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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을 본다는 것' 출간...옛 그림으로 만나는 화가와 시대, 그리고 나
'옛 그림을 본다는 것' 출간...옛 그림으로 만나는 화가와 시대, 그리고 나
  • 김재호
  • 승인 2021.11.25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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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나온 책_『옛 그림을 본다는 것』 김남희 지음 | 빛을여는책방 | 248쪽

작품을 만난다는 것은 실로 어머어마한 일이다!

“한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일생이 함께하는,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더욱이 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작품에 담긴 한 시대와 역사, 화가의 일생을 만나는 “어마어마한” 과정이다.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다. 작품감상은 단순한 눈요기에 그치지 않는다. 작품은 한 폭의 인문학이다. 작품감상은 그 인문학을 체감하는 ‘어마어마한 일’이다.”(「머리말」에서)

화가이자 미술책 저술가인 김남희의 두 번째 그림에세이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그동안 전문서와 대중서를 넘나들며 7권의 책을 냈다. 불교적인 세계를 바탕으로 18회의 개인전을 가진 중견화가이기도 한 저자는 자신의 작품세계와의 연장선에서 천착한 『조선시대 감로탱화』와 『야단법석 괘불탱화』 같은 전문서를 썼고, 한중일의 미의식을 강의식으로 소개한 세 권의 ‘특강’ 시리즈와 한국 1세대 추상화가인 극재 정점식(1917~2009) 화백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룬 『극재의 예술혼에 취하다』를 비롯하여, 첫 그림에세이 『옛 그림에 기대다』를 출간한 바 있다. 이들 책은 세종도서 교양부문 우수도서(2권), 한국대학출판협회 선정 우수도서(2권)로 선정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이번 책은 『옛 그림을 기대다』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옛 그림에 깃든 화가의 삶과 시대상, 조형세계는 물론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대상 작품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서부터 심전 안중식의 「탑원도소회지도」에 이르는 옛 그림 30점과 이중섭의 「흰소」에서부터 이영석의 「작품 2012-24」까지의 근현대 작품 8점이다. 이를 전체 3장으로 나누어 구성하되, 각 장 뒤에는 ‘덧글’이라는 코너를 배치하여 단행본으로서의 변화와 재미를 더했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 책의 키워드는 책 제목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제목을 풀어쓰면, 이런 뜻이 된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은 한 시대를 만나는 일이자 역사를 마주하는 일이다. 또 화가의 삶과 그 시대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지난 시대와 역사, 그리고 화가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6쪽) 저자는 이를 나눠서, 곱씹게 해준다.

먼저, 옛 그림을 만난다는 것은 화가의 인생을 만나는 일이다. 겸재 정선은 병든 친구의 쾌유를 기원하며 「인왕제색도」를 그렸다. 표암 강세황과 연객 허필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우정을 쌓았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 스승 강세황이 화제를 써주기도 했다. 이처럼 그림에는 화가의 삶과 인생의 여정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작품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그림에서 위로를 받거나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그림을 감상하며 어떻게 살것인가를 생각한다. 

“심사정은 명문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인조반정의 일등공신인 심지원의 증손자로, 아버지 심정주는 포도 그림에 솜씨가 있었다. 그러나 심사정이 열여덟 살 때, 할아버지 심익창이 역모에 연루되면서 집안은 풍비박산이 된다. 심사정은 학문을 하던 붓을 틀어, 그림으로 생계를 잇는다. 역적으로 낙인찍힌 그를 모두 외면했지만 다행이 당대 유명한 학자, 화가, 감식안, 비평가들이 그의 그림 실력을 알아봐 주었다.”(179쪽)

두 번째는 시대를 만나는 일이다. 작품은 시대의 변화를 읽고 보는 역사책이다. 지금 코로나19로 혼란을 겪는 것처럼 조선시대에도 전염병과 외침, 자연재해가 있었다. 수난의 시대를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의 지혜다. 사람살이는 비슷하게 반복된다. 조선 후기에는 여행 붐이 일고 산천을 유람하는 문화가 유행했다. 관념산수가 대세를 이루던 시대는 가고, 진경산수화가 화단을 이끌었다. 양반 중심의 그림에서 서민을 주인공으로 한 풍속화가 시대의 삶을 기록했다. 정치가 변하고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도 바뀌었다. 그림은 화풍의 변화와 유행, 역사를 담고 있는 큰 그릇이다. 옛 그림을 만나는 일은 시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17세기의 화단은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서 남종화풍과 절파풍(浙派風)을 수용한다. 서인계 문사관료들을 중심으로 성리학적 이념정치가 팽배하고 문인 집단은 명승지를 유람하며 자연을 즐기는 풍조가 성행한다. 골동품과 서화 감상이 유행하고, 심미적이며 탈속적인 문인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한다. 조속은 사회문화 전반을 이끌던 문사들과 교유를 통해 문화를 선구적으로 향유하며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70쪽)

세 번째는 조형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작품은 체질과 체형이 제각각이다. 그림의 기법과 구도 등의 조형적인 면을 알면 더 가까워질 수 있다. 화가는 색채와 기법을 사용하여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작품의 개성적인 체형과 채색은 작품의 맛을 더 깊게 한다. 그래서 저자는 화가답게 작품의 기법과 구도 등의 조형적인 설명에 더 신경 썼다. 이는 다른 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이 책의 특징이기도 하다.

