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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다운 나라’ 보편문명국가를 위하여
‘나라다운 나라’ 보편문명국가를 위하여
  • 안재원
  • 승인 2021.11.22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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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 국가란 무엇인가’ 기획연재를 시작하며

“선진국 담론을 시작할 때가 됐다. 
한국 사회가 이제는 모방이 아니라 경쟁의 단계로 진입했다.
문명 대전환의 시기이다. 기후 위기와 기술 혁신 때문이다. 
문명 대전환의 시대에 ‘선도 국가’는 어떤 모습의 나라일까?
선도 국가의 성격을 규정하고 만드는 방법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무엇을 하며 살 때 행복할지, 인간답게 산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야기할 때가 됐다.
함께 그 답을 찾아보자는 게 이번 기획의 취지다.”


이른바 ‘선진국’ 담론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추격 국가에서 선도 국가’로 도약하자는 논의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동의한다. 한국 사회가 이제는 모방이 아니라 경쟁의 단계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유행했던 ‘창조 경제’와 같은 정치 구호도 이를 반영하는 방증 가운데 하나다. ‘남의 것’을 베끼는 것으로는 ‘내 것’을 만들 수도 없고 ‘우리의 것’을 지킬 수도 없다는 절박함의 표현이 이른바 ‘선도국가론’일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선도 국가란 어떤 나라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격 규정도 분명해야 하는데, 이것 또한 애매하다. 일단, 물적 토대의 구축만으로는 선도 국가가 될 수 없다. 물론, 물적 토대가 선도 국가의 필요조건인 것은 맞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선도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요청되는 세계와 인류에 대한 보편적인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이 구축되었을 때 선진국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선도 국가에 걸맞는 의지와 역량을 한국 사회는 갖추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회의적이다. 이것이 ‘선도 국가란 무엇인가’를 기획하게 된 동기이다. 서양고전문헌학을 전공한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교수와 중국 학술사상을 전공한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가 번갈아가며 격주마다 연재한다. 

한국이 선도 국가로 나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들에 대한 논의부터 이제는 공적인 담론장에서 공개적으로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문명이 대전환되고 있는 시기이다. 한편으로 기후 위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 혁신 때문이다. 기후 위기는 산업 토대는 물론 삶의 방식까지도 새로운 전환을 강제하고 있다. 또한, 4차 산업 혁명으로 언표되는 기술 혁신은 ‘노동 없는 미래’를 강제하고 있다. 전환은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자리잡았다. 

한국 사회가 성숙한 사회로 전환하려면

이와 같은 전환의 시대에 과연 사람들이 말하는 선도 국가는 어떤 모습의 나라일까? 그것은 ‘나라다운 나라’, 즉 보편문명국가일 것이다. 하지만,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요컨대, 한국 사회가 이런 모습으로 성숙해 있을 때나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성장 중심 사회에서 성숙 기반 사회로 전환할 때, 한국 사회가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봉건-권위 사회를 넘어서서 보편 가치와 보편 이념이 상식과 양심의 기준이 되는 시민 사회로 자리 잡을 때, 한국 사회가 생존이 보장되고 생활이 있는 문화 사회로 전환될 때, 한국 정치가 고립과 불통의 관점에서 통합과 교류의 관점으로 전환을 통해 소통 사회가 될 때, 한국 경제가 모방단계에서 선도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요청되는 지식 사회의 기반이 확보될 때, 한국 문화와 역사가 단절에서 연속을 통해 전통사회와 외래의 문화와 문명이 융합해서 합리적으로 조화하는 열린사회로 진입할 때 비로소 명실상부하게 ‘나라다운 나라’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니까, 성숙 사회, 시민 사회, 문화 사회, 소통 사회, 지식 사회, 열린 사회로 한국 사회가 한 단계 성숙될 때, 비로소 ‘선도 국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금의 역사를 놓고 보면, 한 사회와 한 국가의 성숙 문제는 결코 쉬운 과제는 아니다. 한편으로 물적 토대도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정신적인 성숙도 함께 이루어져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돈이 많다고 해서, 어떤 나라가 선도 국가는 아니고, 그렇다고 정신적으로 이른바 종교적으로 풍요롭다고 해서 어떤 나라가 선도 국가는 아니기에. 그도 그럴 것이, 당장 한국 사회가 ‘나라다운 나라’로 나가는 길을 막고 있는 장애물들을 치우는 일도 버거운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를 지배해 온 담론들, 예컨대 반공주의, 지역주의, 성장주의, 사대주의를 극복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이것들 가운데 일부는 표면적으로는 힘을 잃어 시들해 보이는 것도 있지만, 일부는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다. 반공주의와 지역주의도 여건만 조성되면 얼마든지 살아날 것이다. 성장주의와 사대주의에 대해서는, 굳이 구체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물론, 한국이 처한 특수성을 고려해서 이런 문제점들이 지닌 역사성을 어느 정도는 인정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적어도, 이런 모습들이 잔재하거나 상존한 나라가 나라다운 나라는 아닐 것이다. 즉 선도 국가로 가는 길이 멀고도 험하다는 것이다. 일단, 물질적인 압축 성장은 가능하지만, 정신적인 압축 성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도 국가라면 반드시 답해야 하는 물음들

