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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규 방송대 교수] ‘다중거울’로 재구성한 동아시아 근대사...기존 근대적 해법 넘어 ‘전후 체제’ 이해 시도
[강상규 방송대 교수] ‘다중거울’로 재구성한 동아시아 근대사...기존 근대적 해법 넘어 ‘전후 체제’ 이해 시도
  • 최익현
  • 승인 2021.12.01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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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동아시아 역사학 선언』 출간한 강상규 방송대 교수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50년 전쟁’이라는 거울을 통해 보게 되면, 
제국 일본의 전쟁이 끝난 뒤의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체의 전후 맥락을 기존의 설명방식보다 연속적이면서도 계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강점을 발견할 수 있다. 
패전국 일본이 분할되지 않고 한반도가 분할점령되는 점, 
한반도에서 국제전이 전개되면서 ‘적대적 분단체제’가 고착되는 양상, 
중국의 내전 종식 이후 양안관계라는 사실상 ‘두 개의 중국’이 형성된 것, 
평화헌법과 미일동맹에 바탕을 둔 일본의 전후체제가 각각 별개의 사안이자 파편화된 퍼즐 조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냉전의 세계사와 동아시아 역사의 맥락 위에서 새롭게 시야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강상규 방송대 교수(일본학과)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에서 국제관계론 박사를 했다. 사진=최익현

책의 제목이 재미있다. ‘근대 동아시아에 나타난 역사적 전환들’이라는 부제를 보면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조금 짐작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림짐작에 그친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사카이 테츠야 교수를 지도교수로 해서 국제관계론 분야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의 독특한 지적 이력을 살펴보면, 좀더 이 책의 내용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강상규 한국방송대 교수(일본학과·사진)가 이 책을 썼다. 

방송대출판문화원 ‘에피스테메’에서 내놓은 이 책은 근대 동아시아를 19세기 후반(아편전쟁에서 청일전쟁 직전까지), 20세기 전반(청일전쟁에서 아시아·태평양전쟁 종결까지), 20세기 후반(일본의 패전에서 냉전의 종언까지), 21세기 초반(탈냉전에서 현재까지)의 네 개 시기로 나누고, ‘다중거울’과 ‘추체험’을 통해 동아시아 근대사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비판적이고 균형감 있게 짚어간다. 근대적 주권국가로 패러다임이 급격하게 바뀌었던 동아시아 근대 전환기의 맥락을 새롭게 포착하려는 저자의 지적 구상은 오늘날 동아시아 차원에서 지속되던 ‘동아시아 전후체제’의 위기에 대한 성찰과, 이 성찰에서 저자가 얻어낸 소산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적대적 분단체제, 평화헌법과 미일안보체제를 기반으로 한 일본의 경제우선주의, 중국의 양안(兩岸)관계로 상징되는 두 개의 중국체제라는 세 개의 축을 바탕에 둔 ‘동아시아 전후체제’는 세계사적 차원에서 등장한 ‘근대문명의 복합위기’와 함께 지금 격하게 요동치고 있다. 사회과학 특히 국제관계론을 연구한 이들이라면 이 거대한 전환에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지적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아시아 전후체제’가 요동치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의 미래 상황이 매우 불투명하다고 한다면, 저자의 말대로 “동아시아의 미래가 20세기 전반의 불행한 유럽의 전철을 되밟을 것인지, 아니면 20세기 후반의 유럽처럼 협력의 동반자로 나아갈 것인지, 혹은 20세기 유럽과는 다른 고유한 제3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는” 동아시아 시민들의 인식과 선택이 좌우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조차 평화적 해법 마련은 어느 국가의 일방적 주도나 자국 중심의 발상과 같은 ‘근대적 문제 해결 방식’만으로는 어렵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가 “동아시아 근현대를 보는 획기적인 안목을 담은 역사적 성찰이 절실”하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유연하고 큰 그림을 담은 역사적 성찰’, ‘그동안의 근대적 해법을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과 상상력의 발휘’는 무엇일까. 지난 17일(수) 오후 혜화동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 학부에서 외교사, 박사과정에서는 국제관계론을 전공했다. 이런 지적 배경에서 책의 제목을 ‘역사학 선언’이라고 명명한 것이 흥미로운데, 왜 ‘역사학 선언’이어야 했나?
“대학을 다니면서 국제정치, 외교사를 공부하게 된 이후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국제정치와 세계를 들여다보는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반도는 제국 사이에 위치한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제국인 중국, 유럽과 서양이 세계를 제패하는 과정에서 비기독교 국가로 유일하게 제국을 건설한 일본, 19세기 후반 이후로 미국과 유럽이 해양세력으로 러시아가 대륙세력에 합류해 들어와 한반도와 마주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제국 간 국가’인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을 열심히 들여다본다고 해서 한국이 충분히 보일까? 책 제목이 ‘동아시아’로 시작하는 이유는 여기서 비롯된다.

