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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어지는 마녀사냥…우리 시대는 여전히 ‘밤’이다
지금도 이어지는 마녀사냥…우리 시대는 여전히 ‘밤’이다
  • 장동석
  • 승인 2021.10.08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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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_『밤의 역사』 카를로 긴즈부르그 지음 | 김정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565쪽

고독의 상징인 밤에는 악마의 잔치가 펼쳐졌다
마녀와 주술사들은 밤의 역사를 지배하며 현혹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밤은 낮과 같지 않음을. 모든 것이 다르며, 밤의 일은 낮에 설명할 수 없음을. 낮에는 그와 같은 일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독을 알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밤은 무서운 시간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한 대목이다. 주인공 헨리 프레더릭의 입을 빌려 헤밍웨이는 밤의 일은 낮에 설명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낮의 일과 밤의 일은 다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보통의 사람들에게 낮은 일하는 시간, 밤은 잠자기 위한 시간일 뿐이다. 그러니 깨어 있는 사람, 즉 고독을 아는 사람만이 밤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안다고 헤밍웨이는 말한다. 

밤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아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다. 미시사 연구의 권위자인 그는 『밤의 역사』에서 마녀와 주술사 등이 등장하는 민간신앙은 물론 “유럽 기독교 문명의 저변에 윤하(潤下)된 유럽 민중 문화의 지층”을 소상하게 설명한다. 중세 이후 ‘악마의 잔치’라는 이미지가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었는지, 그것이 16~17세기 사람들의 삶에 어떻게 고착되었는지 분석한 것이다. 제목이 ‘밤의 역사’인 이유는 얼추 설명된 셈이다. 마녀와 주술사 등 악마들의 활동 시간대가 밤이 아니면 언제겠는가. 

1321년 프랑스 전역에서 나병 환자들이 화형을 당하거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격리되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도 이름이 등장하는 ‘이단 심문관’ 베르나르 기의 기록에 따르면, 몸과 정신에 병이 든 나병 환자들이 “독약가루를 분수와 우물, 강물에 풀어 건강한 사람들에게 나병을 옮기고 이들을 병들게 하거나 죽게 만들려고” 했다. 나병 환자들의 우두머리들은 조직적으로 도시와 농촌을 지배할 계획까지 세웠는데, 백작과 영주의 지위도 나눠가지려고 했다. 신의 은총으로 그 모의는 적발되었고, 이후 나병 환자들은 “용의주도한 결정에 따라 남은 생애 동안 더이상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영원히 한 장소에” 격리되었다. 20세기 말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나병 환자들의 격리가 이뤄진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14세기 중반 유럽을 덮친 흑사병의 원흉으로 거지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지목되었다. 

10세기 초반 한 기독교 관련 문헌에 따르면, 이교도의 여신 ‘디아나’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 몇몇 젊은 과부들의 행태는 이랬다. “밤을 틈타 짐승들의 잔등이에 올라타 이교도들의 여신인 디아나와 많은 여성들로 구성된 무리와 함께 깊은 밤의 침묵 속에서 먼 거리를 여행하고 마치 자신들의 여주인인 듯 디아나의 명령에 복종하고 디아나를 섬기기 위해 특정한 날 밤에 소집되었다.” 디아나를 부르는 이름은 지역마다 달라서 디아나, 에로디아데, 홀다, 리켈라, 오리엔테 등으로 불렸다. 지역 특색이 가미된 민간신앙의 한 갈래였던 여신 숭배는 15세기까지도 이어졌다. 신부와 교회법학자, 이단 심문관들은 “밤의 여신”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을 처단하기 위해서라도 디아나를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것은 “해석을 위한 억지”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저자는 동화 주인공으로 유명한 ‘신데렐라’도 소환한다. 계모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신데렐라는 왕자의 연회에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요정의 도움으로 의상과 신발들을 구하고 왕자의 연회에 참석하게 된다. 저자는 의상과 신발 등이 주술 도구임을 밝히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언급한다. 종교의 권위 아래 있던 시대에, 재판관의 고문이나 정신적 압박을 받은 피고인들이 “어린 시절에 들었던 우화나 길거리에서 들었던 이야기 등으로 떠올리면서 일련의 공통된 이야기를 진술”한다는 사실이다. 

밤에 일어난 다양한 사건과 사고들을 언급하며 저자는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악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을 낙인찍어 처벌하는 것은 누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인가? 무지한 시대의 소치(所致)라고, 혹은 저 먼 나라 이야기라고 웃어넘기기에는 저자가 언급한 밤의 사건들이 실로 무겁고 두려운 것들이다. 하지만, 과장을 조금 보태면 중세에나 있을 법한 마녀사냥이 우리 시대 뉴스, 특히 정치면 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게 보면 우리 시대는 여전한 밤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밤의 역사’는 그치지 않을 것이기에,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밤의 역사』는 당분간 곁에 두고 읽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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