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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23] 이분법적 사고의 기원에 대한 고찰
[한민의 문화등반 23] 이분법적 사고의 기원에 대한 고찰
  • 한민
  • 승인 2021.11.10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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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23

얼마 전 한국인들의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글을 쓰고나서 한동안 그 주제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분단이라는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 외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세상에 우리만 이런 분열과 대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일까. 불현 듯 유럽의 역사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적으로 돌리고 대립하는 보다 보편적인 원인이 있을지 모른다.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하게 벌어졌던 시기를 아시는가? 많은 이들이 인류가 보다 ‘미개했던’ 중세 초기, 예를 들어 12~13세기 쯤일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마녀사냥은 17세기에 가장 성행했다. 그것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근대의 서막을 열었다는 데카르트(1596~1650) 이후에 말이다.

이게 웬일인가. 근대라면 이성의 발견으로 복종의 대상이었던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을 발전시켜 인간이 역사의 주체로 우뚝 서기 시작한 그 시기 아닌가. 이성과 합리의 시대에 마녀사냥이라니.

마녀로 판명된 여인을 화형시키는 장면을 묘사한 삽화다. 이미지=위키백과

이 같은 아이러니는 시대가 바뀌는 시기 사람들의 욕구로 이해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이성이 강조되는 새 시대가 열리니 과거는 그에 대비되는 개념(예를 들면, 광기)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를 과거의 나와 구별하는 방법이자 과거를 나쁜 것으로 만들어 현시대를 높이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에는, 이성의 발견과 함께 과거의 전통과 유산들이 비이성, 즉 광기의 역사로 규정되면서 벌어졌던 일들이 잘 묘사되고 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17세기의 마녀사냥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일어난 일들 중 하나다. 

이어지는 18세기를 계몽주의 시대라고 하는데 계몽주의의 영어 enlightment란 빛을 비추다는 뜻이다. 비이성의 시대를 어둠으로 보고 그 어둠을 밝히려는 시도를 enlightment라 칭한 것이다. 기존의 질서(神 중심의)가 사라진 세계는 어둡기는 했지만 한편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 시기이기도 했다.

사상가들은 나름의 지혜를 짜내어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고 자신들의 이상을 구현하려 했다. 외울 것 많은 18세기의 계몽사상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들이다. 그리고 수많은 전쟁으로 점철된 18~20세기 중반의 세계사는 각자 옳다고 믿었던 이상들을 이루기 위한 싸움의 역사였다.

자신들이 옳다는 믿음은 저들은 틀렸다는 확신으로,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한 투쟁은 상대를 죽여야 하는 전쟁으로 화한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제국주의와 민족자결주의 등등의 갈등이 그렇다. 뭐가 많이 생략된 거 같지만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세계사를 대략 이런 흐름으로 요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이분법적 사고, 즉 나와 의견이 다른 이들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인간의 대처방식인지도 모른다. 나를 규정하는 방법은 다른 이들과의 차별점을 찾는 데서 시작하기 마련이니까. 다음은 새 시대를 만들어가는 방법이다. 

새 시대의 태동기는 어둡지만 많은 대안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방법이 옳다고 믿는 이들은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 내 이상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는 걸림돌 또는 ‘역사의 진보를 막는 반동’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분법적 사고는 심화되고 사회는 갈등과 분열에 휩싸이(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다시 한국을 보자. 한국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했다. 변화에 대처하려 하면 또 다른 변화가 들이닥쳤다. 끊임없는 자기규정이 필요했던 역사였다. 계속되는 혼란은 새로운 빛을 요구했고 저마다 옳다고 믿는 방식들이 충돌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갈등과 분열은 변화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우리들의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나는 한국인들이 분열하고 갈등하는 것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지금 이 세상은 어두우니 이를 비출 빛을 찾고자 하는 욕망 말이다. 그러한 바람이 존재하는 한 한국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더 좋은 세상으로 향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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