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5:05 (금)
인문사회학자들 "기초학술기본법·한국학술진흥원 필요"
인문사회학자들 "기초학술기본법·한국학술진흥원 필요"
  • 윤정민
  • 승인 2021.09.29 1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2021 학술정책포럼 인문사회 미래세대 학술 진흥 관련 제3차 세미나’ 개최
"기초학술기본법 제정하고 한국학술진흥위원회·한국학술진흥원 설치" 주장
"인문사회·이공계 이분화 접근은 문제" 지적도
주상현 전북대 교수(행정학)가 발제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국회의원 정청래, 김철민, 박찬대, 윤영덕 의원실이 주최하고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이하 인사총)가 주관하는 ‘2021 학술정책포럼 인문사회 미래세대 학술 진흥 관련 제3차 세미나’가 29일 인사총 유튜브에서 실시간 중계로 진행됐다.

인사총은 인문학‧사회과학‧문화예술 분야의 학회들과 국공립·사립대학들의 인문대학‧사회과학대학 학장 협의회로 구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 학술단체다. 이번 세미나는 ‘학술 진흥을 위한 학술지원체계 구축 방향 - 인문사회, 기초보호학문을 중심으로 -’라는 주제로 발제와 토론을 진행했다.

핵심 내용은 기존의 학술진흥법을 발전시킨 ‘기초학술기본법(가칭)’을 제정해, 이공계열 중심의 정부지원 정책으로 소외됐던 인문사회, 문화, 예술 등 순수기초 학문 분야를 국가 차원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토론 발제를 맡은 주상현 전북대 교수(행정학과)는 이를 위해 ‘한국학술진흥위원회(가칭)’와 ‘한국학술진흥원(가칭)’을 설치해 학술 전 분야를 아우르는 비전, 전략 및 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조직체계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또, 기초학술 분야의 R&D 예산을 늘려 교육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차원에서 순수기초 분야 지원하는 '기초학술기본법' 제정을"

주 교수는 “학문의 균형 발전과 학술 생태계 복원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라며, “인문사회, 문화, 예술 등 순수기초 학문 분야는 시장 논리가 아닌 국가 차원에서 보호 및 육성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1979년에 제정된 ‘학술진흥법’이 기본법으로서 학술정책의 기본 방향을 제대로 규율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학술진흥법에는 인문사회 등 소외학문 육성이나 기초학술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주 교수는 ‘학술진흥법’이 제 역할을 수행하도록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1년 제정된 연구개발 정책 관련 법률인 ‘과학기술혁신법’과 지난해 제정된 ‘국가연구개발혁신법’처럼 학술 정책에 대한 중장기 종합 계획, 학술정책 관련 위원회, 학술전담기관 등에 대한 법적 근거를 신설하고, 학술 활동에 대한 지원 근거와 내용, 학술 활동 지원사업 관리 등에 필요한 구체적인 사항을 규율하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2021년 3월 국회에 발의된 ‘기초학술기본법(가칭)’은 기초학문 및 학술에 대한 개념과 목적, 기초학술에 관한 국민의 권리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 기초학술진흥을 위한 심의회 구성, 예산, 국가 차원의 학술정책 수립, 집행 근거 및 체계 구축 등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다만, 주 교수는 ‘기초학술기본법’에서 인문에 대한 개념 규정은 잘되어 있지만, 사회과학 학문 및 영역에 대한 개념도 명확히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교육부 학술진흥과와 한국연구재단 일부가 극히 좁은 범위의 지원사업만 맡아서 하고 있을 뿐, 기초학술 전체의 진흥을 아우를 종합적인 체계가 없는 현재 상황을 극복하고 종합적인 체계 구축을 위한 토대를 기초학술기본법 제정을 통해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학술기본법 기반의 국가 조직체계가 필요

한국학술진흥원(가칭) 가상 조직도   자료=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주 교수는 학술정책의 효율적인 수립과 시행, 관리와 분석을 위해 ‘부처(위원회)-전담 조직-연구관리전문기관’의 역할 분담 체계를 효율적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학술 전 분야를 아우르는 비전, 전략 및 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조직체계가 없다”라며, “한국연구재단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 중심으로 되어있고, 인문사회 분야의 장단기 학술진흥 비전 및 전략을 수립하고, 학술지원정책의 연구 기획, 평가와 관리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는 학술전담기구가 없다”라고 주장했다.

