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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는 조형과 아우라의 조형
의미 없는 조형과 아우라의 조형
  • 조현신
  • 승인 2021.10.06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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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파노라마 ⑫

디자인의 범주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뉘어질 수 있다. 물건, 공간, 정보를 다루는 고전적인 분야인 세 가지 범주에 정보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서 서비스 디자인, 인터랙션 디자인, UX 디자인 등의 범주가 폭발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 영역에서는 실재와 허구가 결합하고 물건과 공간, 시스템에 정보기술이 결합하는 특성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시각디자인, 좀 더 좁은 의미로 국한하면, 평면을 활용해 정보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던 근대 그래픽 디자인은 이제 보통명사보다는 르네상스 스타일, 바로크 스타일 등의 단어처럼 일정 시대성을 내포한 개념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픽의 어원은 ‘새기다, 긁다’ 등의 뜻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인 ‘그라파인’에서 파생된 단어다. 인류가 암각화에 새겨 넣은 문자나. 형상은 이후 양피지를 거쳐 종이로 보편화되었다가 이제 비트를 이용한 소프트 데이터의 형태로 거의 모든 정보는 보관된다. 인쇄기가 보편적으로 쓰인 지 겨우 200년이 안 되어서 나타난 변화다. 이런 시기에 시각디자인의 변화 중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아담의 사과가 지닌 보는 것의 유혹으로는 더 이상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재 광주 컨벤션 홀에서 진행되고 있는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에서 시각디자인의 향방을 잠시 살펴보자.

 

형체가 없거나, 상상하지 못할 형상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그림이나 포스터 등 인쇄물의 개념이 이제는 사라져 간다는 점이다. 그 자리는 빛과 움직임과 색채, 사운드가 결합한 새로운 개념의 조형물, 혹은 기기로 대치되고 있다. 그것이 예술품인지, 단순한 시각 조형물인지에 대한 정체성 질문은 의미가 없다. 기아 디자인실에서 제작한 ‘Opposite United’ 코너 중 하나를 살펴보자.

Opposite United’ 코너의 한 작품.  사진(왼쪽)=조현신 사진(오른쪽)=연합뉴스

거친 돌과 스테인리스 스틸을 육각추 형태로 결합해 공중에 매단 후 그것을 중심으로 빛과 사운드와 파동이 흐른다. 이들 조형물 앞에 서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색채와 영상, 조형에 매혹되어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다. 여기에 낮은 비트음으로 흐르는 사운드까지 가미되어 그야말로 미래 초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형상을 보는 듯하다.

기아에서 제작한 이 작품의 설명문은 이 공간을 통해 “재료, 색감, 경험의 대비가 느껴질 공간을 구성하고 출시 차량의 디자인과 연계된 원칙을 따라 구성하였다”로 되어있다. 그동안 자동차의 이미지는 첨단 테크놀로지의 결정판, 들끓는 사회적 포지셔닝의 대리물적 욕망을 결합하여 제시되었지만, 이 실험적인 장소에서 기아는 새로운 조형물의 매력을 제시하면서 자동차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정체성에는 구체적인 스토리나 형상이 없다. 모든 것이 흐르고 변화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지도 못했고, 상상할 수도 없었던 조형물의 등장은 10년 전인 2011년 광주 디자인비엔날레에서 물질의 형상으로도 등장했었다.

건축가 마이클 한스마이어의 ‘Building unimaginable shapes’. 사진=조현신

건축가 마이클 한스마이어가 ‘Building unimaginable shapes’라는 제목으로 전시한 기둥은 컴퓨터가 사각 큐브의 접기, 펼치기를 계속하면서 만들어낸 기이한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만들어낸 3D 기술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들어와 있다. 이런 현상을 철학자 빌렘 플루서는 “이제 조형은 컴퓨터가 제공해 주는 무한 조형의 포물 곡선에서 선택되는 한 인자에 불과하다”라는 말로 요약했다. 어쩌면 이들 형상은 우리의 모든 물질적 형상이 무한히 영속되는 운동 중의 한순간임을 비추어 주는 듯하다.

