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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가?
교수는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가?
  • 양진오
  • 승인 2021.12.15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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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24

“교수는 연구, 교육, 봉사로 평가받는 전문가로 흔히 이해된다. 
그런데 잊지 않아야 할 게 있다. 
교수는 학생을 인정하고 믿어주며 기다려줘야 하는 선생이라는 점을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광팬이다. 보고 다시 보고 그런 광팬이다. 대중들에게는 가수 아이유로 알려진 이지은이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 줄 몰랐다. 내가 어느 회차부터 이 드라마에 몰입되었을까. 이선균 배우가 박동훈 부장으로 출연했다. 

박동훈 부장은 어느 건설회사의 만년 부장이다. 부인은 변호사이다. 아들은 미국에 있다. 조기 유학을 갔다. 박동훈 부장, 회사 내에서 썩 눈에 띄는 존재는 아니다. 성실하기는 하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이런 스타일 같기도 하다. 부인의 마음은 딴 남자에게 가 있다. 이 사실을 박동훈 부장은 모른다. 나중에는 알지만. 집안 꼴은 엉망이다. 형제와 어머니, 다 박동훈 부장이 먹여 살린다. 이 형제들도 가관이다. 일 같지 않은 일에 싸우고 난리를 편다. 형제들 관계가 애증의 관계로 보인다. 박동훈 부장도 그렇다. 사실 무난히 살아가는 박동훈 부장이 아니었다.

박동훈 부장 사무실에 유령 같은 인물이 하나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실물로는 존재하지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인물이 하나 있다는 말이다. 그 인물이 바로 이지안이다. 이지안은 이 회사의 정규직 직원이 아니다. 인턴도 아니다. 배달된 우편물을 부장과 직원 책상에 가져다주고 복사하고 심부름하는 파견직 일꾼이다. 지안이 회사에서만 이렇게 취급받는 게 아니다.

밖에서도 그렇다. 아주 어른의 나이는 아니지만 거칠게 살아온 지안이다. 누구로부터 보호받으며 살아온 지안이 아니다. 인정받으며 살아온 지안이 아니다. 지안은 유령으로 취급받으며 번 돈으로 할머니와 동생을 먹여 살린다. 소녀 가장이다. 마음에 깊은 상처가 있을 수밖에 없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한 장면. 오른쪽이 박동훈 부장, 왼쪽이 이지안이다. 사진=tvN

「나의 아저씨」 그리고 ‘나의 학생’

그런데 단 한 사람, 박동훈 부장이 지안을 유령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스토리는 말하지 않겠다. 유일하게 지안을 인정하고 믿어준 사람이 박동훈 부장이다. 그 인정과 믿음이 상처투성이의 지안을 살린다. 지안 스스로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여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안은 자기를 배려하는 어른으로 변모한다. 박동훈 부장 역시 지안을 인정하고 믿어주며 더 큰 어른으로 성장한다. 

박동훈 부장과 지안의 관계는 마치 교수와 제자의 관계 같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박동훈 부장이 유령처럼 취급받은 지안을 인정하고 믿었듯 교수는 제자를 인정하고 믿어줘야 한다. 더 얘기해보겠다. 정확히 언제 적 일이었는지 기억이 명료하지는 않다. 꽤 오래전의 일이다. 학생 한 명이 계속 결석했다. 학과 소속 남학생이었다. 오랜만에 수업에 출석하였기에 연구실로 오라고 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실직하는 바람에 학교 출석이 어려웠다는 학생. 자기라도 당장 돈을 벌어야 했기에 수업에 출석할 수 없었다고 실토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려니 뭔가에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인생을 참 편히 살아왔구나 싶었다. 돈을 벌어야 해 공장에 다녔다는 학생에게 해줄 게 없었다. 자괴감이 컸다. 그 학생의 집은 울산에 있었다. 울산에는 대규모 공장이 많다. 울산은 경기에 민감하여 아버지들이 갑자기 실직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 사실을 몰랐다. 학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래서 아버지의 실직 사연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만남이 학생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는지 졸업하고 나서도 나에게 연락을 한다.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대학에는 수많은 지안이 있다. 수많은 지안이 대학에서 유령처럼 취급받으며 마음 앓이를 하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등장하는 이상한 나라보다 더 이상한 나라가 대한민국 같다. 마치 대한민국은 교육의 가치를 대학입시에 두고 있는 나라 같다. 대학입시 결과를 성공과 실패로 나누는 나라가 대한민국 같다. 그런데 그게 아니지 않나. 대학입시는 대학입시이고 인생은 인생인 까닭이다. 

학생을 사랑하는 방법은 뭘까

「나의 아저씨」에서 지안은 자기를 배려하는 어른으로 바뀐다. 기적 같은 일이다. 더는 상처투성이의 거친 지안으로 남지 않는다. 이렇게 자기를 배려하며 성장하는 지안을 그동안 많이 만나왔다. 이런 지안을 대학에서 만났고 북성로 골목에서도 만났다. 교수는 연구, 교육, 봉사로 평가받는 전문가로 흔히 이해된다. 그런데 잊지 않아야 할 게 있다. 교수는 학생을 인정하고 믿어주며 기다려줘야 하는 선생이라는 점을 말이다. 

학생을 오로지 성적으로 평가할 일은 아니다. 그게 우리나라처럼 대학입시를 인생의 성공과 실패로 나누는 나라에서는 참 위험한 편견이 될 수 있다. 어느 대학이든 학과든 그 자리에 있는 학생들은 우주와 같은 사연을 만들며 그 자리에 오게 된 거다. 교수는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학생들의 우주와 같은 사연을 서서히 알아가며 그 학생을 인정하고 믿기 시작하면 된다. 「나의 아저씨」 식으로 말하면 교수라는 어른을 매개로 자기 상처를 딛고 편안함에 이르는 존재가 바로 나의 학생이다. 

학생들과 함께 한 독서 모임(2015년 겨울). 매달 북성로에서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날은 조두진 작가의 『북성로의 밤』을 읽었다. 사진=양진오
학생들과 함께 답사한 북성로 원도심. 2015년부터 학생들과 북성로 원도심 답사를 시작했다. 2015년 겨울 북성로 인근의 향촌동에서 학생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 사진이다. 사진=양진오

토요일과 일요일에 학생들과 북성로를 답사했다. 답사를 마치면 다 같이 밥 먹었다. 다 같이 차도 마셨다. 북성로대학에서 만나 독서 모임도 진행했다. 길눈이 트이고 말문이 열리는 학생들이 서서히 나왔다. 학생들 스스로 자기 말을 하고 자기 계획을 이야기했다. 참 보기 좋았다. 정말 보기 좋았다. 학생 이야기마다 덕지덕지 상처가 따라 나왔다. 나는 굳이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음 달에도 또 걷자 아니면 독서 모임에 계속 나와야 한다 이런 식으로 말할 따름이다. 괜한 조언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까 싶어서다. 또 걷자고 한 말, 독서 모임에 계속 나오라는 말은 널 인정하고 믿는다는 응원의 표현이다.

교수는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가? 학생이다. 그 사랑의 방법은 뭔가? 성적보다는 학생 그 자체를 인정하고 믿어주는 거다. 그리고 기다려줘야 한다. 그 인정과 믿음 그리고 기다림이 우리 학생들을 ??나의 아저씨??의 지안으로 만들 수 있다. 겨울이 온다. 그래도 같이 걷고 같이 읽고 싶다. 나의 학생들과 함께. 그러면 나도 더 큰 어른이 되리라.

양진오 대구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한국 현대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원도심에 인문학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창작, 인문학 강연 및 답사, 청년 창업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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