그럼 왜 ‘역사학 선언’일까? 동아시아 국가들은 역사의 진실보다는 자기중심적인 해석에 사로잡혀 서로를 맹목적으로 적대시한다. 이러한 문제를 살피려면 무엇보다 ‘단기적인 사고’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동아시아 역사학 선언’이란 건조한 구조주의나 자국중심, 일국중심의 역사관을 넘어서야 한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강상규 교수가 출간한 『동아시아 역사학 선언』

△ 19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 동아시아 근대사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읽어내기 위해 ‘다중거울’과 ‘추체험’이란, 일종의 해석틀을 동원했는데, 이게 참 흥미롭다. 잘 알려져 있듯 소쉬르의 ‘일반언어학강의’ 이후 구조주의에서는 현실과 텍스트의 일대일 대응관계가 깨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특정 언어가 특정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시각이 만들어졌다. ‘다중거울’이라고 한 것은, 거울의 그런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맥락에서 재구조화할 수 있는 ‘다중’을 설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그런가?
“정확한 지적이다. 학문에서 등장하는 모든 이론은 결국 하나의 ‘보는 눈’ 곧 시각을 제공해준다. 하지만 어떤 가치 있는 시각이나 이론도 어떤 맥락을 벗어나면 유용하지 않을 수 있다. 2차원의 평면거울로 3차원의 입체적인 세계를 완벽하게 담아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일상의 공간에서 운전할 때 자동차에 부착된 ‘거울들’의 가치를 생각해보면 명료해진다. 자동차에 부착된 각각의 거울은 모두 운전자에게 유용한 것들이지만 어느 것도 운전자에게 충분하게 유용하지 못하다. 노련한 운전자는 이런 ‘다중거울’을 적절하게 이용해 상황에 따라 ‘최적’의 거울을 타이밍에 맞춰 활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나 우리 각자의 삶은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우리에게 ‘다중거울’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책에서는 동아시아의 ‘기준’이 바뀌는 네 개의 시기를 추적하면서, 한중일 모두 근대적 주권국가의 모색이란 공통항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대적 주권국가의 모색이란 점은 같을 수 있지만, 한중일이 수용한 ‘근대의 양상’은 서로 달랐는데, 이에 대한 지적도 필요하지 않을까? 예컨대, 한 일본 학자는 중국은 이데올로기를, 한국은 종교를, 일본은 테크놀로지를 ‘근대’로 수용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무엇을 선택하고 수용했는가가 발전 경로에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기준이 바뀌는 전환기의 맥락을 짚는다면, 이와 같은 미세한 차이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각국이 근대를 수용한 방식에 독특한 차이가 존재하며 여기에 착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은 두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거시적 안목뿐만 아니라 섬세한 시선이 중요함은 물론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미세한 논의를 ‘조각난 퍼즐’에 머무르지 않고 유기적으로 의미 있게 연결 지으려면 ‘큰 그림’을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 한중일 아니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사람들의 외모는 대체로 유사하다. 일종의 서양의 근대식 머리 스타일과 복장이 이른바 ‘기준’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현재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국가의 형식도 근대 유럽에서 시작된 ‘주권국가 스타일’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주권국가가 다름 아닌 근대 유럽에서 시작된 것이며 19세기의 ‘서양의 충격’과 함께 한자문명권에 들어오게 되었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주권국가의 역사성을 정확하게 이해할 때 비로소 동아시아의 근대를 직시할 수 있는 시야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서양의 팽창이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동아시아의 문명기준 역전’이 발생하게 되는 맥락을 새로운 거울을 통해 포착할 수 있다면 동아시아 삼국의 근대가 걷게 되는 유사한 듯 보이지만 ‘각기 다른 길’이 보다 명료하게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역시 이 책의 큰 틀은 동아시아의 근대 전환기적 맥락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 선생님은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50년 전쟁’이라는 프레임을 강조한 것 같다.