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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젠더 갈등보단 ‘젠더 평등’부터 논하라
군대, 젠더 갈등보단 ‘젠더 평등’부터 논하라
  • 김수아
  • 승인 2021.10.14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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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 김엘리 지음 | 동녘 | 216쪽

1999년 12월 대법원이 군필자에 대한 가산점제도를 위헌으로 판결한 이후, 군대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예민한 ‘젠더 갈등’의 소재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 전에도 남성만 징병된다는 점에 대해 남성들이 PC 통신 공간 등에서 불만을 토로하던 중이었는데, 위헌 판결 이후 이 불만이 일종의 억울함이라는 정서 구조로 결집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목소리가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널리 유통됨에 따라, 대통령 선거 때마다 군가산점제 부활 혹은 여성 징병제에 대한 공약이 언급되기도 하며,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 그래야 공정한 사회”라는 말이 포털 뉴스 댓글에서 다수의 추천을 받고 있다. 이 책은 이처럼 군대 문제가 ‘젠더 갈등’의 블랙홀이 된 현실에서 어떻게 논의의 틀을 구성해야 소모적이지 않게 젠더화된 군대의 문제를 다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 책은 여성징병제와 관련된 페미니스트의 주요 주장과 근거를 정리해주는 것은 물론, 여성 군인이 우리 역사에서 어떤 활동을 했고 어떻게 위치 지워졌는지에 대해서도 충실하게 소개해준다. 여성의 군복무 면제는 여성이 남성보다 유약하거나 이기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가부장제 사회가 구성한 제도의 문제였다는 점을 짚으며, 현재 여성 군인으로 복무하는 여성 군인들의 경험을 통해 성차별적 군대 문화를 드러내어 준다. 역사와 경험이라는 실증 자료를 바탕으로 이 책은 여자가 군대에 가야 하느냐 여부를 두고 벌이는 소모적 논쟁이 아닌, 군대가 갈만한 곳인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여군을 전통적 젠더 규범 안에 가두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여성 군인의 위치를 드러내는 작업에는 우리 사회의 젠더 문제가 축약되어 있다. 여성 군인의 목소리는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공정성 논란, 신자유주의적 능력 계발과 경쟁 논리의 체화, 성적 차이 개념에 대한 오해, 젠더화된 구조 속의 개인의 순응과 저항이라는 주제에 대한 생생한 경험을 담고 있다. 군대라는 초남성적 조직에 편입되는 여성은 끊임없이 ‘남성과 같은가 다른가’라는 시험대에 서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는 소위 평등 대 차이 논쟁에서 평등이 사실상 불평등과 반의어이고, 차이는 동일성과 반의어인 데에도 평등한 것과 차이를 대립시키면서 기존의 불평등한 제도와 문화를 개선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평등을 이루는 길이라는 주장을 만나온 페미니즘의 오래된 주제를 환기시킨다. 

또한, 여성의 군 진입은 성평등의 실현이자 성차의 존중처럼 보이지만, 여성들이 여성적인 것으로 군대에 변화를 일으키는 존재로 구성되면서 여군의 역할을 전통적 젠더 규범안에 가두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여군들의 경험 속에는 여성의 군 진출을 성평등의 증거처럼 홍보하고 활용하면서도, 여성에게 가해지는 남성성 규범에의 순응 압력이 존재하고 군대 구조의 성차별성은 변화하지 않는 현실이 있다. 즉, 여성 군인의 존재 자체가 성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성의 군 진출이 여성에게, 여성 군인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의 성평등 구조에 미치는 영향 역시 분명히 있다. 그러니 문제는 다시 한번 저자가 질문하는 바, 군대를 갈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최근 우리 군에서는 만연한 군대 내 성희롱 성폭력 문제, 사건이 불거진 다음에도 부실 수사로 눈가림하려는 문제, 군대 내 폭력, 트랜스젠더 변희수 하사에 대한 강제 전역 조치 등 문제적 사례들이 계속 발생해왔다. 이 연구에서 보여주는 통계 중 하나는 여군의 90% 이상이 신고를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변화하지 않는 군대 문제를 제기하고 시민권의 개념을 재구성하며, 성평등 가치를 실현하려고 한다면 ‘여자도 군대 가라’에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이 제기한 질문과 쟁점에 대한 답을 마련할 수 있는 후속 작업들이 필요하며 현실에 대한 개입 역시 절실히 요구된다. 손가락 기호와 같이 불필요한 소동이 아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더 평등한 군대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군대의 성폭력, 인권 문제의 해결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김수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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