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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사랑하는 전문 출판사…지역사회와 손 잡다
언어를 사랑하는 전문 출판사…지역사회와 손 잡다
  • 김재호
  • 승인 2021.10.05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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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출판사 현장을 가다_①
우리말·글을 계승하는 '박이정'

디지털과 온라인이 확산되는 가운데, 전통적인 출판사들 역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동안 학술출판에 주력해온 출판사들은 어떤 도약을 꿈꾸고 있을지 ‘디지털 시대 출판사 현장을 가다’를 통해 알아본다. 과연 디지털 시대에 책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출판사들은 어떤 철학과 경영 전략을 펼치고 있는지 출판사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특히 심혈을 기울였던 책들 중 대표적인 저서 세 권을 뽑아 다시 소개한다. 첫 번째 출판사는 경기도 하남시에 자리한 박이정이다. 

국어교육학 태동 시부터 학문과 학회 발전에 물심양면으로 기여
하남시에 묘 있는 유길준 책 출간·애니고의 학생 그림작가 발굴

박이정은 뚝심이 느껴지는 출판사다. 1989년 창립 이후, 박이정은 우리말과 국어학·국문학 등 관련 책들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 박이정은 지난 32년 동안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고 계승·발전시킨다는 사명감으로 1천700종 이상의 도서를 출판했다. ‘박이정’은 논어에 나오는 ‘넓이(博)’와 ‘깊이(精)’를 함께 추구한다는 뜻이다. 박이정의 책들을 보면 이런 취지의 책을 만들겠다는 사명감이 선명히 묻어난다. 지난달 13일, 경기도 하남에 있는 박이정 출판사에서 박찬익 대표를 만났다.

박찬익 대표는 건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던 시기에 출판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험을 쌓았다. 박 대표는 그곳에서 책의 기획-편집-제작-마케팅을 배웠다. 특히 그는 “출판이나 잡지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자료집을 내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여러 경험을 쌓았다”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박 대표는 졸업하자마자 박이정을 창업할 수 있었다. 

 박찬익 대표는 건국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1989년부터 박이정 출판사를 창업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우리말과 언어를 사랑하는 박 대표는 한국국학진흥원 ‘한글문화·콘텐츠 산업 육성’ 민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김재호

박 대표는 대학 시절부터 한글과 한글문화에 관심을 기울였다. 더욱이 북한 책이나 해금(解禁) 작가에 대한 책 만들기가 조금씩 개방되던 시기에 연변인민출판사,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등의 책들을 국내에 소개하고자 했다. 북한의 책들을 직접 알릴 수 없기에 조선족들이 출판한 책들을 영인본(影印本)으로 출판한 것이다. 박 대표는 북한의 ‘조선의 문법’ 등을 한국에서 출판하다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로 벌금을 내기도 했다.   

박 대표는 지난달 9월 6일, 한국국학진흥원(이사장 이철우)으로부터 ‘한글문화·콘텐츠 산업 육성’ 민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됐다. 국문학책 출판과 출판계를 대표해 위촉이 된 것이다. 그만큼 우리말과 국어학·국문학에 헌신해온 이력이 인정된 셈이다. 

 

32년 동안 국어교육과 국문학 발전에 헌신하다

박이정이 좀 더 주목을 받는 이유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연구한 ‘해외한국학총서’를 65종을 발간했다는 점이다. 한국학의 해외교류와 활성화를 위해 힘써온 것이다. 특히 박이정은 출판된 책들을 해외에 수출하고 한국학 연구기관에 기증하며 한국학의 세계화에 기여했다. 또한 박이정은 『한국전쟁 이야기 집성(전 10권)』(2017), 『시집살이 이야기 연구』(2012)나 『시집살이 노래연구』(1996) 등 사라져가는 이야기를 구술 채록함으로써 한국문화 유산을 앞장서 남기고 있다.
『넓고 깊게 지식을 나누다』(박이정 30년사 편찬위원회)에서 이재승 서울교대 교수(국어교육과)는 “박이정은 국어교육학이 태동될 때부터 학문의 성립에 크게 기여를 했다”라며 “우리나라 국어교육 발전에 기여한 일문 중에서 박이정에서 책을 내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라고 강조했다.   

 

북한 책 국내에 소개하다가 벌금 물기도

박이정은 한국독서학회 출범 초창기부터 협력하고 후원하고 있다. 최근 출간된 『독서교육의 이론과 실천』 역시 박이정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세상에 나왔다. 박 대표는 “「텍스트언어학」 등 25종의 학회지를 출간하며 후원했었다”라며 “박이정 학술상이나 공로상을 시상하며 학문 발전에 기여한 적도 있다”라고 말했다. 요즘엔 학회에서 디지털로 학회지를 발행하고 있어 책 출간은 하고 있지 않다. 

디지털이 급속히 일상으로 파고든 요즘, 학술출판을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는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디지털 역량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특히 박이정이 눈길을 끄는 지역사회·문화와 연계된 학술출판을 시도하고 있다. 하남시에는 조선 말의 개화사상가 유길준(1856∼1914)의 묘가 있다. 박이정은 『알기쉽게 번역한 서유견문』(유길준 지음, 이한섭 옮김)을 출간함으로써 지역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있다. 출판사과 지역사회가 상생하는 좋은 사례다. 

