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12-01 09:54 (수)
한국의 모던 시각장···글과 정신을 담다
한국의 모던 시각장···글과 정신을 담다
  • 조현신
  • 승인 2021.11.18 0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디자인 파노라마⑮
인쇄·출판 기술 발달이 낳은 한국 근대 시각디자인사
근대 책 표지로 알아보는 우리만의 독특한 스타일
왼쪽부터 잡지 <소년>(1908), 이해조의 신소설 『자유종』(1910), 나도향의 단편소설 『환희』(1923), 이상의 시집 『기상도』(1936)의 표지다.  출처=위키피디아

전통기를 해체하면서 근대를 견인해간 중요한 동력 중의 하나는 단연코 인쇄와 출판이다. 근대 국가와 민족 개념은 대중들이 동질의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면서 정립되어 간 것이고, 이들 대중이 새로운 지식 소비자로 등장했다는 주장은 꽤 설득력 있다. 서구 근대 시각디자인 역시 대중을 타깃으로 이들에게 어떤 형식으로 정보를 제공할 것이냐라는 의식에 기반해 시작되었다.

서구의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기계문명이 몰고 온 새로운 감수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 유토피아적 미래 세계에 대한 열망을 시각적으로 표출한 이들이다. 이들은 새로운 활자체, 일러스트레이션, 편집체계 등을 통해 이런 의식을 실험하고 유포하면서 새로운 시각문명의 촉매 역할을 했다.

그러면 식민의 상태로 출발한 조선에서 이러한 근대의 활자문명, 인쇄문화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한국의 식민지 하의 디자인은 모방과 이식만으로 설명되며, 한국 디자인사에서 연구 대상으로 거의 취급되지도 않는다. 심지어 일부 디자인사가는 한국 현대 디자인의 시발점을 해방 이후로 설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대 조선의 디자인을 찬찬히 살펴보면, 한 시대를 휩쓸고 간 세계적 양식과 시각적 특성이 조선적 스타일로 변화되면서 선명한 근대적 시각문화를 세워나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서구 문명권에서 동질적 감성과 이념을 시각화할 때 각기 고유한 문화적 전통과 접목되어, 각기 다른 스타일의 근대 시각디자인물로 탄생된 것과 같은 이치다. 즉 조선의 근대 디자인은 비록 식민상황에서 첫 발자욱을 떼었다 해도, 당대가 요구한 변화를 담아낼 새로운 양식을 내재화하기 위한 노력을 한 행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개항기의 민족적 시각장과 딱지본

조선 최초의 근대적 인쇄물은 정부기관인 박문국에서 1883년 10월 발행한 한성순보였으며 순한문, 세로쓰기로 발간되었다. 이 신문은 순 한자였다는 점. 정부의 관보 역할만을 했다는 점 등으로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이후 개화기 조선에서 발간된 인쇄물은 지식인들의 새로운 문명 습득과 보급을 위한 학회지와 기독교 단체가 발행한 종교서적, 조선 정부가 발행한 교과서가 주종을 이루었다. 이중 『야뢰』, 『태극학보』 등의 학회지는 지식인들의 당대 이념과 열망이 담긴 매체로 그 당시 절실했을 지정학적 지식의 표상인 지도가 표지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외에 태극과 조선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 등도 사용되었다.

1910년대에 들어 조선 땅에는 근대 시각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공예품 같은 전통 제본 방식의 이야기책이 방각본이라는 상업물로 유통되고 있었고, 책을 상품으로 인식한 사설 인쇄업자들이 본격적으로 대중의 취향에 맞는 울긋불긋한 채색인쇄물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엽서, 달력, 포스터, 관광책자, 담뱃갑 디자인, 광고 등이 생산되었고, 최초의 공산품이라고 일컬어지는 박가분처럼 상품의 포장에도 채색된 인쇄물들이 부착되기 시작했다. 또한 양복을 차려입은 신사 이미지가 들어간 간판, 구두, 인단, 담배, 석유상 등의 간판이 거리를 메우면서, 1927년 잡지 <별건곤>에는 논객들 사이에서 간판 품평회가 논의될 정도였다.

1910년대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읽을 거리는 역시 춘향전, 심청전 등 전통적 이야기와 새로이 등장한 신소설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딱지본이라고 일컬어지는 책의 형식으로 출간되었다. 표지의 그림이 화려하고 극적이며, 본문의 활자체도 커서 희미한 호롱불 옆에서도 잘 읽혔다고 한다. 이 딱지본의 다양한 표지는 당대 서구에서 유행하던 아르누보 스타일의 조선적 버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아르누보 스타일은 식물의 유려한 줄기를 기본 모티브로 삼아 각기 지역에서 발화한 전통적 장식 문양을 배치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양식을 추구한 세기말적 스타일이었다. 아르누보 스타일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독일의 유겐트스틸, 스페인에서는 모데르니스모, 오스트리아에서는 세세션으로 불리며, 일본에서도 크게 성행해 재팬 아르누보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파고가 조선에 들어온 대표적 작품 중 하나는 『자유종』의 표지이다. 태극문양, 귀면, 무궁화, 등의 전통적이며 이념적 표상을 장식적으로 이용하였고, 『모란꽃』의 경우 역시 꽃문양과 전통적 장식 문양을 배치하여 이미지가 없던 전통 서책의 양식을 벗어나 조선적 아르누보 스타일의 면모를 보인다.
 

모던 디자인 감각의 자취들

최남선이 발간한 최초의 근대 잡지 <소년>의 표지는 정제된 편집 감각과 더불어 월계관, 태극의 표상이 지닌 상징성을 활용하고 있다. 이후 1920년대에 들어서 극한적인 사건과 주인공들의 행위들 중심으로 전개되던 신소설의 과잉적 신파가 걷혀지면서 주인공의 내면을 조망하는 현대 문학의 감성은 디자인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쳤다.

1920년대 이후 책 표지 디자인은 모던 디자인이 추구하는 의도적 구성과 타이포그라피의 적절한 운용, 시각적 여백 등등을 살린 지면 배치를 시도했다. 특히 김찬영이 디자인한 나도향의 단편소설 『환희』, 이상이 디자인한 시집 『기상도』, 『백두산 등척기』 등은 근대적, 즉 세련되고 새로운 “모오던 감성”을 어떻게든 지면을 통해 발산하고픈 의식이 확연히 보이는 디자인들이다. 특히 아직 시서화가 분리되지 않고 통합적 재능을 지닌 근대의 지식인들은 문학과 그림의 통합을 자연스레 실행했고, 김용준, 이상, 길진섭, 정현웅, 김찬영, 등 화가와 문인들은 정신, 글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책 표지를 통해 근대적 시각문화의 한 장을 만들어갔다. 이들은 당대 서구에서 생겨나던 전문적인 디자이너로서의 직업인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근대기 시각문화의 장은 글과 정신, 이미지와 글씨를 통해 근대성, 새로운 기운과 그 생동감을 어떻게든 성취하려 한 자취를 보인다. 물론 문인, 화가들이 참여한 책 표지 외에 근대의 시각장을 이끌어간 광고, 잡지, 신문, 포스터, 엽서, 사진, 달력 외에 레코드 자켓, 담뱃갑, 로고, 상품포장 등에 펼쳐지는 근대적 감성과 그 욕망은 훨씬 다양하고 화려했다.

 

조현신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디자인학과 교수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에서 디자인 역사와 이론을 가르치고 있으며, 우리의 일상에서 친근하고 낯익은 디자인물에 관심이 많다. 특히 한국의 근대기 시각디자인문화사를 주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 『일상과 감각의 한국디자인문화사』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