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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미래와 노동의 권리
학문후속세대의 미래와 노동의 권리
  • 황현우
  • 승인 2021.11.10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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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우리의 인생은 어떻게 보면 생각지도 않던 우연이 우연으로 이어지는 기적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내가 연구자의 길이 들어선 것도 이와 같은 우연의 연속이 기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나의 대학 생활을 돌이켜보면 강의를 듣고 배울 때마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는 것을 느꼈고, '더 알고 싶다', '더 배워보고 싶다'는 느낌을 강력하게 받았던 적이 많았다. 이러한 생각이 나를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서, ‘연구자-지식노동자’라는 타이틀을 갖게 해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학문에 대한 호기심으로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현실적으로 전업 공부를 하는 사람이 등록금을 해결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진학한 과가 사업(BK21+ 등)을 진행하고 있지 않은 경우, 유일하게 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학과사무실 등의 조교로 일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현재와 미래 모두 불투명하다

나는 등록금을 면제하는 조교로 1년 반의 등록금을 해결한 적이 있다. 이런 등록금 면제형의 조교는 대부분 특정하게 업무가 정해진 것이 없고 근무일도 전일 근무가 아니기 때문에 과사무실에서 학사 조교의 보조역할이나 특정 교수의 조교로 배정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업무는 부정기적으로 여러 잡다한 일이 반복되는 형태였다.

그 당시 나는 나의 노동에 대해서 자세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왜 일하면서 임금을 받지 못하는가? 그리고 1년간 일하다가 퇴직하면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가? 학교에서 일하다가 다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노동자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주장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에서야 다시 생각해보니 그 당시 당연한 권리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나의 큰 문제점 중 하나였다.

대학 강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나는 박사 4학기에 처음 강의를 시작했는데 그때 당시의 소속 대학은 강사료를 강의평가 등급별로 세분화해서 지급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 임용된 강사라 제일 하위등급의 강사료를 받았다. 강단에 서는 순간부터 차별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19년 2학기에는 당사자인 강사와 협의도 없이 강의료를 삭감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대학은 공동체 안에서 절대적인 약자인 대학원생과 강사를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필요에 의해 쓰다 버려지는 자들로 인식시켰다. 이미 대학사회에서는 구성원들의 노동권과 정당한 대가를 가볍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이다.

나는 석사학위 취득 후 잠시 쉬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과연 내가 인문학 전공자로서 대학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등의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사과정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학문과 생계가 이어질 수 있는 지점이 필요한데, 그 접점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취업을 해야 하는 것인가?' 등의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결국,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한번 승부를 걸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박사과정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운이 좋게도 복수의 대학에서 강사로 강의를 하면서 연구를 함께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많은 대학원생이 자신만의 꿈을 위해 어려움을 버텨가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학문후속세대의 현재와 미래가 불투명하면 그 누구도 대학원에 진학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대학은 대학 연구의 미래가 학문후속세대에게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연구와 삶이 병행될 수 있도록 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황현우 
부산대 한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동아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를 수료하고 동아대 석당학술원 특별연구원, 동아대-부산외대 강사로 일하는 대학원생이면서 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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