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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교수계약제 아직 이르다
[대학정론]교수계약제 아직 이르다
  • 논설위원
  • 승인 2001.06.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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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11 18:05:54
최근 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대학이 몹시 흔들리고 있다. 그 진원은 구조조정이다. 세계화 시대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아래 이뤄지고 있는 대학의 구조조정이 本末이 뒤바뀐 채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부터 학부제, 계약제, 연봉제 등 새로운 정책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졌다. ‘신지식인’ 만들기란 해괴한 운동을 편 바 있는 현 정권에 들어서는 ‘BK21’이라는 과대포장된 사업으로 이 정책들을 강제함으로써 대학사회는 더욱 내분과 갈등에 빠져 있다.

불행히도 이러한 정책들은 교수사회의 적절한 의견 수렴없이 마구잡이로 추진된 감이 없지 않다. 재정지원을 미끼로 한 교육인적자원부의 근시안적 개혁 지향아래 대학의 이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대학총장들의 무지한 경영논리가 그에 편승함으로써 오늘의 대학은 위기로 치닫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년부터 실시될 예정인 교수계약제는 총액연봉제와 함께 주요한 쟁점이다. 신임교수의 임용을 상당 기간 계약제로 운영하여 업적이나 자질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승진과 정년보장을 하자는 취지 자체에 이의는 없다. 그러나 계약제는 교육과 연구풍토의 개선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달리 교수들에 대한 통제수단으로 편용될 소지가 높다. 우리는 지난날 권위주의 시절 재임용제가 갖는 폐해를 직접 경험한 바 있다. 민간정부가 들어서서도 여전히 교수의 신분보장이 위협받고 있는 일부 사립대학이나 지방대학의 실정을 감안할 때 계약제는 재단이나 대학 당국에 의해 교권을 옥죄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계약제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교육·연구 활동을 유인하고 촉진할 수 있는 재정확보, 업적평가를 학문분야에 따라 공정하게 할 수 있는 제도확립, 그리고 교수자원의 대학간 이동을 허용하는 교수시장의 형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교수가 자리를 자유롭게 옮기기에는 시장이 막혀있고, 업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잣대도 분명치 않고, 대학의 재정은 겨우 살림을 유지할 정도로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수계약제를 연봉제와 함께 전면 실시하겠다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다름없다. 특히 성과급제로 연봉제를 운영하기에는 대부분의 대학재정이 취약하다는 점에서 계약제는 연봉제를 통한 우수 교수자원 확보 보다 인건비를 줄이는 방식으로 그 의미가 변질될 여지가 크다. 교수사회의 연구풍토의 진작은커녕 고용불안만 가중시켜 대학을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이에 정부가 개혁대상으로 교수사회를 지목하고 있다는 계약제의 저의를 의심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초·중등 교육의 연장 이상이다. 진리탐구와 지식전달을 통한 인재배출, 국민계몽, 사회발전을 바탕으로 고등교육의 존재의의를 봐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교수들이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있지 간섭에 있지 않다. 물론 대학도 시대변화의 추세에 따라 바꿔야 하지만, 그 주체는 어디까지나 교수들이다. 교수들이 스스로 책임지고 대학사회를 변화시킬 때 나라와 더불어 사는 대학이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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