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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대학원, 정원 조정이 시급하다
인문사회 대학원, 정원 조정이 시급하다
  • 이종봉
  • 승인 2021.11.05 1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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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오늘을 말하다 ④ 학문후속세대 육성과 대학원

시대가 학문 분야 간 소통과 협업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고, 소통과 협업의 선결요건은 학문의 균형발전임에도 불구하고,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는 여전히 심각한 소외와 격차 속에 방치되고 있다. 학술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기관이나 심의자문기구는 물론이요, 대학의 ‘학술연구’를 뒷받침할 전문법령조차 전무한 것이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의 실상이다.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가 스스로의 본령을 지키고 학술연구의 공공성과 사회적 기여도를 높일 기반 확립이 시급하다. 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는 앞으로 11회에 걸친 기고를 통해 인문사회문화예술 분야 연구와 교육의 현황과 전망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정부와 국회의 가시적 조치를 촉구하고자 한다.  

부산 지역 철학과는 1곳에 불과해 인문학 붕괴 위험
3년간 신분을 보장하는 강사법으로 신규 채용이 막혀

21세기에 들어 한국의 대학사회에서 위기란 용어들이 너무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위기의 한 축은 학령인구 감소로 각 대학에서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위기, 즉 벚꽃 피는 순서로 대학이 무너질 것이라는 것과 함께 다른 한 축은 인문사회계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 수의 급격한 감소로 대학원의 위기와 더불어 학문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런 현상은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지난 5월 12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강사 고용 보장, 처우 개선 예산 확대’를 촉구하는 모습. 사진=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대학원의 위기적 상황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종종 발표되었지만, 올해 모 언론에서 2020년 대학정보공시자료를 통해 정원 10%를 채우지 못한 대학, 정원 30%를 채우지 못한 대학들이 다수 있었다고 충격적인 보도를 하였다. 이의 통계는 그나마 여건 좋은 서울소재 대학원의 상황이고, 이공계 대학원생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서울의 인문계와 서울 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이러한 통계의 수치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대학원생을 학문후속세대라고 바로 칭하기는 다소 한계가 있지만, 이들은 학위과정을 마친 후 학문후속세대로 전환하고 있다. 대학원생과 학문후속세대는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어서, 대학원의 위기가 곧 학문후속세대의 위기로 나타날 수 있으므로 같은 범주에서 논하고자 한다.

실제 서울의 주요대학 중에 하나인 한 대학은 최근 몇 년간(5년) 인문계열의 석사과정 충원율이 평균 70%가 안 되고,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과 또 다른 지역 대학은 지역의 거점대학으로 나름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 몇년간의 석사과정 신입생 충원율을 보면 숨이 막힐 지경인데, 내년은 더 심각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대한민국 전체 대학에서 공통적으로 체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나마 4단계 BK21에 선정된 학과들은 이런 절망감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다. 곧 학문후속세대가 끊어질 수 있고, 그 파장은 앞으로 더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하나는 우리사회에서 신자유주의 함께 지나친 실용주의로, 점차 인문학이 소외되는 현상과 함께 국가의 대학원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국가의 교육정책은 대학에 초점을 두었고, 상대적으로 대학원에 대해서는 비중이 적었다. 대학원의 양적 팽창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양적 팽창이 이루어질 때부터 문제가 나타났지만, 이에 대한 대책, 즉 각 대학원의 정원에 대한 조정을 시도하지 못하였다. 대학은 대학원생을 통해 대학의 재정 위기를 타개하고 있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쉽게 손을 댈 수 없었다. 하지만 국가는 대학원의 정원을 조정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책을 추진하여야 했다.    

 

대학원 정원을 조정하지 못한 정책

다른 하나는 대학원 진학 이후의 전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꿈 혹은 이상만으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은 현재의 한국 사회적 구조 하에서 너무 위험하다. 대학원생들에게 비전을 갖지 못하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20세기 초부터 대학사회에서도 신자유주의가 엄습하여 인문사회계 학과들에 들어 닥친 구조 조정과 연관되어 있다. 하나의 예로, 부산 지역에서 철학과는 필자의 대학에서만 남아있고, 다른 대학에서는 구조 조정되었다. 이는 다른 학과들도 비슷한 양상이다. 이로 인해 인문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서 연구자의 길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점차 줄어들었고 혹은 구조적으로 갈 수 없게 만든 것이 요인의 하나이다. 

