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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환 전문의] 세계문학 좋아했던 소년, 의학으로 역사를 추리하다
[이지환 전문의] 세계문학 좋아했던 소년, 의학으로 역사를 추리하다
  • 김재호
  • 승인 2021.11.05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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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부키 | 308쪽) 쓴 이지환 전문의

2년 넘게 의학부터 철학·역사 등 엄격하게 공부해 집필
백인 위주로 남아 있는 기록들로 인해 인물 설정 어려워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는 술술 읽힌다. 이지환 전문의는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그는 “어린 시절 글 읽는 걸 좋아해서 다방면에 독서를 했다”라며 “제일 좋아했던 건 세계문학이었다”라고 말했다. 문장력이 좋은 이유다. 지난달 19일, 건국대병원에서 이 전문의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이지환 건국대병원 전문의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2년 넘게 엄격한 공부를 했다. 사진=김재호

이 전문의는 “다독을 했던 습관이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으며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라며 “내가 막연하게 인류를 위해 선을 추구하며 희생할 수 있지만 바로 옆의 타인과는 잠시라도 같이 있을 수 없다는 심리적 내용을 오랫동안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마리 퀴리를 다룬 챕터에서는 “까만 잉크의 피난처”라는 표현이 나온다. 퀴리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는데, 그 상황을 이 전문의가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책을 정말 사랑하지 않는다면 쉽게 나올 수 없는 표현이다. 

이 전문의는 책에 담기지 않는 세종 관련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세종이 갑자기 살 빠진 증상에 대해 당뇨병이었을 거라는 추측이 많다”라며 “하지만 세종이 혈당 강화제를 쓰지 않고 20년 이상을 지낼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당연히 조선시대에 혈당 강화제는 없었다. 또한 이 전문의는 “이성계나 이방원이 당뇨 증상을 보였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에 유전적 당뇨병이었을 가능성은 낮다”라고 말했다. 

가우디를 다룬 챕터에서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예술가들은 그들의 고통을 작품에 융해해 뽑아낸다.” 혹시 이 전문의도 많이 아팠을까? 그는 “책에서 다룬 인물들만큼 아팠던 적은 없었지만 일 때문에 환자들을 많아 만나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 전문의는 “그 고통들을 극복하는 방법들이 다 달랐고 그 안에서 성격이 드러났다”라며 “퀴리는 우직하게 자신의 일을 했고, 세종은 자신이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에 주력했다”라고 말했다. 위대한 학술·예술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을 알게 되면, 그 인물들을 더 잘 알 수 있다. 

“어떤 분야든지 자료가 남아 있는 건 백인들 위주다.” 이 전문의는 10명의 인물을 선정하는 데도 신경을 많이 썼다. 동양인 세종 1명, 백인 여성 2명, 흑인 1명, 나머지 6명은 백인이다. 밥 말리 같은 경우에는 자료가 너무 없어서 영어로 된 책을 직접 구입해 샅샅이 조사해야 했다. 이 전문의는 집필을 위해 의학뿐만 아니라 철학과 다른 분야 등은 매우 엄격하게 공부했다. 2년 넘게 매달린 결과가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다. 

이 책은 역사, 문학, 과학 등이 융화돼 정말 재미있다. 지금 이곳의 우리만 힘든 게 아니다. 이전에 살았던 위대한 예술가들은 끔찍한 고통을 딛고 삶을 긍정했다. 그 결과로서 작품은 오늘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 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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