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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와 휴머니즘 교육
고교학점제와 휴머니즘 교육
  • 이중원
  • 승인 2021.11.1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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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이중원 논설위원 /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이중원 논설위원

2025년에 고교학점제가 전면 실시된다. 이에 대비하고자 교육부는 현재 일부 학교에서의 시범 실시는 물론, 2022년부터 적용될 고교교육과정의 개정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급변하는 미래사회에서 다양한 능력과 적성을 가진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여, 개인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토록 하는 진정한 학생 맞춤형 교육의 실현을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수능 대상 교과목의 수는 줄이고 일군의 교과목은 통합하며 진로와 관련된 역량을 함양하는 교과목은 선택의 폭을 넓히는 등, 교육과정의 편제를 바꾸고 있다. 이는 학생들의 학습 주권을 인정하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선택의 다양성을 보장한다는 면에서, 기존의 획일화되고 서열화된 고교교육과정에 대한 혁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긍정적인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는 변화 또한 감지되고 있다.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휴머니즘과 그에 토대가 되는 철학, 윤리학, 종교학 등에 함축된 인문 정신에 대한 교육이 점점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휴머니즘 교육의 중요성은 오늘날 곳곳에서 목도되고 있다. 우선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계층간, 지역간, 세대간, 남녀간 그리고 진영간 갈등과 분열, 반목과 대립 그리고 차별과 혐오가 매우 심각하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갈등의 골이 깊고 소통은 불가능하며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격렬한 충돌의 상황까지 이르고 있다.

또한 오늘날 인류는 전지구적 차원의 기후 재앙과 환경 위험 그리고 팬데믹 위기로 생존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이는 현대 과학기술문명의 발전이 휴머니즘과 같은 인문적 가치보다는 주로 경제성장과 산업화에 초점이 지나치게 맞춰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편 4차 산업혁명의 진행은 21세기 사회를 디지털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초연결 사회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에 기반한 지능정보사회로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이에 수반하여 휴머니즘을 위협하는 새로운 유형의 윤리적·사회적 문제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인간을 경시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 이를 디지털 기술을 통해 빠르게 확산시킨 ‘박사방’ 사건이나,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훼손한 인공지능 ‘이루다’ 사건 등이 그러하다. 

한마디로 현재와 미래사회에서 인간이 겪게 될 실존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중시하는 휴머니즘과 이에 토대가 되는 인문 정신, 그리고 사회적 가치에 대한 교육이 미래의 인재 양성에 반드시 필요하다. 휴머니즘은 인간 개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사회적 관계를 포함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이를 우선시하는 인류 역사의 고귀한 정신이다. 인간이 자아 성찰을 통해 인간다운 도덕적 품성과 역량을 갖추고 타인·공동체·자연과 함께 공존하기 위해 사회적 가치와 윤리를 함양하는 일은 모두 중요하다. 이 모두는 인간이 주체로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영위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OECD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제시한 교육혁신 추진계획인 「OECD Education 2030」 프로젝트에서도, 미래 인재가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창의성과 문제해결력’, ‘갈등과 딜레마를 해소하는 협동·공감·갈등 관리 능력’, ‘책임감과 시민의식’의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역량은 휴머니즘 교육의 핵심이다. 얼마 전 여론조사에서도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인성교육이 매우 필요하고 중요함을 강조한 적이 있는데, 이 또한 휴머니즘 교육의 핵심 영역이다. 더 늦기 전에 현재 진행 중인 고등학생을 위한 ‘2022 개정교육과정’에서부터 인문 정신과 휴머니즘에 대한 교육이 확대·강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중원 논설위원
서울시립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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