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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김병희
  • 승인 2021.10.06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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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김병희 편집기획위원

단 1학점이 부족해 졸업을 못하게 됐다며 울고 있는 학생의 눈망울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쩌랴, 게임을 덜하고 한두 학점만 더 신청했더라면 우는 일도 없었을 것을. 캠퍼스의 오동잎에 스산한 햇살이 떨어지는 초가을 석양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도 술집으로 불러낼 친구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순간에도 우리는 슬픔을 느낀다. 코로나19 때문에 사랑하는 이와 만나지 못하고 일주일 넘게 혼자 있을 때 몰려오는 짙은 그리움도 우리를 더 슬프게 한다.

선거철만 되면 굶은 하이에나처럼 캠프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교수들의 행태를 지켜보는 순간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후보가 전문성을 인정해서 영입했다면 모를까, 불러주지 않는데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줄을 대려고 애쓰는 그대들은 가르치는 교수(敎授)인가 약삭빠른 교수(巧手)인가.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몫이라 판단을 유보하지만,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이나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여태껏 읽어보지 않았다는 듯이 정치와 학문을 무시로 갈아타려 하는 편의주의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쉬지 않고 계속되는 대학평가는 우리를 또 얼마나 슬프게 하는가. 대학 기본역량진단 평가, 대학 구조개혁 평가, 사범대학 평가, 교육대학원 평가 등 하나를 겨우 끝내면 또 다른 평가를 준비해야 한다. 마치 박정희 정부 시절의 “중단 없는 전진”처럼 우리 대학들은 중단 없는 평가를 받느라 뼛속까지 골병이 들었다. 지난 1980년대 이후 대학 정원을 늘려준 곳도 교육부요, 학령인구에 맞춰 다시 줄이겠다며 이제와 새삼 평가의 칼끝을 들이대는 곳도 교육부다. 교육부가 그토록 평가를 좋아한다면 학생들이 교수들의 강의를 평가하듯, 교육부도 전국의 대학으로부터 행정력에 대한 타당성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정녕 공평하지 아니한가? 이런 제안과 권고를 교육부가 거부한다면 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하리라. 

초짜 교수 시절에 제자로부터 받은 빛바랜 편지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너무 열정적인 강의 때문에 잠시도 한 눈 팔 수 없었어요.” 아, 그토록 열정을 쏟은 시절이 언제였던가? 해를 거듭할수록 뜨거움이 식어가는 것 같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학생들도 예전과 달라졌다며 다른 데서 이유를 찾으려고 변명하니, 우리를 더 슬프게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그뿐이겠는가. 무성한 나뭇잎이 하나둘 떨어지고 어디선가 낙엽을 태우고 있는지 소멸의 냄새가 코끝을 스쳐갈 때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안톤 슈낙의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패러디해서 대학 사회를 짚어보았다. 이 수필은 1953년판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처음으로 실린 이후 1981년판 교과서에서 사라질 때까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대학 사회의 문제점들이 비단 이뿐이겠는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대학촌 곳곳에 차고 넘친다. 하지만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은 결국 느끼고 발견하는 자의 몫이다. 어쩌면 그것들은 애써 찾는 자에게만 나타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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