그렇다면, 한국이 선도 국가로 나가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들에 대한 논의부터 이제는 공적인 담론장에서 공개적으로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선도 국가의 성격 규정과 선도 국가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국민 소득 4만 달러 시대’ 따위의 개발성장주의에 입각한 경제 발전론이 아닌 인류의 문명과 세계의 역사를 이끄는 선도 국가란 어떤 국가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경제 성장도 중요하다. 하지만, 기후 위기로 인해서 무한 개발론에 입각한 성장 전략은 이제 그 시효를 다했다. 결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자연과 문명의 공존과 공생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제약 조건에 지구촌이 이미 생태적으로 그리고 산업적으로 몰려버렸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명의 기본 구성 조건의 변화에 대한 수용과 적응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자리잡아 버렸기에 하는 말이다. 

단적으로, 노동없는 미래 사회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기후 위기의 시대에 자원과 자본의 분배와 재분배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소유와 공유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기후 위기 이전의 삶의 방식과 문명의 작동 방식이 기후 위기 이후에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이 물음들은 기후 위기 시대에 선도 국가라 자처하는 나라라면, 반드시 답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 답을 국가적으로 공동체 차원에서 그리고 개별 시민들의 생활 방식에서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나라는 선도 국가라는 칭호를 얻지 못할 것이다. 

무엇을 하며 살 때 행복할지, 즉 인간답게 산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제는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노동은 행복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 따질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자연과 문명의 공존을 위해서 인류 차원에서 요청되는 최대 공약수에 해당하는 합의와 최소 공배수에 해당하는 동의가 무엇인지를 따지는 것은 여기-지금 지구촌에 살고 있는 한 생명체의 의무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문명이 대전환되는 시기에 고민해야 할 물음들이 무엇인지를 던지고 함께 그 답을 찾아보자는 것이 이번 기획의 기본적인 취지이다. 여기에는 단기적으로 전환 시대에 요청되는 물적 성장 기반과 토대를 어떻게 조정하고 재구성할지, 즉 지속가능한 성장 방식에 대한 논의와 장기적으로 압축 성장이 불가능한 사회와 국가의 정신적인 성숙의 문제에 대한 논의가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이른바 선도 국가로 가는 길을 막는 장애물들이 무엇이고, 그것들을 치우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포함될 것이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부교수·서양고전문헌학
서울대에서 언어학 학사와 서양고전학 석사를 했다. 독일 괴팅엔대 서양고전문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역서로 『인문정신이란 무엇인가』 『인문의 재발견』 『고전의 힘, 그 역사를 읽다』  『수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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