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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폭 확장된 새 ‘연구윤리 가이드라인’ 나온다
대폭 확장된 새 ‘연구윤리 가이드라인’ 나온다
  • 강일구
  • 승인 2021.11.19 1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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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12일 연구윤리 가이드라인 토론회
연구윤리 범위 대폭 확장… 논문 공저자·이해충돌·교수갑질 등 포함  
“회색지대에서 벌어지는 문제 줄이고 연구진실성 확보”
※
※출처=11월12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토론회

국가연구개발혁신법에 따른 연구윤리 가이드라인(안)이 나왔다. 연구윤리 범위가 확대되고 사전예방에 중점을 둔 가이드라인이다. 일선 연구자들은 가이드라인이 연구현장에서는 강제성을 띨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주최한 ‘연구윤리 가이드라인(안) 토론회’가 지난 12일 열렸다.

가이드라인은 연구윤리의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엄창섭 대학연구윤리협의회 회장(고려대 의대 해부학교실)은 토론회에서 “올바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연구윤리를 정립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라고 했다. 엄 회장이 이야기하는 올바른 연구는 공식적으로는 ‘책임있는 연구수행(Responsible Conduct Research)’을 가리킨다. ‘책임있는 연구수행’은 연구 모든 과정에서 연구진실성을 확보하자는 의미다. 엄 회장은 <교수신문>과의 통화에서 “연구윤리에 어긋나는 것 같지만 부정행위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회색지대가 연구 활동에 존재한다”라며 “올바른 연구는 이런 회색지대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점진적으로 줄이고 연구진실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에는 책임있는 연구수행에 대한 이 같은 취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기존 연구윤리의 범위에 속한 문제는 위조, 변조, 표절 같은 연구부정 행위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가이드라인에서는 사전예방을 비롯해 △학문교류에 관한 윤리 △이해충돌 예방 및 관리 △인간 대상 연구 및 동물실험 △건전한 연구실 문화 조성 등을 연구윤리의 범위에 포함했다.

가족과 논문발표시 사전신고…연구자 차별금지도 포함

가이드라인에 포함된 대표적인 연구윤리는 학문교류에 관한 것이다. 국제 학술대회에 딸을 데려간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논란도 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엄 회장은 “학술활동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가 한정돼 있었기에 그간 혼란이 벌어졌다”라며 “학술활동을 연구자 개인 또는 단체가 학문적·과학적·기술적 발전을 위해 다른 연구자, 일반인, 단체와 소통하는 것으로 규정했다”라고 말했다. 학술활동의 범주를 기존 논문 투고나 출판 등 연구 결과물 중심으로 보던 것에서 더 나아가 ‘논문 발표’ 등 학술활동 과정까지 확장한 것이다.

학술활동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중심으로 학문교류 시 주의해야 할 점도 나왔다. 가이드라인은 특수관계인(미성년자, 가족 등)과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하거나, 이해충돌이 있는 경우에 대한 사전신고 필요성을 제안했다. 이와 관련된 사건은 최근에도 있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서울대 교수 22명이 자녀나 동료 교수 자녀를 논문 공저자로 올린 것이 드러났다. 가이드라인에는 이 외에 연구결과의 사회적 책임 인지, 연구기관과 국가 핵심 기술 등이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정보 보호 등에 대한 사안도 포함했다.

건전한 연구실 문화 조성도 연구윤리 범위에 새롭게 추가했다. 건전한 연구실 문화란 연구자 인권과 권리 보호, 연구자 간 상호존중과 갈등관리, 개방적인 소통문화, 안전과 신체적·정신적 건강 보호의 의미로 정의됐다. 대학원생을 상대로 한 교수의 갑질, 폭언, 추행 등에 대한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근에는 연구실에서 제자를 성추행한 서울대 교수가 대법원에서 유죄를 받은 일도 있었다. 가이드라인은 실험실 내 연구자 권익침해에 대한 기관의 예방·대응 방안 마련과 연구책임자가 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차별금지, 연구자 상호관계의 공정성과 갈등관리 등도 담겼다.

이해충돌 문제도 연구윤리에 포함됐다. 연구자는 연구 관련 이해충돌이 판단되면 이를 신고하고, 연구기관은 이를 대처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직간접적 금품수혜와 연구과제로부터의 수혜, 외부 파견과 강연 같은 비금전적 이해관계 등이 예시로 제시됐다. 실제 대학에서 산학협력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해충돌 문제는 앞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옥시래킷벤키저로부터 돈을 받고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이 불분명하다는 보고서를 써준 교수가 유죄를 받은 사건도 있었다. 가이드라인에서는 연구기관이 이해충돌을 심사·판정·조정하고 회피·기피·제척 등의 조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연구결과가 사회적·경제적으로 미칠 영향에 대한 고려, 인간과 동물실험에 관한 사안도 가이드라인에 포함됐다.

“가이드라인이 연구자들 위축시킬 수 있어”

일선 연구자들이 이번 가이드라인에 대해 가장 우려했던 것은 연구자들의 위축이다. 연구자들의 윤리적 판단을 돕기 위한 취지는 이해하지만, 현장에서는 다르게 느낄수 있다는 것이다.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이드라인이 기관에서 규정화된다면 연구자들은 이를 지키지 않았을 때에 대한 고려를 할 수밖에 없다”라며 “연구자들은 이에 대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연구윤리의 범위에 들어가게 된 사안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최지선 로앤사이언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연구자 대부분이 대학이나 공공연구기관에 속해 있기에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상 공직자에 해당 된다”라며 “구체적인 사안들을 해당 법에서 규율하고 있기에 가이드라인에서도 연구자 맞춤형으로 재구성해 체계 일치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연구기관이 자체 연구윤리규정을 수립할 때, 참고자료를 활용하도록 만든 것이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시행령에 따라 연구기관은 연구윤리에 관한 자체규정을 의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연구기관은 가이드라인의 취지를 살려 자체 연구윤리 규정에 조항을 추가하거나, 별도 규정 제정 같은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또한, 가이드라인은 권고의 성격을 갖고 있기에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제재를 받지는 않는다. 가이드라인은 이번 달까지 현장 의견을 수렴해 올해 안에 배포될 예정이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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