“(겸재 정선의 「필운대상춘도」)는 가로로 작은 점을 찍는 미점준(米點峻)으로 표현한 남산은 도성을 품었고, 청색으로 표현한 관악산은 화면 상단에서 한양을 수호한다. 오른쪽에 위치한 산에는 소나무와 마을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화면을 시원하게 처리했다. 선비들이 차지한 산등성이는 마를 올올이 풀어놓은 것 같은 피마준(披麻皴) 기법으로 골격을 잡고, 미점을 찍어 계곡을 처리했다. 그림의 표정이 풍경화처럼 맑고 밝다. 봄볕이 느껴지고 꽃향기가 감돈다. 아지랑이 가득한 봄의 정취가 물씬하다.”(192쪽)

네 번째는 앞의 세 가지를 통해 자기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은 화가를 만나고, 시대를 만나고, 작품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만나는 일이지만 결국 조우하는 것은 그림을 감상하는 자기 자신이다. “그림은 거울이다. 사람들은 그림을 보면서 자신과 마주한다. 작품과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작품에서 우정을 엿듣는다. 멋진 풍경을 보며 가슴 벅찬 순간을 경험한다. 그림은 우리 자신을 비추는 지혜의 거울이다.”(10쪽) 저자의 말이다.

“화가인 나의 묘비명을 그려본다. 처절하지도 않은 나는 어떤 묘비명으로 남을까. 심사정처럼 ‘하루도 붓을 들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그림에 매진한다면, 화가로서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 되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저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할 뿐, 평가는 내 몫이 아니다. ‘선동’처럼 지긋이 그림을 본다.”(41쪽)

“살면서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하는 친구가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쉽게 만날 수가 없다. 그리운 화우(畫友)들을 생각한다. 우리도 「균와아집도」에 있는 화가들처럼 만나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다.”(242쪽)

저자는 앞의 네 가지 사항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길지 않은 글들 속에는 화가의 삶과 시대와 조형세계, 그리고 저자의 모습이 어우러져 있다. 이런 스타일이 지향하는 바는 결국 글을 접하는 독자들이 저자가 그랬듯이 작품을 통해 자신을 만나라는 뜻이다. 독자와 무관한 옛 그림이 아니라 독자의 삶에 의미를 더해주는 재료로서 옛 그림을 가까이 하라는 전언이다. 저자의 방점은, 여기에 찍혀 있다.

 

우리 근현대 작가의 무르익은 그림과 책 구성의 묘

작품은 옛 그림이 대부분이지만 8점의 근현대 작가의 그림도 있다. 이쾌대, 이인성, 오지호, 이중섭, 양달석, 정점식, 이영석 등이 그들인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치열하게 자기 예술혼을 불사르고 생을 마친 작가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들의 작품도 ‘지난 시절의 그림’이라는 의미로 옛 그림과 함께 다룬다. 덕분에 독자는 옛 그림과 우리 근현대 그림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이 책은 구성도 눈여겨보게 한다. 저자는 각 글의 앞쪽에서, 펼침면을 통해 왼쪽 면에는 제목과 도판설명을, 오른쪽 면에는 그림을 수록하여, 독자가 해당 글을 읽기 전에 그림부터 감상하게 한다. 그리고 글을 읽고는 다시 한 번 그림을 살펴보게 배려했다. 역시나 중요한 것은 그림과의 만남이고, 그 짧은 시간 동안의 만남은 뒤쪽의 글을 통해 묵직하게 의미화 되면서 독자의 가슴에 자리 잡는다.  

각 장의 뒤쪽에 붙인 세 편의 ‘덧글’은 보다 긴 호흡으로 읽은 수 있는 글들이다.  1장에서는 “자화상과 초상화로 본 시대의 얼굴―윤두서, 「자화상」/이한철, 「최북 초상」/안중식, 「백악춘효도」”, 2장에서는 “야외와 정자(亭子)와 실내에서 대면수업을 하다―이인상, 「송하수업도」/강희언, 「사인휘호도」/김홍도, 「서당」”, 3장에서는 “붓으로 그린 화가들의 웃음소리―심사정・최북・김홍도 외, 「균와아집도」를 통해 코로나19의 대유행이 낳은 비대면 시대에 더 와 닿는 옛 그림들에 주목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 책에는 코로나19가 빚은 팬데믹 상황이 함께한다. 저자는 때가 때이니 만큼 그림을 통해 코로나 현실을 마주하는가 하면, 코로나 상황으로 그림을 읽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삶을 보는 시선으로 승화된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삶에 작품이라는 백신을 걸어두는 일이 아닐까 한다.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꺼내보는 엄마의 사진처럼. 마음에 힘이 되는 ‘백신 같은 추억’을 접종하는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13쪽)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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