주 교수는 ‘한국학술진흥위원회(가칭)’와 ‘한국학술진흥원(가칭)’을 제안했다. 한국학술진흥위원회는 사회부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며, 학술정책에 대한 자문과 심의를 맡고 중장기 의제를 제안한다. 또, 한국학술진흥원은 장단기 학술진흥 비전 및 전략을 수립하고, 학술지원정책의 연구를 기획하며, 평가와 관리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는 학술전담조직이다.

기초보호 학문 분야가 위축되지 않도록 고등교육 재정 확대 필요

주 교수는 대학의 교육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국가 R&D 예산 정책을 개선하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했다. 현재 고등교육 재정은 열악하다. 고등교육 예산 중 정부 재원 비중은 OECD 평균 이하이며, GDP 대비 고등교육 공교육비 정부지출 비중이 0.6%로, OECD 평균(1.0%)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 인문사회 분야 연구지원은 2019년 기준 정부 R&D 예산의 1.5%로, 최근 5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국가 R&D 예산은 2.1%인데, 인문사회 분야 순수 R&D 예산은 0.3%에 불과했다.

국가 R&D 및 인문사회분야 순수 R&D 예산   자료=기획재정부

주 교수는 “인문사회, 문화, 예술 등 기초학술 분야에 대한 재정지원 확대도 필요하다”라며, “균형 있는 학문 발전을 위해 인문사회 분야 예산을 정부 R&D 예산의 2.5%로 단계적으로 확대 추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국가 R&D를 편성하는 과정에서 인문사회, 기초학문 분야에 일정 할당량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도록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초중고 교육재정에 투입되고 있는 예산을 고등교육도 포함하도록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을 개정해 고등교육 재정 불안정성을 해소하자고 주장했다. 지난해 기준 초중고 교육재정에 투입되는 예산은 58조 6000억 원에 이르지만, 초중고 학생은 10년 전보다 30% 정도 급감하고 있어 교육재정 효율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주 교수는 따라서 고등교육 분야를 안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대하고, 이를 위한 예산 배정 원칙을 규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인구소멸 현상으로 대학 입학정원 감소에 따른 대학 위기에 대응해 대학에 대한 실질 예산 지원을 확대하자고 강조했다.

인문사회·이공계 이분화 접근은 문제 지적도

토론 참여자들은 인문사회를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 등 날선 토론도 오갔다. 토론에 참여한 권향원 아주대 교수(행정학과)는 “학술진흥은 과학기술 부문과 인문사회 부문의 양 날개가 서로 균형 있게 상호작용할 때, 산업적이고 사회적인 임팩트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학술진흥위원회나 한국학술진흥원에 대해 옥상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인문사회 분야 안에) 수백 개의 전공과 연구 분야가 있는데, 수백 개의 전공을 둔 학자들을 대표할 위원회를 조직하는 데 한계가 있다”라며, “어떤 학자는 본인의 이해관계와 맞게 의제로 낼 수 있는지 걱정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김양현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인문사회 분야를 지원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사람들의 삶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열어주는 학문이다"라며, 두 학문이 경쟁적인 사회가 낳은 부조리와 모순을 극복하고 협력과 소통의 인문사회를 건설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학문이라고 말했다.

인사총 회장인 위행복 한양대 교수(중국학과)는 “(과학기술과 관련한 헌법 기구인) 국가기술자문회의도 위원회 30명이 있지만, 밑에 많은 특별위가 있다”라며, “산하 기구 위원들만 해도 250여 명으로, 학술진흥원도 구체적인 인원과 예산이 편성되면 각계에서 구체적인 의제가 논의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덧붙였다.

인문사회·예술계와 이공계를 이분화해서 접근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초학술지원안에 자연과학은 빠져 있는데, 이공계도 자연과학 분야는 취업률이 사회과학 분야와 큰 차이가 없다”라며,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 역시 부족하고, 학문이 죽어간다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이공계 연구원을 인문사회학 연구원과 대립하기보다는 자연과학도 포함한 기초학술진흥원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권향원 교수 역시 소외된 기초학술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정민 기자 lucas@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