그런 와중에 3년 전부터 시행된 강사법도 조금의 역할을 하였다. 지금의 강사법은 강사의 처우개선을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처음 임용할 경우 3년간 신분을 보장해 주고 있다. 이는 거의 3년간 강사의 임용을 못하게 하는 문제를 야기하였다. 즉 박사학위를 받거나 박사 수료 후의 연구자에게 강사에 임용될 수 있는 기회를 사실상 박탈하였다. 일부 대학들은 이러한 점 때문에 강사의 신규 임용을 하지 않거나 아니면 겸임교원 임용제도 등을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오히려 강사법이 강사들에게 강의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러한 부분은 인문학의 위기 상황 하에서 대학원 진학을 주저하는 요소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인문사회계 대학원 위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대학원에 대한 정원 조정을 포함한 전면적 개편을 도모해야 한다. 지금은 모든 대학이 대학원의 석․박사과정을 두면서, 누구나 원서만 내면 거의 합격시키는 상황, 즉 부족한 인원을 채우기 위해 대학원생을 뽑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 같다. 이는 대학원의 원래 목적인 연구자 양성을 위한 것과 정반대의 모습이다. 교육부와 각 대학은 현재의 잘못된 모습을 그대로 둘 것이 아니라 하루 빨리 과감한 대학원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정부는 석사과정부터 정원을 과감하게 줄이고, 동시에 일정한 자격을 갖춘 학생, 즉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대학원생을 입학하게 하여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권역별로 연구중심대학 혹은 학과를 두고, 이들 연구중심대학 혹은 학과에 대한 과감한 지원책을 통해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여야 할 것이다.  

 

정원 채우기보단 자격 갖춘 대학원생 필요

아울러 학부의 인문학 양성을 위한 제도인 ‘인문100년 장학생’을 더 확대시켜 예비 인문학 연구자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전공탐색형(학부 1학년)의 인원은 가능한 줄이고, 이를 전공확립형(학부 3학년) 중심으로 재편하고, 이들에게 지원하는 장학금을 증액시켜 학부 3학년부터 인문학 연구자의 길을 모색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이 제도는 2015년부터 시행되었으므로, 제도 운영에 대한 성과와 문제점을 통해 개선할 부분이 있다면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현재 각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학․석․박사 연계과정’과 결합시켜 운용한다면 인문학 연구자를 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학원의 4단계 BK21에서 인문사회의 교육연구단(팀)의 수를 확대시켜 인문학 연구자를 더 확보하여야 한다. 4단계 BK21의 첫 3년에서 인문사회의 사업단과 팀의 수는 이공계의 단과 팀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므로(재정지원 금액은 3분의 1의 비율보다 더 적을 것으로 생각된다), 4단계 BK21이 3년 지난 시점에서는 인문사회계의 단과 팀을 이공계의 2분의 1 수준으로 확대시켜야 할 것이다. 인문학 분야의 경우, 권역별 단과 팀의 수를 함께 늘리지 못하면 최소한 팀의 수를 더 확대시켜 권역별로 연구중심대학 혹은 학과를 만들어서 역량을 강화시켜야 한다. 국가는 4단계 BK21의 첫 3년이 지난 후에 각 권역을 기반으로 인문학을 양성하는 강력한 정책을 실시하여야 하고, 이를 통해 인문학을 부흥시켜야 한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은 학문후속세대, 즉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여야 한다. 그 일환으로 한국연구재단에서 인문사회 학술연구교수 A유형(5년, 박사학위 소지자, 300과제)과 B유형(1년, 석사학위 소지 이상자, 2천 과제 내외)을 매년 뽑고 있는 것은 아주 유용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A유형은 학위를 받은 학문후속세대에게 연구를 계속 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중견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할 것이다. B유형의 경우도, 여건만 허락한다면 지원 금액을 조금 늘려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전에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강화시켜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은 사회의 버팀목이자 자양분이다. 자양분인 인문학을 연구할 수 있는 대학원생, 즉 학문후속세대가 줄어들면 학문공동체가 붕괴되고, 이어서 한국사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국가는 인문학을 연구할 수 있는 대학원생(학문후속세대)을 학부에서부터 확보하고, 이후 대학원 과정, 특히 박사학위 취득 후에도 학술연구교수제도와 같은 지원책을 통해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런 연후에 연구자는 안정된 마음을 통해 연구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 민의 마음을 다스려서 한국 사회가 더욱 건강하게 될 것이다. 

 

이종봉 부산대 사학과 교수
전국국공립대학교인문대학장협의회장

부산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한국과학사 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 인문대학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도량형사』, 『한국중세도량형제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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