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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투와 겉멋·친분과 형식이 앞서는 학술행사는 그만하자
감투와 겉멋·친분과 형식이 앞서는 학술행사는 그만하자
  • 이경선
  • 승인 2021.10.13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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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혁신에 관한 소고

학회는 연구자들의 모임이다. 학문적 성과와 깊이에 따른 위계질서, 혹은 교수직의 안정성에 따른 계급장 의식에 강약은 있을 테지만, 학회 내 구성원은 일단 평등하다. 왕성한 연구자는 전공범위 내 거의 모든 학회에 적을 걸어둔다. 그러다 보니 학회명만 다를 뿐 사실상 구성원이 같은 경우도 많다. 친한 연구자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고 하다 보니 학회 집행부조차 유사한 경우도 있다. 

학회 집행부도 나름 감투(스펙) 효과가 있어서인지, 여기저기 학회 집행부에 의도적으로 과하다싶을 정도로 이름을 올려두는 연구자도 있다. 세월을 건너는 동안 연구자 생활을 하면서 어차피 한두 번씩은 순리대로 돌아가며 집행부를 맡게 될 텐데, 굳이 특정 시기에 집행부 행세 의욕을 부리는 데는 의도가 있다.

S는 크고 작은 학회 집행부 실무를 도맡다시피 겸직하면서 학술행사가 있을 때마다 패널(발제, 토론, 사회) 명단에 본인을 항상 끼워 넣는다. 집행부로 참여하는 동안은 패널로 나서는 것을 자제하는 게 미덕이지 싶은데, 아무래도 총무이사 등 집행부인 것을 권력을 획득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학회마다 사정은 다를 테지만 회원수가 적게는 수십 명, 수백 명이다. 학회장을 포함한 집행부가 대주제를 정하고 일정을 기획했으면 여기에 일반 회원들에게 널리 알리고 신청을 받아 패널을 정하는 것이 공정함일 테다. 또는 그동안 발제가 저조했던 회원, 상대적으로 소외받아온 지방 회원, 신진 연구자들, 순번이 다시 돌아가야 할 회원 등에게 고르게 나서볼 것을 권하는 것이 건강한 배려일 테다. 그리 해보고도 나서는 이가 없으면 그때 가서 집행부 이사진이 돌아가며 패널을 맡는 게 옳다.

K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 학맥(출신학교)이 같은 사람만 패널로 선정하거나, 자신과 관계를 맺는 것이 유리해질 사람만 골라 섭외한다. 학회에서 패거리를 만들고 ‘정치질’을 한다. 심지어 자신의 배우자까지 같은 날 행사에 끼워 넣는 남용도 보인다.    

H는 학술대회뿐 아니라 기관·단체가 주관하는 토론회, 심포지엄, 세미나 등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중복 출연한다. 겸양하는 일이 없다. 연구자의 지적 역량이 워낙 뛰어나서일 수도 있으나, 과대평가된 지적 권위와 돈 욕심에 찌든 때문으로도 보인다.

한편, 재정이 열악한 경우 어떻게든 외부의 재정 지원이라도 받아 학술행사를 치르는 경우가 많다. 소요되는 예산은 결국 세금이다. 그나마 이렇게 학술행사를 열었으면 내용이 참신하고 사회를 위한 쓰임새 있는 논의가 풍부하게 쏟아져 나와야 할 텐데, 발제와 토론 모두 형식적 진행에 그친다. 본질은 사라지고 지원금을 나눠먹기 위한 학술행사로 끝난다. 지원해준 기관 입맛에 맞춘 ‘부역질’이 되는 경우도 있다. 흥미진진하고 진지한 토론이 드물다. 

이마저도 배정된 시간과 진행이 촉박한 속도전이다. 한정된 예산과 시간에 많은 연구자들에게 발제와 토론 기회를 주려는 배려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쫒기는 듯한 발제와 다급한 토론, 청중 토론도 생략되는 상황이 정상인지 동의하기는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술행사에 애써 걸음하는 이들도 점점 줄어든다. 쟁점을 함께 깊이 학습하는 공동토의, 공동학습의 장은 실종됐다.  

화룡점정은 학회가 배포하는 보도자료다. 학술행사의 내용, 발제자나 토론자들의 주장과 견해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학술행사 일정을 전하면서 패널 교수진의 이름, 소속, 직함을 알리는 용도에 그친다. 학술행사를 개최한다는 양적 기사 건수가 중요한 게 아닐 것이다. 어느 연구자가 이 사회에 어떤 문제를 예리하게 일갈하고 대안을 제시했는가와 같은 메시지가 없다. 

학회도 학술행사도 학술지 논문도 발제와 토론도 섭외나 보도 방식도, 한결같이 연구자들의 감투와 겉멋과 친분과 형식, 돈 나눠먹기 중심으로 굴러가는 곳이 있다. 지식의 최전선에 선 연구자들의 모임이 이러할지니, 한국사회는 어디에서 희망을 볼 것인가. 

이경선 편집기획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행정법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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