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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 디지털 인간이냐 냉동인간이냐
영생, 디지털 인간이냐 냉동인간이냐
  • 김정규
  • 승인 2021.11.05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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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규의 책으로 보는 세상_『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리사 팰트먼 배럿 지음 | 변지영 옮김 |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43쪽

인간의 뇌는 하나의 네트워크로서 신체를 운영
성장하면서 끊임없이 신경세포들이 죽고 태어나

인간의 마음에 대하여 플라톤은, 자기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세 가지 내면의 힘 사이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전투라고 표현했다. 첫 번째 힘은 식욕이나 성욕 같은 ‘생존 본능’이고, 두 번째 힘은 기쁨, 화, 두려움 같은 ‘감정’이다. 인간은 이 생존 본능과 감정이라는 야수에 고삐를 채우기 위해 세 번째 힘인 이성적 사고를 갖게 됐고, 이것이 인간을 더욱 문명화시키고 도덕적인 길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 막강한 서사의 영향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20세기 중반에 폴 매클린은 외관검사 방식의 연구 끝에 인간의 뇌가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공식화했다. 이것이 본능적인 생존 뇌(도마뱀 뇌), 포유류의 감정적인 뇌(변연계), 인간의 이성적인 뇌(신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삼위일체의 뇌’다. 찰스 다윈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고, 칼 세이건이 1977년에 출간한 저서에서 이 개념을 소개해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뇌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이 주장은 힘을 잃고 말았다. 신경과학 분야에서 혁신적 연구로 명성을 얻고 있는 리사 펠드먼 배럿은 근작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변지영 옮김, 더퀘스트, 2021)에서, ‘삼위일체 뇌 가설’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인간의 뇌는 하나의 네트워크라고 말한다. 그리고 뇌의 핵심 임무는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고, 진화과정에서 복잡해진 ‘신체’를 잘 운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원시 형태로 존재하다가 캄브리아기 때 포식자가 나타나면서 급격하게 진화했다. 사냥을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커지고 민첩해졌다. 심혈관계, 호흡계, 면역계가 발달하면서 신경세포가 증가했다. 수분, 혈액, 포도당, 산소 같은 신체 자원 또한 정교한 관리가 필요해졌다. 이를 위해 생겨난 별도의 기관이 바로 ‘뇌’라고 한다. 신체의 구성요소와 에너지를, 즉 ‘신체 예산(body budget)’을 총괄하는 지휘본부가 신설된 것이다.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일부만 완성된 상태로 태어난다. 그 이후 20여 년에 걸쳐 완성되는데, 외부 정보가 신생아의 뇌로 이동하면서 신경세포가 발화해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성인기에 접어든 후에도 인간의 뇌는 ‘상시 공사 중’이라고 할 정도로 끊임없이 신경세포들이 죽고 태어나고 필요에 따라 네트워크가 재조직화한다.

인간의 뇌는 1천280억 개의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하나의 신경세포는 약 1만 개의 신경세포와 시냅스 연결을 이루고 있다. 수상돌기는 다른 신경세포들로부터 아날로그 형태의 신호를 받고, 축삭돌기는 다른 신경세포에게 스파이크 형태의 디지털 신호를 보낸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뇌는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는 세포체, 디지털 신호를 아날로그 신호로 바꾸는 시냅스가 복잡하게 네트워크를 이루는 구조다. 

 

마음은 영혼 혹은 뇌에 있는 것인가

배럿을 비롯한 일군의 신경과학자들은 뇌 속에서 아날로그 신호와 디지털 신호가 적절히 변환되면 놀라운 정신작용이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마음’은 비물질인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뇌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된다. 이러한 이론적 바탕 위에서 네덜란드 신경과학자 란달 쿠너는 인간의 뇌 전체를 컴퓨터와 같은 기계장치에 에뮬레이션하는 방법으로 마인드 업로딩(인간의 마음을 디지털화해 컴퓨터와 같은 인공물에 전송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2014년 개봉한 영화 「트랜센던스」(월리 피스터 감독)는 미래 인간에 대한 화두를 던진 문제작이다. 초지능에 자각능력까지 가진 슈퍼컴 트랜센던스의 개발책임자인 윌이 반과학단체(RIFT)의 공격으로 죽을 지경이 되자, 연인인 에블린이 윌을 살리기 위해 그의 뇌를 트랜센던스에 업로딩한다. 윌의 마인드 업로딩은 성공했고, 윌은 일취월장 기술적 성과를 이룩해낸다. 남의 몸에 자기 뇌를 복제하고, 생전과 똑같은 몸을 복원하여 활동하기도 한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생각하는 미래 인간이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의 주장대로라면, 특이점에 도달하는 2050년경이면 마인드 업로딩이 가능하게 된다. 무한 복제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편, 냉동인간은 약 50년 전에 시작되었다. 현재 미국에는 냉동인간 회사인 알코어 등 네 곳에서 100여 구의 냉동인간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비용은 약 12만 달러. 자, 그렇다면, 지금 50대 이하의 세대들은 영생의 꿈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냉동 형태냐 디지털 형태냐는 선택해야겠지만.

 

 

김정규
한국대학출판협회 사무국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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