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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데미우르고스와 과학의 위선
21세기 데미우르고스와 과학의 위선
  • 이상훈
  • 승인 2021.10.2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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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오늘을 말하다 ② 과학기술 발전과 인문사회

시대가 학문 분야 간 소통과 협업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고, 소통과 협업의 선결요건은 학문의 균형발전임에도 불구하고,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는 여전히 심각한 소외와 격차 속에 방치되고 있다. 학술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기관이나 심의자문기구는 물론이요, 대학의 ‘학술연구’를 뒷받침할 전문법령조차 전무한 것이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실상이다.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가 스스로의 본령을 지키고 학술연구의 공공성과 사회적 기여도를 높일 기반 확립이 시급하다.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는 앞으로 11회에 걸친 기고를 통해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 연구와 교육의 현황과 전망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정부와 국회의 가시적 조치를 촉구하고자 한다.  

인간 소외를 넘어 인간 상실되는 과학문명 시대
인문정신·사회적 가치 빠진 과학의 위선 드러나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로 대변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한마디로 세계를 스마트하게 만들고 있다. 첨단 로봇과 과학이 고도의 경륜과 실력을 갖춘 외과의사보다 더 정확히 수술을 집도하고, 우주에서 깨알같이 지나다니는 지구 표면의 삶을 손오공이 여의주 들여다보듯이 훑어 내린다. 과학기술 만능주의에 지치면 젊어도 자칫 3포세대로 전락하고, 디지털이란 미끼 상품에 현혹되어 코인을 놓치면 졸지에 벼락거지로 주저앉기도 한다. 

과학기술문명의 혜택으로 세상이 상전벽해로 변하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1970~80년대 압축성장을 위해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지내던 우리가 언제 금수저, 은수저, 흑수저를 나누었던가? 오징어 게임으로 전락한 지금의 세태를 보면 오히려, 고시공부로 찌들던 몇몇을 입신출세에만 눈먼 불행한 젊음으로 치부했던 개발성장 시대가 더 휴머니스틱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과학기술이 점점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인문정신이 더욱 요청되는 이유를 성찰해보아야 한다. 사진=픽사베이

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은 전남 신안군 임자대교에서 열린 ‘세계 최대 풍력단지 48조 투자 협약식’을 찾아 “완전히 가슴이 뛰는 프로젝트”라며 소회를 밝혔다. 전라남도는 이날 행사에서 세계 최대 해상풍력단지를 포함한 거창한 ‘전남형 뉴딜’ 전략을 보고하고 전남형 상생 일자리 협약식도 개최했다. 신재생에너지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이며 그 행사장 뒤에는 거대한 크기의 풍력발전기 여러 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국감을 통해 드러난 실태는 이들이 모두 발전기로 돌리는 모형이 있었으며, 설치비용만 3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음이 밝혀졌다. 이를 한무경 의원은 “전기를 생산하는 풍력이 아닌 전기를 소비하는 풍력인 셈”이라며 “보여주기식 행사를 위해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풍력발전에 기대었던 유럽을 엄습한 최근의 에너지 위기를 함께 보면서, 어쩐지 과학과 과학 행정의 위선을 새삼느끼게 한다.

 

과학과 과학 행정의 위선이 보인다

과학과 디지털 기술문명은 21세기 데미우르고스(제작자)를 자임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모바일 환경 속에서 점점 더 스마트해지고 있고, 유전자 가위가 생명을 공학의 주제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런데 정작 결정적 주체인 ‘인간’이 소외를 넘어 ‘상실’되고 있다. 과학을 비롯한 오늘날의 현대학문들이 철학에서 분화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던 18세기 독일철학자 칸트의 용어를 빌자면 다음과 같다. “과학없는 인본은 공허하지만, 인본없는 과학은 맹목적이다.” 오늘날까지도 모든 학문분야가 자신의 경계를 묻는 첨단에서는 다시금 철학으로 귀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문정신과 사회적 가치의 영역은 마치 공기와 같이 공동체적 삶의 기반을 이루는 사용가치이지만, 계량화된 교환가치에 과학마저를 팔아넘기는 세태에 의해 유배된 선비 꼴로 전락하고 말았다.  

임시정부 마지막 주석을 지낸 김구선생은 21세기 한류열풍과 BTS 아미를 예언이라도 하듯이 ‘나의 소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우리의 부력은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인문정신과 사회적 가치의 융합으로서의 문화는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창이자 의미체계이다. 

우리는 문화를 통해 경험의 성격을 이해하고, 행위의 규범을 설정하며,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그래서 과학이 공정의 기준에 관여하고 AI와 같은 새로운 실재에 제약적 기능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문정신과 사회적 가치와 함께 가야 한다. 21세기의 가장 참신하고 도전적인 기업가의 상징이었던 스티브잡스가 2011년 IT 역사에 기록되는 또 하나의 제품, iPad2를 출시하면서 “기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애플사의 DNA다. 우리의 심장 박동에는 인문정신(liberal arts & the humanities)과 결합된 기술이 있다”라고 천명한 이유를 새겨야 한다.

 

기술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인문정신 강조

한국연구재단이 2021년도에 제출한 학술연구지원사업 성과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1년 국가 전체 R&D 투자비가 100조원 시대에 돌입하였다. 이는 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이런 정부 R&D 예산 중 인문사회 분야 순수 연구비의 비중은 1.2%에 불과하다. 정부 R&D 예산은 민간의 투자를 기대하기 힘든 기초분야를 지향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해 과학기술 응용개발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이마저도 올해 1월 1일부터 발효된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을 통해 인문사회문화예술체육분야 연구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이 법안이 소관 주무 정부부처를 통해 발의되지 않고 의원입법으로 우회 발의되어 교육부와 인문사회문화예술체육분야 연구자들을 철저히 소외시키고 일방적으로 통과되어 심각한 부작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철학의 시대였던 2500년 전쯤 플라톤은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에서 최고선을 본떠 그 선의 원본에 최대한 가깝게 세계를 창조한 초자연적인 존재를 데미우르고스로 묘사한다. 과학기술문명은 현대판 데미우르고스라 불러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가능한 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하게 세계를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결국 모방인 이상 인간이란 이데아보다는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인문정신과 사회적 가치의 함양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가 지금이라 생각한다. 

초연결사회임에도 불구하고 협동은커녕 갈등과 대립, 혐오와 차별이 일상을 위협하는 것은 인문정신과 사회적 가치가 빠진 과학의 위선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시대의 철학은 인본주의 르네상스를 새삼 요청하는 것이다.

 

이상훈
대진대 교수·문화/기술철학(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회장)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에서 서양철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진대에서 교무처장, 산학협력단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역사문화콘텐츠학과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는 뉴미디어 시대의 문화와 철학, 논문은 「민주공화주의 이념의 기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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