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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질서에 맞서는 희망의 정치학 ‘커먼즈’
자본주의 질서에 맞서는 희망의 정치학 ‘커먼즈’
  • 이해수
  • 승인 2021.12.03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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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피지털 커먼즈』 | 이광석 지음 | 갈무리 | 400쪽

협소한 공유 개념 넘어 공생을 추구하는 커먼즈
디지털·민주·생태 차원에서 저항하는 실천적 운동

『피지털 커먼즈』 의 저자 이광석은 기술·정보 영역에서의 자본 권력화, 빅데이터 정보 통제, 기술 발전의 과잉 굴절과 위험의 징후들에 문제의식을 갖고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해왔다. 동시에 그는 정보·기술 권력에 저항하는 다양한 실험들과 디지털 주체들을 살피며 대안 실천의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이 책은 그의 오랜 연구가 응축된 결과물로, 플랫폼이라는 장치를 매개로 물질, 비물질계에 걸친 자본주의 인클로저를 예리하게 들춰낸다. 무엇보다 저자는 자본주의 질서에 맞서 다른 삶을 모색하는 방법으로 ‘커먼즈(공통장, commons)’ 운동을 제안하며, 적극적으로 희망과 가치를 실은 저항을 구상한다. 

 

자본의 피지털 인클로저, 커먼즈의 재구성 

이 책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피지털(phygital)’은 현실의 물리적(physical) 세계와 비물질의 디지털(digital) 세계가 상호 연결되고 혼합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좀 더 정확하게는, 가상의 기술 논리가 실재 위에 올라서서 인간과 사물, 사회 문화 전반의 지형과 배치를 통제하는 현실을 지칭한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의 댓글과 ‘좋아요’ 피드백이 전화 통화나 대면 만남을 대체하고 있으며, 일상의 소비, 의사결정, 취미판단은 자동화 알고리즘 기술에 예속되고 있다. 인터넷 누리꾼들이 남긴 클릭, 별점, 평판, 후기 등 데이터의 족적들이 누군가의 생계와 노동권을 점점 틀어쥐는 힘으로 작용하며, 심지어 부동산 시세에 영향을 주는 변수로 등장한다. 과거에는 현실의 사회관계가 비물질-가상 세계로 확장되는 상황만을 주로 목도했다면, 피지털 국면에서는 거꾸로 비물질-가상 세계의 질서가 현실의 물질계로 강림하고 새로운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피지털 커먼즈』는 새롭게 창출되고 있는 정보기술 권력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저자는 피지털계의 권력 관계를 주조하는 플랫폼 자본의 인클로저(종획)를 비판하면서 다른 삶을 도모하는 대안 실천으로 커먼즈(공통장) 가치를 재발명할 필요성을 주장한다. 커먼즈는 한국어 표기법으로 통용되는 ‘공유(共有)’라는 개념으로 소개된 바 있으며, 공유는 사적 소유(私有)의 확대를 통해 성장해온 자본주의 경제를 반대하는 규범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저자는 공유가 집, 차, 서비스 등 유휴 자원을 나누는 것으로 협소하게 이해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잉여 자원과 노동을 효율적으로 중개한다는 명분으로 배를 불리는 플랫폼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공유경제(sharing economies)’는 플랫폼 경제의 새로운 착취 체계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저자는 오늘날 공유의 의미가 “유휴 자원의 공유 및 협력적 소비” 또는 “자원 중개 시장의 수탈적 본성을 은폐하는 알리바이”로 전락했다고 진단한다. 그가 공유의 의미와 변별해 커먼즈의 가치를 새롭게 재구성하려는 이유다.

이 책이 제시하는 커먼즈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쟁 및 사적 소유와 국가의 공적 책무를 넘어 시민 다중이 직접 공유 자원을 능동적으로 생산·운영하고, 공생의 가치를 신장하고자 하는 민주적·호혜적 관계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저자는 디지털 커먼즈(1부), 도시 커먼즈(2부), 지식·문화 커먼즈(3부), 생태 커먼즈(4부) 등으로 시선을 옮기며 동시대 자본주의 풍경 내부에 다른 삶, 공통의 삶을 기획하는 커머닝 운동의 유형과 의미를 밀도 있게 탐색한다.

 

디지털, 도시, 문화, 생태 영역에서의 커먼즈 탐색 

1부에서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자원이 디지털 데이터로 전환되는 ‘데이터 사회’와 이를 떠받치는 ‘플랫폼 자본주의’ 국면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플랫폼 업자는 인터넷 누리꾼의 일반지성은 물론이고 시장 바깥에서 이루어지던 호혜 문화, 시민커뮤니티 내에서 비공식적으로 생산되는 공통의 물리적 재화와 자원까지도 사유화하며 시장 수익 창출을 꾀한다. 가령 애어비앤비와 우버는 잠자리와 자동차 등을 중개하여 수수료를 취하고, 국내외 각종 포털과 SNS 플랫폼은 일상 데이터와 지식 산물들의 끊임없는 사출을 통해 이윤을 증식하는 새로운 경제모델을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자본에 의한 데이터 독과점을 차단하고, 시민 다중이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시민 자신의 것으로 탈환 혹은 공동 자산화하는 ‘디지털 커먼즈 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와 기업의 무차별적인 대민 데이터 수집과 오남용을 막고, 이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는 데이터 행동주의(핵티비즘, hacktivism) 등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된다. 그 저항은 비록 설익을 수 있으나 시민 다중이 플랫폼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동시대 자본주의 국면에 틈새를 벌리며 동시다발적인 진지전을 펼칠 때, 사회는 조금씩 변화할 수 있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2부는 커먼즈 이념이 현재의 급진적인 정치사상에서 어떻게 이해되어왔는가를 개괄하고, 반-인클로저를 향한 정치적 행동의 중요한 자원으로서 커먼즈의 가치를 살핀다. 특히 이 장은 도시에서의 공간적 커머닝의 흥미로운 실천들을 탐구한다. 저자는 2010년 서울시의 ‘공유도시’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시작으로, 엘리트 관료주의적 행정에 의존하지 않고 시민 다중 스스로 자립, 자치, 공생공락, 호혜, 우정 등 비자본주의적 덕목을 실천하기 위해 구성한 커먼즈들의 의미를 조명한다.