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50년 전쟁’이란 설정은, 기존의 ‘15년 전쟁론’보다 훨씬 동아시아 전체 지역의 갈등 구조를 읽어낼 수 있는 접근으로 보인다.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50년 전쟁’ 프레임을 취할 때, 어떤 점을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해낼 수 있는지 궁금하다.
“그동안의 역사해석에 의하면 일본의 근대는 ‘위대한 메이지’와 ‘실패한 쇼와’라는 방식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50년 전쟁’이라는 거울을 통해 보게 되면, 그동안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포착되지 않던 측면들이 명료하게 나타난다. 우선 첫째로는 청일전쟁 이후 연속적으로 진행된 제국 일본 50년 궤적의 전체상이 한 눈에 드러날 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가 제국 일본의 억압 아래에 놓이게 되는 과정들이 연속적이고 입체적으로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둘째로는 일본 제국주의가 ‘서양 제국주의에 저항하면서 아시아를 해방시킨다’는 논리로 전쟁을 확대해나가는 맥락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와 서양 제국주의 상호 간의 영향 관계를 포착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 문제는 서양 제국주의와 달리 일본 제국주의가 오랜 세월에 걸쳐 동일한 문명적 기반을 갖는 주변의 이웃 나라들을 억압한 ‘근린 제국주의’적 특성과 함께 앞으로 보다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셋째로 지적해두고 싶은 사실은 제국 일본의 전쟁이 끝난 뒤의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전체의 전후 맥락을 기존의 설명방식보다 연속적이면서도 계기적으로 이해하는 강점을 갖는다는 것이다. 패전국 일본이 분할되지 않고 한반도가 분할점령되는 점, 한반도에서 국제전이 전개되면서 ‘적대적 분단체제’가 고착되는 양상, 중국의 내전 종식 이후 양안관계라는 사실상 ‘두 개의 중국’이 형성된 것, 평화헌법과 미일동맹에 바탕을 둔 일본의 전후체제가 각각 별개의 사안이자 파편화된 퍼즐 조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냉전의 세계사와 동아시아 역사의 맥락 위에서 새롭게 시야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강상규 방송대 교수. 사진=최익현

△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선생님께서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그동안의 근대적 해법을 뛰어넘는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이 말은 즉 그동안의 근대적 해법이 잘 먹히지 않았다는 진단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근대적 해법’, 그리고 이게 잘 먹히지 않은 까닭을 설명해 달라.
“이것은 한마디로 역사에서 나타나는 패러독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서양의 충격’ 이래 동아시아는 ‘근대 따라잡기’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됐다. 그만큼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힘들더라도 선두주자를 보면서 ‘근대의 문법’을 열심히 배우고 따라가면 길이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1세기 상황은 다르다. 근대 문명과 근대적 문법이 초래한 문제들이 인류를 위협하고 동아시아 평화에 장애가 되고 있다. 주권국가의 틀 위에서 완고한 내셔널리즘과 국익 중심의 발상이 서로에 대한 불신과 혐오로 사람들의 인식을 가두고 신뢰와 협력을 어렵게 하고 있는 것이다.” 

