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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유리천장 아니라 꽉 닫힌 두꺼운 유리문이다
캠퍼스, 유리천장 아니라 꽉 닫힌 두꺼운 유리문이다
  • 이은경
  • 승인 2021.10.21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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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사각지대를 비추다 ⑦

대학에서 교수 승진은 동료 경쟁 아닌 개인을 심사
국공립대 공채 일부에서 여교수만 뽑는 이유 살펴야

2020년 7월 통과된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안은 국공립대 교원 중 특정성별의 비중이 4분의 3을 초과하지 않도록 명시했고, 교육부는 2030년까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연차별 목표치를 제시했다. 어감의 차이는 있으나 이는 사실상 채용목표제 또는 할당제다. 그러나 이를 다룬 다음 두 기사 제목은 지나친 기대 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국립대 ‘유리천장’ 깬다... 여성교수 비율 2030년까지 25%로 확대」(서울경제, 2020년 7월 14일자). 「“女교수만 뽑습니다”... 국공립대 여성할당제의 그늘」(매일경제, 2021년 6월 27일자).

강의실에서 여 교수가 강의하는 모습. 사진=교수신문 DB

대학에 유리천장이 있는가? 유리천장은 능력, 성과에 상관없이 여성이기 때문에 고위관리로 승진하지 못하는 현상인데, 이를 대학교수에게 적용하기는 어렵다. 조교수-부교수-정교수의 직급 사다리에서 승진은 동료와의 경쟁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정량화된 심사기준을 충족하는지 여부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학에서 정교수의 수를 인위적으로 제한하지 않기 때문에 여교수의 승진을 막는 통상적인 의미의 유리천장은 대학에 없거나 있어도 얇다. 단 대학 행정보직에서 여교수의 참여비율은 재직비율에 비해서도 낮기 때문에 여기에는 유리천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직이 교수의 일반적인 직급 체계는 아니다. 

지금 캠퍼스에서는 유리천장이 아니라 꽉 닫힌 두꺼운 유리문이 문제다. 2000년대 이후 사회 가치 변화, 여대생 석박사 증가, 이공계 여학생 증가 등의 요인 때문에 교수의 성별 균형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에 대한 대학의 대응, 특히 국공립대의 대응은 느렸다. 2019년 기준 사립대의 여교수 비율이 25%인데 비해 국공립대의 여교수 비율은 18%에 그쳤다. 2003년 교육부가 국공립대에 특별 배정한 여교수 정원 200명도 더한 결과다. 25%가 적정한 비율인지는 몰라도 국공립대 학생의 42%인 여학생들, 국내외 신규 박사의 35% 전후에 해당하는 여성 박사들을 생각하면 국공립대의 여교수 비율 18%는 확실히 낮은 수준이다. 

 

학생들에 비해 낮은 국공립대 여교수 비율

이 정책의 목적은 국공립대학이 무거운 대학의 유리문을 여성연구자에게 조금 열어주도록 돕는 것이다. 이 배경을 충분히 설명해야 두 번째 기사 제목처럼 정부가 나서 여교수만 뽑게 한다는 오해를 막을 수 있다. 당분간 일부 국공립대에서 여성에게만 지원자격을 준다면 이는 그동안 여교수를 너무 적게 뽑았기 때문이다. 

정책 단위가 대학이기 때문에 이 정책만으로는 대학 내 계열별 여교수 비율 불균형을 줄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여러 전공계열 중 자연계열, 특히 공학은 학생과 교수 규모가 가장 큰데 반해 절대값으로도, 여학생 대비로도 여교수 비율이 가장 낮다. 인문계열과 사회계열은 부교수, 조교수의 여교수 비율이 25% 수준에 이르러 자연스러운 개선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자연계열, 특히 공학에서는 여교수 비율이 3.8%이 불과하고 신진 그룹인 조교수의 여성 비율도 7%에 그친다.

 

물론 여교수가 조금 늘어난다고 여학생의 교육 니즈 충족, 다양성 증가에 기반한 연구 성장, 성평등 문화 정착 등이 저절로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일부에서 여교수 비율이 낮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앞으로 국공립대에 채용될 여교수는 할당제 교수라는 오명을 쓰거나, 실력 부족으로 학생들이 교육에서 손해를 보거나, 대학이 여교수를 25% 이상은 뽑지 않을 핑계로 채용목표제를 악용할 수 있다는 등의 우려를 내비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일단 여성연구자가 대학의 유리문을 통과한 뒤에야 일어날 수 있다. 미리 걱정할 필요 없다. 그리고 정말 여교수 비율이 낮다고 인정한다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나도록 필요한 조치에 손을 보태면 될 일이다. 

 

이은경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협동과정 과학사 및 과학철학 전공으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 과학문화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과학기술과 사회』, 『사회 기술시스템전환』(공저)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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