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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
  • 고은비
  • 승인 2021.10.21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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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점수 체계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노동경제학 중간고사 이후 교수님을 찾아가 항의 아닌 항의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필자는 노동경제학이라는 과목이 너무 재밌었고 그만큼 학점에 욕심이 있었던, 패기 있는 대학생이었다. 그 교수님이 이후 자신의 지도교수가 되리라는 것도, 자신도 잊고 있던 이 일을 기억하고 그때의 패기로움을 찾으시리라는 것도 몰랐던 학부생이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재화·서비스 시장과 달리 내가 공급자가 되는 노동시장에 관해 공부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나도 노동시장에서 내 노동을 판매하고, 대학에서 얼마나 준비되느냐에 따라 다른 임금을 받게 될 것이었다.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노동시장 성과에는 본인의 교육수준, 직업 훈련과 같은 변수 외에도 부모의 교육수준, 가정의 경제적 여건 등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교과서의 예시 외에 교수님께서 소개해주셨던 여러 편의 논문들은 너무나도 낯선 신세계와 같았다.

현대사회에서 노동경제학이 중요해지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당시 필자는 논문은커녕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는 방법조차도 몰랐고, 당연히 사회과학 연구에서 사용하는 데이터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주변에서 부모님이 선생님이어서 여러 정보를 많이 얻고 공부도 잘하던 친구나, 가정의 경제적 여건이 좋아서 학원을 많이 다닐 수 있었거나 유학 준비에도 걱정이 없던 친구를 본 경험은 있지만, 이걸 도대체 어떻게 데이터를 이용해서 분석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 대학원에 아는 선배가 있었고 그 선배가 생각도 못 했던 또 다른 주제인 ‘결혼 시장’에 대해 연구하는 것을 보며 대학원에 진학하면 이러한 분석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필자의 연구주제는 노동시장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그중에서도 교육에 관한 내용이다. 노동시장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며, 노동과 교육은 떼려야 뗄 수 없고 교육에 대한 분석 역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많은 선행연구와 달리, 필자는 여러 연구를 통해 동성 교원 존재의 롤모델 효과를 분석하고, 고등학교에서의 교육투자가 차후 노동시장 성과에 미칠 수 있는 영향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연구를 통해 대학뿐만이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 교육투자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대학 진학 후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롤모델이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최근 노동시장과 교육 환경에서 여러 변화가 나타났다. 2017년 하반기부터 노동시장에는 대학의 이름이 아니라 경험 혹은 경력 사항 등 지원자의 직무능력을 강조하는 블라인드 제도가 도입되어 노동시장에서 교육이 이전과 다른 형태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었다. 교육 분야에서는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 도입되어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문·이과에 따른 과목 구분이 완전히 사라진다. 교육부는 ‘모든 학생이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해당 제도를 도입했지만,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상 학생들은 창의융합형 인재로 성장하기보다는 여전히 원하는 대학·학과에서 요구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노동은 생산요소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노동 공급의 형태가 바뀌어 가도 지속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교육에 관해서도 현실을 바탕으로 한 정책적 함의를 도출하기 위해 발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덧붙여 교육, 그리고 롤모델의 존재는 여러 분야의 후속세대를 양성하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실제로 노동경제학을 강의하셨던 교수님의 그 교육과 대학원 선배의 존재, 학과 내 첫 여성 교수님의 임용은 필자의 대학원 진학에 영향을 주었고, 필자를 경제학 박사로의 길, ‘학문후속세대’로의 길로 이끌었다. 각 분야를 더욱 발전시킬 후속세대를 양성하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교육에 관한 연구가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고은비
서울시립대에서 「대학교육제도와 인적자본 축적 및 노동시장 성과에 대한 실증분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서울시립대에서 경제학원론(미시)를 강의하고 있으며, 경제학 분야 중 노동경제학, 교육경제학, 재정학에 계속해서 관심을 두고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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