공덕역 경의선 공유지 운동, 민달팽이 유니온 등과 같은 청년 주거 공간 실험, 인천 배다리 공유지, 을지로-세운상가 일대 제조업 생태계 운동, 예술가 커뮤니티 자립의 공유성북원탁회의, 성미산 마을공동체 실험 등이 그 예이다. 자본주의 도시 속 다른 삶을 구축하려는 커먼즈 기획은 공통의 부를 시민 자신이 자치 운영하며 새로운 사회적 공생 관계를 생성하려는, 시민 도시권의 정치학이자 저항적 실천으로 볼 수 있다.

디지털 플랫폼으로 인해 현대사회는 물리 세계와 비물질의 세계가 혼합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3부는 문화 커먼즈, 즉 지식·창작물의 공유와 열린 접근권에 관한 논의를 다룬다. 창작 유산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상업화하는 저작권(copyright) 경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자연적인 조건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지식·창작물의 과도한 사유화는 상호부조와 연결 속에서 창작하고 사유하는 인간의 본성을 후퇴시키고, 그 창조적 자원을 협소한 지적 재산권 경제에 예속시킨다.

저자는 인간 지식과 창작을 인류 공통의 상호 영감의 소산으로 봐야한다는 ‘카피레프트(copyleft)’ 전통에서 문화 커먼즈의 본원을 발견한다. 예술의 원본성과 권위, 사회 권력에 대항했던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급진적 실험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다. 이는 콜라주, 매시업 등 디지털 환경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현대 리믹스 문화로 확장된다. 고립된 예술가의 천재성을 전제한 창작물의 배타적 소유가 아닌, 복제와 전유에 기반 한 상호창조와 사회미학의 원동력으로서 문화 커먼즈가 상상되는 것이다.

4부는 생태-기술-인간 사이의 유기적 공존을 위한 생태 커먼즈를 탐구한다. 지금까지 인간 사회의 기술 진보는 반생태적이었다. 저자는 생태 위기 근원이 고삐 풀린 생산력주의에 있음을 지적하며, 성장·발전 패러다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배 정의뿐만 아니라 생태 회복력, (비)생명 타자와의 연대를 마련하는 공생기술에 대한 전망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지구적인 생태 위기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생태-기술-인간의 앙상블적 관계를 재구축하는 일을 벌여야 하는 것이다. 한편 저자는 기술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지구공학적 낙관론이나 에코모더니즘적 해결책은 섣부르고 위험하다고 비판한다. 생태 커먼즈는 생태를 인간종 외부의 객체가 아닌 지구 행성 시스템 내 하나의 ‘행위자’로서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미세먼지, 기후위기, 팬데믹 등 ‘자연의 복수’가 점점 예측하기 어렵고 거대해진 오늘날, 지구의 모든 생명과 비생명 사이의 공생공락을 추구하는 생태 커먼즈의 구상이 절실한 시점이다. 

 

부동의 명사가 아닌 역동적인 동사로서 커먼즈

커먼즈란 신자유주의적 시장에 반대되는 개념이나 제한된 공유 자원을 의미하는 ‘명사’가 아니다. 동시대 자본주의 풍경 내부에 다른 세계를 만들면서 주체와 관계, 공간들을 지속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동사’이다. 저자는 ‘자원으로서의 커먼즈’에서 ‘관계-사회적 설계로서의 커먼즈’로의 전환이 되어야 함을 거듭 강조한다. 요컨대 커먼즈는 피지털에 다른 삶의 가치를 생성하는 비(탈)자본주의적 대안이다. 커먼즈는 시민 다중이 협력과 호혜를 통해 공생적 가치를 생산하는 공간이자 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커먼즈는 지적·미적 생산물의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변화시킬 동력이기도 하며, 인간 기술과 뭇 생명과의 함께 살기의 방식을 탐구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의 수탈과 포획에 대해서는 학문 영역에서 비판이 제기 되어왔으나 대부분 체제 비판론에 가깝고 구체적인 대안 구성 논리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대안이 부재하다’는 이론적 무기력과 냉소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다른 삶에 대한 갈망과 희망의 정치학으로서 커먼즈를 끈질기게 사유한다. 자칫 커먼즈의 이념은 미래의 대안 사회를 그리기 위한 만능키로 이해되거나 낭만적 서사로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커먼즈가 구호로 남지 않기 위해 커먼즈의 역사, 그리고 미래 커먼즈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경험적 사례들을 적극 발굴해낸다. 『피지털 커먼즈』 는 플랫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프레임을 제공하는 동시에, 자본주의 외부를 상상하기 어려웠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제공해줄 것이다. 

 

 

이해수
서강대 미디어융합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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