또한 박이정은 참빛아카이브(김한영 대표)가 영인본으로 복간한 ‘우리의 고전과 옛교과서 629책’을 위탁 판매하고 있다. 5년 6개월이 걸려 세상에 나온 629책은 총 4천998만8천 원인데, 미국의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예일대 등이 구입했다. 『훈민정음』 등이 포함된 629권의 책은 그만큼 복간의 가치가 인정된 셈이다. 박이정은 전국 초중등학교 및 경기광주교육청과 『훈민정음』·『훈민정음』 ‘혜례본’ 읽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아울러, 박이정의 자회사인 정인출판사는 하남시에 있는 한국애니메이션고와 협업하고 있다. 그림책 작가 발굴을 위한 공모전을 개최해 시상했다. 수상자들은 정인출판사에서 채용하며 지역사회 취업에도 기여할 예정이다.   

박찬익 대표는 현재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또한 그는 한국국학진흥원 '한글문화·콘텐츠 산업 육성' 민간위원회 위원이다. 

한편, 박찬익 대표는 현재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제44대, 제46대 조사·홍보 담당 상무를 맡은 바 있다. 박 대표는 “도서정가제는 지역의 중소서점을 살리자는 취지”라며 “출판사에서 대형서점이든 중소서점이든, 인터넷서점이든 일률적인 가격으로 도서를 공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공급가 관련 내용을 시행령에 반영해 지역의 중소서점들에 실제적인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박 대표는 장강명 작가의 판매부수와 인세 관련 문제에 대해,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작가와 출판사에서 도서 판매량에 대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600개 이상이 가입했다”라면서 “저자들은 출판사에서 거래하고 있는 대형서점들의 판매부수를 확인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박 대표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출판유통통합전산망에 대해 ”예산을 이중으로 쓸 필요가 없이 대한출판문화협회 프로그램과 통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출판사가 걸어온 길: 올해 32주년을 맞은 박이정 출판사는...

박이정 출판사는 1989년 7월 20일 창립해 어문학 중심으로 책을 출판해왔다. 2001년엔 자회사 ‘정인출판사’를 설립해 어린이 및 유아·교육 도서를 출간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 법인회사로 전환한 박이정 출판사는 같은 해 임프린트 ‘패러다임’을 출범시켜 사회과학 연구서와 교재를 세상에 선보이고 있다. 2019년 30주년을 맞은 박이정은 1천634종을 출간해 146종이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 세종도서 등의 우수도서로 선정됐다. 업력과 책의 수만 보다라도 박이정은 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1998년 박이정은 <깊이와 넓이>라는 소식지를 발간하며 소통을 강화했다. 2000년, 북한사회과학원 기획 ‘조선어학전서’ 65책을 계약 체결하며 우리말에 대한 전문성을 더욱 넓히고 깊게 했다. 2009년엔 중국 중앙민족대 책 기증에 대한 감사패를 받았다. 또한 해외교포 책 보내기 운동(체코, 프랑스 한글학교 방문)도 펼쳤다. 2015년 제29회 책의 날에선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했다.   

‘다시 주목하는 책책책’   

1. 『훈민정음 혜례본 입체강독본』(김슬옹 지음, 2018)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SBS, 2011)는 한글창제의 과정을 극적으로 구성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우리나라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혜례본’은 세종이 비밀리에 연구하여 만든 훈민정음 28자를 1443년 알린 세종의 ‘정음편’을 본문으로 하여, 창제 동기와 목적, 원리와 가치 등을 정인지 등 8명의 학사가 해설한 ‘해례편’을 덧붙여 만든 책이다. 
『훈민정음 혜례본 입체강독본』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배우고 연구할 수 있게 여러 방식의 교육용 자료를 구성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로써 훈민정음에 담겨 있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의 합리성, 지식과 생각을 자유롭게 소통하라는 평등성 등을 함께 새길 수 있다. 

 

 

2. 『차곡차곡 익히는 우리말 우리글 1.2』(이관규, 허재영, 김유범, 주세형, 신호철 지음, 2012)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인으로서 한국말을 얼마나 잘 아는지 고민이 든다. 이 책은 국립국어원에서 기획하며 이관규 고려대 교수(국어교육과) 등 전문가들이 참여해 한글 맞춤법, 표준어 규정, 외래어 표기법 등을 국립국어원의 규정과 해설에 기반 실제 언어생활에서 사용되는 사례 중심으로 설명했다. 우리말이 좀 더 재미 있고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말은 인식을 규정하고, 인식은 행동을 결정한다. 이런 측면에서 계속 변해가는 우리말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주목할 만하다. 

 

 

 

3. 『독서교육의 이론과 방법』(신현재, 권혁준, 우동식, 이상구 편저, 1993)
한국독서교육학회와 첫 국어교육연구물을 출판했기에 더욱 의미 있다. 이 책은 학교 현장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교과 교육에 대한 책이었다. 그 당시 독서교육에 대한 열기는 뜨거웠으나 현장교사들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난감했다. 그때 출간된 이 책은 수만 원이 팔릴 만큼 인기를 얻었다. 이를 동력 삼아 박이정 출판사는 국어교육 연구물 출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니 마중물과 같은 책이라 할 수 있다. 한편, 28년이 지나 한국독서교육학회는 같은 출판사에서 『독서교육의 이론과 실천』을 출간했으니 각별하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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