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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박람회에도 ‘메타버스’ 바람이 분다
취업박람회에도 ‘메타버스’ 바람이 분다
  • 윤동현
  • 승인 2021.12.1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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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현의 취업 생생 정보 ⑩

근대 산업박람회의 시작은 1761년 영국 런던 공업전시회다. 그 이후 이른바 종합박람회, 즉 현대에 엑스포라 불리게 되는 박람회가 1851년 런던에서 열렸다. 종합박람회는 규모가 커져서 국제박람회기구(BIE)라는 국제기구를 설립했다. 종합박람회는 나중에 엑스포로 분리되고 산업별 박람회나 소비자 박람회 등으로 발전했다. 

 

1851년 열린 만국 박람회. 사진=위키백과

박람회는 생산물의 개량ㆍ발전 및 산업의 진흥을 꾀하기 위하여 농·상·공업 따위에 관한 온갖 물품을 모아 벌여 놓고 판매, 선전, 우열 심사하는 걸 뜻한다. 박람회의 원형은 성경에 나온다. 『구약성서』 ‘에스더’ 1장에 따르면, 아하수에로왕이 재위 3년에 왕국의 번영과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재화들을 전시하고 180일 동안 축제를 베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대 박람회도 이때의 박람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세에는 유럽 각국의 국왕이나 영주, 기사 등이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각종 하사품이나 진상품, 전리품 등을 진열하고 베푸는 일종의 축제로 정착했다. 유럽 각국은 국력이 다들 어느 정도 비슷했기에 무력을 통한 경쟁 이외에도 정치·경제 경쟁도 했기 때문에 박람회가 급속도로 발달했다. 무역 박람회는 합스부르크 치하 네덜란드와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발달했다. 이 나라들은 상업이 주요 사업이었으므로 외국에 자신들의 물산을 팔기 위해 박람회를 근대와 유사한 형태로 만들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박람회라고 부를만한 개념이 없었다. 동아시아는 철저하게 중국을 위시로 한 조공-책봉 관계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즉, 동아시아는 유럽과 같이 국력이 비슷한 나라들이 주변에서 경쟁을 했던 게 아니기 때문에 박람회 발달이 없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전시회와 박람회가 잘 구분되지는 않는 추세이다. 주로 예술작품을 전시하게 되면 전시회로 부르고, 그 이외의 일반 상품을 전시하면 박람회로 부르곤 했다. 그러나, 예술작품도 세계화에 따라 상업화하고, 상품들도 세계화에 따라 글로벌 단위로 경쟁을 하면서 점차 예술성을 띠게 되어 비슷해진 것이다. 

소비자박람회 성격 강한 취업박람회

정부에서는 일자리 창출 활성화를 위해 각 지자체를 포함한 교육기관이나 센터 등에서 취업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취업박람회는 전국 지자체 243개 일자리센터를 포함해 취업교육을 하고 있는 단체나 기관 1천 개 이상 센터에서 열고 있다. 일자리 관련 취업박람회 각 기관이 매년 1회에서 많게는 매월 1회 개최되는 곳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상·하반기 2회 이상 진행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매년 2천 회 이상 진행되고 있다.(「취업박람회 이미지컨설팅 참가자의 신체적 자기지각이 자기효능감과 자신감에 미치는 영향」, 박수화, 경기대 대학원 석사논문, 2017 참조)

하지만 올해와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다수의 취업박람회가 미뤄지거나 비대면으로 시행됐다. 그러다 보니 메타버스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취업박람회는 참여한 취업준비생들이 인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의 정보를 확인하고 면접을 보는 시스템으로 이뤄진다. 그렇기 때문에 박람회의 종류 중 ‘소비자박람회’의 성격이 강하다. 현재 취업박람회는 팬데믹 상황으로 인해 온라인 기반의 박람회 또는 메타버스를 이용한 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아무리 팬데믹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기업에서 인적자원은 항시 필요하다. 따라서 취업준비생들은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기반의 메타버스에 대한 개념을 알고 취업박람회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윤동현 
KG에듀원 취업사업팀 팀장·백석대 박사(평생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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