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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인플루엔자
그레이트 인플루엔자
  • 이지원
  • 승인 2021.12.03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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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M. 배리 지음 | 이한음 옮김 | 해리북스 | 776쪽

2020년 코로나 사태가 닥치기 전까지, 1918년 독감 팬데믹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에게 그건 역사책에나 나오는 옛날이야기였다. 그런데 2005년 미국의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믿음은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생겨났다. 

2005년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보건장관 마이크 레빗이 건네준 1918년 독감 팬데믹을 주제로 한 신간 한 권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는 그 책을 다시 내려놓을 수 없었다. 워싱턴으로 돌아온 부시는 국가안보 담당 수석보좌관 프랜 타운센드를 대통령 집무실로 불러 역사가 존 배리가 쓴 [그레이트 인플루엔자]를 읽어 보라며 건넸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100년마다 한 번씩 이런 일이 일어나. 국가적인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어.” 

그렇게 해서 미국 역사상 가장 종합적인 팬데믹 대비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 계획에는 세계적인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 새롭고 빠른 백신 기술 개발을 위한 자금 지원, 마스크와 산소 호흡기 같은 긴급 보급품의 물량 비축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에 부시가 이런 팬데믹 대비 구상을 말했을 때 보좌관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건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테러와의 전쟁과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 국가 안보와 관련한 현안도 산적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일어날 법하지 않은 많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비행기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탄저균이 우편으로 배달되고 있었다. 그러니 1918년과 같은 팬데믹이 다시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부시 행정부는 야심 차게 계획을 밀어붙였다. 

2005년 11월 국립보건원에서 한 연설에서 부시는 이렇게 말했다. “팬데믹은 많은 면에서 산불과 닮았다. 조기에 진화하면 별다른 피해 없이 불을 끌 수 있다. 하지만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빨리 발견하지 못하면, 불길이 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나 급속히 퍼지며 지옥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부시는 팬데믹이 다른 재난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재난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팬데믹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의료 인력과 적절한 장비 공급이 필수적이다. 팬데믹 사태가 터지면, 주사기에서 병원 침상, 인공 호흡기, 마스크, 보호 장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공급 부족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한 과학자들 앞에서 부시는 그러한 사태가 터지면 기록적인 시간 안에 백신을 개발해야 하고 팬데믹의 압력에 맞서기 위해 전 국민에게 백신 주사를 맞혀 면역력을 갖추게 할 수 있을 만큼 생산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가 팬데믹이 터지기만을 기다린다면, 그땐 이미 대비하기에 너무 늦어 버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바로 행동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무수한 사람이 불필요하게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후 코로나 사태가 터져 부시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부시의 선견지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우왕좌왕하며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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