라공(Aragon)과 같은 위대한 시인들의 시에 대한 그의 깊은 공감이었다. 그러한 추방된 시인들과 그들의 보편적 언어인 사랑, 죽음, 절망과 형제애에 대한 그의 본능적인 느낌은 그의 노래에 그대로 살아남았다. 사회, 교회, 군대 및 정부의 위선에 대한 아나키즘적 경멸에서 부드럽고 솔직한 사랑의 노래로의 극적인 음색 변화는, 아나키즘을 상징하는 그의 검은 셔츠와 바지와 함께 프랑스인의 뇌리에 영원히 남았다. 그의 <시간이 흐르면>을 들어보자. 

시간이 흐르면, 시간이 흐르면 
모두 사라져가지 
얼굴도 목소리도 잊혀져가지 
심장이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으면 
더 멀리서 찾으려할 필요 없이 
그저 흐르는 대로 두는 게 제일 좋아 

시간이 흐르면 모두 사라져가지 
열정의 모습도, 
비속을 헤매던 모습도, 
눈빛만으로 서로를 짐작하던 모습도 
가식적인 말이나 글로 
밤을 지새던 거짓 맹세도, 달콤한 이야기도
시간이 흐르면 모두 사라져가지 
 
시간이 흐르면, 시간이 흐르면 
모두 사라져가지 
가슴 저리게 하는 가장 아름다운 추억도 
죽음의 빛이 비추는 화랑 구석에서나 볼 수 있는 
얼굴의 하나일 뿐이지
토요일 밤마다 그 달콤함은 홀로 외로이 사라져가지 

시간이 흐르면, 시간이 흐르면 모두 사라져가지 
감기처럼 하찮케 생각한 사람 
보석이나 헛된 약속을 주었던 사람
돈 몇 푼에 영혼을 팔고 
개처럼 끌려 다니기도 했지 

시간이 흐르면, 시간이 흐르면 
모두 사라져가지 
시간이 흐르면, 시간이 흐르면 
모두 사라져가지 
열정도 잊혀지고 
그대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하던 
가엾은 사람들의 목소리도 잊혀져가지
너무 늦게 다니지 말고, 정말...
감기 걸리지는 말았으면 해

시간이 흐르면, 시간이 흐르면 
모두 사라져가지 
지친 말처럼 창백하게 사위어가고 
우연히 누운 침대 한구석에서 
얼음 같은 냉기를 느끼게되지 
그리고 혼자라는 기분이 들 테지만 힘들진 않을 꺼야 
잃어버린 날들 때문에 속은 듯한 기분도 들겠지 
그러면.... 정말로 시간이 흘러가면.... 
우린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 

 

자신의 노래로 만든 혁명에 침묵했던 브라상

조르주 브라상과 폴 발레리의 고향인 프랑스 남부 지중해변에 있는 도시 세트
조르주 브라상과 폴 발레리의 고향인 프랑스 남부 지중해변에 있는 도시 세트

페레 말고도 프랑스에는 아나키스트 샹송 가수가 많다. 브라상도 그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용모에서부터 페레와 다르다. 푸르죽죽한 낡은 점퍼, 넥타이 없는 슈트, 낡아빠진 코르덴바지, 너털 수염에 파이프, 그냥 기타 한 대. 표정도 거의 하나, 무표정이다. 가사를 빼면 사실 그의 노래는 모두가 거의 같다. 

브라상은 1921년 프랑스 남부의 세트에서 태어났다. 세트는 보수적 시인 폴 발레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같은 마을에서 보수와 진보가 태어난 것이지만, 프랑스의 베네치아라고도 하는 그 작은 바닷가 마을은 시인들의 고향이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그러나 브라상이 열일곱에 도둑으로 잡혀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열아홉에 고향을 떠나 파리의 숙모 집에 기거하며 도서관에 처박혀 책벌레로 2년 반을 살다가 스물한 살에 두 권의 시집인 『경쾌하게』와 『칼로 물 베기』를 낸다. 둘째 시집 마지막 시를 읽어보자. 

우리가 사는 이 세기는 썩어 문드러졌어
모든 게 비굴함과 저속함에 불과해
가장 위대한 살인마들이
가장 위대한 미사를 드리니
여기에 가장 뛰어난 자들이
가장 위대한 자들
이 말을 알아들은 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머지는 똥이나 먹어라!

그는 시를 쓰고 작곡을 하면서 자동차 공장에서 일했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끌려갔다가 휴가차 나와서 숙모의 친구 부부 집에 숨는다. 전쟁이 끝난 뒤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던 브라상은 1952년 카바레 주인이자 가수인 파타슈의 카바레에 출연해 스타가 되고 수많은 명작을 발표한다. 그러나 몇 노래는 방송 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미국의 매카시 정도는 아니지만,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의 반공주의는 유럽에서도 검열을 강화시켰다. 그 뒤 그는 시인이라는 말을 거부하고 송라이터라고 하면서 예술원 같은 곳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꼬마 피리장이가
성으로 음악을 이끌었네
그 노래가 하도 좋아
왕이 벼슬을 내렸네
‘저는 귀족이 되기 싫어요’
풍각쟁이 답했네
‘벼슬을 받으면
내 소리에 허풍이 끼니까’
그럼 모두 이러겠지요
‘피리장이가 배신했다고’

조르주 브라상(1921~1981)
조르주 브라상(1921~1981)

하지만 나이가 들어 꼴통이 된 탓인지 1967년에 브라상은 시인 최고의 영예인 프랑스 아카데미의 시작 대상을 받는다. 뾰족 모자에 제복에 칼까지 차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되는 것은 싫다며 우체부 제복만 사랑한다고 해서 다행이랄까. 그는 68혁명 때 침묵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노래로 그 혁명을 만든 사람의 침묵이었다. 그리고 1970년 이후에는 프랑스 북부인 브르타뉴 시골에 칩거한다. 그 뒤에도 노래를 멈추지는 않았지만, 암으로 1981년에 죽어 고향 세트에 묻혔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