올해 기아의 전시가 빛과 운동, 사운드의 겹합을 통해 우리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자연적 존재들의 인공적 결합으로 인간이 만든 극한의 미적 효과를 만들었다면, 10년 전 한 건축가의 생성되는 형상 제시는 마치 우리 개별자들이 다 다르게 한순간 피어났다가 사라지는 존재들임을 느끼게 해주는 조형물인 것이다. 디엔에이의 구성물은 같으나 그 결합으로 우리 지구상의 인류가 다 개별자로 태어나듯이.

 

의미 없음의 조형물과 유일자로서의 조형물

지난달 1일 열린 '2021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국제관에 설치된 덥(DUB) 작품이다. 사진=조현신

다음으로 시각물들이 놀이와 브랜드, 게임, 체험 등과 결합해 다각적인 콘텐츠를 다시 생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관인 제2전시관 전체는 ‘DUB’라는 주제관이다. ‘더빙’이라는 단어에 기반해 해외와 국내의 디자인 결과물을 혼합해 새로운 디자인 물질을 만들어내 전시했다. 그런데 이것을 원형의 반복적 사용으로 - 예를 들면 전시물도 바퀴, 음반 등이며, 체험자에게 제시되는 노트도 원형 동그라미, 전시 액자도 동그라미 등등 - 귀결지어 조형성과 의미를 억지로 혹은 장난삼아 결합한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사실 근래 일상이 가벼워지고, 게임이 만연하여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의미와 장난의 경계 역시 허물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하다. 근대 디자인이 시작될 때 원형은 심오한 의미를 지닌 형상으로 시각 인지학자인 루돌프 아른하임은 “원형은 우주를 상징하므로, 푸른색으로 채워져야 한다”라고 이야기했으며, 바우하우스의 학교 로고는 기본 도형인 원, 삼각형, 사각형으로 되어있다. 즉 형상성에 의미를 투영하고, 그 의미를 기반으로 시각성을 창출해나간 장구한 재현과 표현의 역사가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던 시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덥(DUB), 번안의 결과물들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이제 그런 무겁고 비중나가는 것은 사라지고, 대중들이 참여하는 재밌는 장난과 실험, 낙서 등에 의미를 더욱 실어주는 결과물로서 시각물들이 확장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조형이라는 기반 개념이 변화되어 가는 기반에는 역시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인공지능들이 행하는 디자인의 기본 원리는 생성이며 과정이며, 무한한 증식이다.

다람쥐 이미지 하나로 AI가 만들어낸 디자인 결과물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이제 기계를 통해 손에 만져지고 보이는 구체적 결과물로서 시각디자인 행위가 마무리지어지는 시대는 사라져 간다. 이들은 가상현실, 증강현실, 메타버스 세계에서 비트 이미지, 소리, 빛, 무한증식과 반복, 순간성, 운동 등의 순식간에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또 다른 콘텐츠로 편집되고 패러디되어 우리에게 제시된다.

NFT로 경매된 작품 ‘Guardians of the Metaverse’.  사진=조현신

원형, 실재는 어딘가에 있지만, 그것의 향방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영구히 하나밖에 없는 작품들이 제작되어 NFT 코인작품으로 되어 사고 팔린다. 아무리 생성적인 디자인, 반복되는 무한한 형상이 제시되어도 “유일성”, “하나밖에 없음”이 지닌 아우라에 대한 원초적인 욕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는 모든 문화물은 어쩌면 이런 개별자들의 유일성을 강조하고 찬미할 때 감동을 준다는 궁극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리라.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그렇게 숱하게 사람들이 죽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마지막까지 “사람이 죽어요”를 외치던 순간의 그 사람은 어쨌거나 우리 개개인이며, 숱한 인간 군상 속의 유일한 개별자라고 절규했듯이. 어쨌거나 복제물로 인쇄기를 통해 그나마 물질성을 띠고 근대기에 출발한 시각디자인의 영토는 이제 가상공간이며 메타공간으로 옮겨졌다. 이제 이 속에서 모든 이미지는 부유하다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도 역시 아우라를 띤 복제 불가능한 이미지들만 추앙을 받으며 작품으로 존속되는 시대가 현 시각디자인이 서있는 자리이다.

 

조현신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디자인학과 교수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낯익은 디자인물에 관심이 많다. 특히 한국의 근대기 시각디자인문화사를 주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문화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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