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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평가로부터의 해방, 과연 불가능한가?
대학평가로부터의 해방, 과연 불가능한가?
  • 양진오
  • 승인 2021.11.29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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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23

“복잡하면서도 불길한 미래가 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힙한 세대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학평가체제에 결박된 대학은 복잡하면서도 불길한 미래에 대응하기 어렵다. 
취업률이 대학의 본질처럼 여겨지는 나라에서 힙한 세대들은 그들의 미래를 모색할 수 없다.” 

미래가 오고 있다. 그런데 그 미래는 불길하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먼저 말해야 하는 건 인구구조의 충격적 변화이다. 지난여름, 감사원은 ‘인구구조변화 대응 실태’ 감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방인구는 ‘가파르게’ 감소할 전망이다. 대구·경북 등 13개 시도에서 2047년 최대 23%의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고 감사원 보고서는 전망하고 있다.

감사원 보고서는 권고를 잊지 않았다. 청년층이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있고, 과도한 경쟁에 따른 불안으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음에 따라 범정부 차원의 긴밀한 종합대책 마련이 요구될 필요가 있다는 권고였다. 그런데 이 권고, 식상하다. 권고가 권고로 끝나겠구나 싶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인류는 코로나19 팬데믹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안타깝지만 팬데믹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기원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질병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언제든 인류를 공격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2021년 7월 22일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 세계인이 코로나19에 다 걸린다 해도 사망률은 2%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더 무서운 건 기후위기란다. 그래서일까, 지난달 10월 3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개최되었다. 전 세계에서 출동한 환경운동가들이 글래스고 거리를 행진하며 기후위기 문제의 긴급성을 호소했다. 우리나라라고 하여 기후위기 문제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질적으로 다른 미래와 세대가 오고 있다

불길한 미래가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힙’한 한국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킹덤」, 「오징어 게임」 등은 그 자체로 전 세계 대중들의 호평을 받는 웰 메이드 드라마로 평가받을 수 있겠다. 그런데 이들 드라마는 한편으로 더는 이 땅에 소위 선진국 대중문화에 주눅 들지 않는 세대가 등장하였다는 증거로도 이해된다. 영화와 드라마만 그런 게 아니다. 유튜브 동영상 콘텐츠 중에 이런 게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서산(Feel the Rhythm of Korea-Seosan) 콘텐츠는 그야말로 놀랍다. 서산 갯벌을 가로지르는 어르신들의 경운기 행렬은 압권이다. 불고기와 한복으로 대변된 한국 관광 콘텐츠의 정형화된 문법을 완전히 뒤집은 콘텐츠가 바로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서산이다. 

게다가 한국의 MZ세대는 참 당당해 보인다. 자기 개성이 돋보인다. 국위보다는 자신들의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의 당당함을 우리는 도쿄 올림픽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양궁이 아닐까 싶다. 이들 세대가 만들어갈 미래가 궁금하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는 불길하지만 미래 세대는 더는 주눅 들어 보이지 않아 보기 좋다. 

자, 이제 본론을 말해야 하겠다.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미래와 세대가 오고 있다. 반면에 한국의 대학들은 질적으로 다른 미래와 세대를 맞이할 준비가 부족하다. 이유가 한둘이 아니다. 외적인 이유, 내적인 이유가 난마처럼 얽힌 형국이다. 지방인구 감소 문제를 떠나 지역대학을 포함한 한국의 대학체제는 전면 개편되어야 할 분기점에 도달했다. 또한 기후위기를 포함한 지구적 현안과 한국의 ‘힙’한 세대들의 감수성을 충족할 교육과정 개편에 대해서도 한국의 대학들은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들은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평가 대비에 바쁘다. 미래를 준비할 여력이 없다. 대학교육의 질 제고, 책무성 등을 이유로 교육부가 우리나라 대학을 상대로 대학평가체제를 도입해 온 지 오래다. 동록금이 동결된 상황에서 한국의 대학들은 평가에 선정되어 정부재정을 받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펼친다. 선정되지 않으면 부실대학으로 낙인찍힐 판이라 대학마다 사생결단의 경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대학들은 질적으로 진보하였을까? 그렇지 않다. 정말로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학평가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취업률을 예로 들어 말해 보기로 하자. 

북성로 원도심에 있는 독립서점 차방책방 입구 풍경이다. 북성로 원도심에는 자기의 업을 스스로 발견해 살아가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이들의 꿈을 취업률로 환원하는 건 모순이다. 사진은 2018년 11월 18일 촬영. 사진=양진오

학생의 미래를 ‘취업률’로 처리할 수 있나

북성로대학 프로젝트를 하며 알게 된 배움이 하나 있다. 학생들의 취향, 지향, 감수성은 정부가 설계한 취업률과는 이질적이다. 졸업하자마자 세계 일주에 도전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독립출판물 작가로의 데뷔를 준비하는 학생도 있다. 느리게 살고 싶다면 이민을 준비하는 학생도 있다. 학생들의 다양한 미래가 취업률로 신속하게 통계 처리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학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속도로 자기 진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때로 그 고민은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 협력적 프로젝트로 꽃을 피우기도 한다. 한 예로 2020년 북성로대학 프로젝트였던 마을학교 프로그램과 마을 기록지 사업은 참여 학생들에게 자기 진로를 밝히는 흥미로운 계기가 되었다. 

스토리 메이커팀의 아이디어 회의 장면이다. 북성로대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학생들과 함께 스토리 메이커팀을 만들어 대구 중구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가 기획한 북성로수다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학생들의 업을 발견하는 기회였다. 사진은 2020년 9월 24일 촬영. 사진=양진오

학생들은 각자 자기 인생 계획이 있다. 말을 나눠보면 생각들이 다 있다. 이들이 취업을 등한시하거나 포기한 게 아니다. 자기 진로의 계획과 속도가 학생들의 미래를 취업률로 강제할 게 아니다. 먼저 우선되어야 하는 건 취업률 통계와 그에 따른 대학평가가 아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불길한 미래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업’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복잡하면서도 불길한 미래가 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힙한 세대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학평가체제에 결박된 대학은 복잡하면서도 불길한 미래에 대응하기 어렵다. 취업률이 대학의 본질처럼 여겨지는 나라에서 힙한 세대들은 그들의 미래를 모색할 수 없다. 대학은 국가가 주도하는 평가를 위해 존재하는 고등교육기관이 아니다. 대학은 다가오는 미래의 현안에 대응하고 미래 세대들의 성장을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평가가 어느새 대학의 존재 이유처럼 되어 버린 상황이다. 그렇다면 나라도 북성로 원도심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업을 즐겁게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한국 현대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원도심에 인문학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창작, 인문학 강연 및 답사, 청년 창업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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