△ 사실 사회과학자가 어떤 현안에 관해 꼭 들어맞는 ‘해답’을 제시하기란 매우 어렵다. 다양한 답을 모색할 수 있는 지적 스펙트럼을 만들어내고, 관계자들의 관심을 자극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책 역시 ‘해답’보다는 해답을 찾아가기 위해 한중일 동아시아 시민들이 새로운 인식을 하고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러나 성급한 독자들은 ‘해답’에 목마를 수 있다. 지금 동아시아에 조성된 환경, 선생님이 강조한 ‘동아시아 전후체제’는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어 우려되기에, 더더욱 이 질문을 던져야 할 것 같다. 과연 동아시아 시민으로서 우리는 ‘해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웃음) 천지는 불인(不仁)한 것이며 역사는 때로 가혹하리만큼 냉정하다. 안타깝지만 지금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도처에 여러 위기의 징후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중의 하나가 동아시아의 역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함으로써 과거를 보는 ‘공통의 언어’를 발견하고, 성찰과 공감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다. 이 책을 쓴 것도 이러한 고민의 소산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만들어가는 미래를 바꿀 수는 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동아시아 시민들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 최근 미국의 지정학자이자 안보전문가인 피터 자이한의 『각자도생의 세계와 지정학: 미국 없는 세계에서 어떤 국가가 부상하고 어떤 국가가 몰락하는가(Disunited Nations)』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러시아에 이어 중국도 결국은 추락할 것이며,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체제가 약화되거나 해체될 것으로 진단했다. 특히 동아시아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는 이런 미국에 대한 고려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책의 범위를 넘어서지만 주제가 워낙 중요한 것이어서 여쭙겠다. 향후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역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책에서 동아시아의 범위는 한중일 삼국으로 고정돼 있지 않다. 동아시아의 의미와 범위가 가진 확장성과 가변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20세기 글로벌 차원의 헤게모니 국가로 등장하게 되면서 동아시아의 정세를 직간접적으로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50년 전쟁’이 미국 주도로 종식된 이후 동아시아 전후 질서의 기초가 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주도한 것 또한 미국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후 미국은 일본 이외에도 한국, 대만, 호주 및 뉴질랜드 등의 국가와 양자 안보조약을 통해 ‘중심축-바퀴살’ 형태의 안보동맹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샌프란시스코체제’라는 동아시아 안보 메커니즘을 구축했다.

이후 미국은 ‘샌프란시스코체제’를 주축으로 하는 견고한 안보 메커니즘을 통해 전후 동아시아 지역의 핵심 행위자로 활동해왔다. 21세기 동아시아의 역학관계가 변화하고 ‘동아시아 전후체제’가 한계상황에 다가갈수록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관성적인 차원에서 구조적 구속력을 발휘할 소지는 오히려 더욱 커질 수 있다. 하지만 70년 전에 만들어진 샌프란시스코체제의 틀로 변화하는 동아시아의 상황을 앞으로도 지속해서 관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인데 책이 술술 읽힌다. 페이지 곳곳에 ‘노트’를 넣어 관련 정보를 최대화하고 있다. 또한 책 전체에 중요한 Q&A를 20개나 배치했다. 자칫 독서 흐름을 방해할 수 있는데,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이 책을 집필하면서 무엇보다 신경 쓴 것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었다. 하지만 읽고 나서 남는 것이 없는 책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생각할 거리’를 배치하여 ‘노트’로 담은 것이나 컬러 지도를 다수 제작해서 넣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Q&A를 각장마다 넣은 것은 독자들로 하여금 스스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찾아가게 하고 싶어서다. 제시된 질문들을 화두로 삼아 독자들이 ‘동아시아 근대’를 곱씹어주기를 바란다. 어렵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뛰어 넘어가며 읽어도 무방하다.”

△ 그간 『19세기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변환과 제국 일본』, 『19세기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변환과 한반도』, 『19세기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변환과 다중거울』 등 굵직한 저서를 내놓았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관심 있는 주제, 공부하고 싶은 분야는 열려 있다. 다만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함께 생각하며 읽을 수 있는 동아시아 근현대사를 집필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 공통의 언어’를 만드는 데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익현 편집기획위원 editor@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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