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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자들은 먹고 토할까
왜 가난한 자들은 먹고 토할까
  • 류인경
  • 승인 2021.12.13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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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 식이장애 사회

 

류인경 전 서울여대 외래교수

대형 창고형 할인매장의 2+1 상품들 품목에는 라면, 가공식품, 즉석식품, 주류들이 즐비하다. 카트에 넘치도록 담고 손에 또 들고 서서 계산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대형마트 인근 지역의 주민들이다. 이러한 대형마트들은 많은 상품들을 진열할 절대적 공간이 필요하고 자동차의 트렁크에 물건을 싣고 가는 고객들의 편의를 맞춰주기 위해 넓은 주차장을 구비해야하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비싼 상류층 주거지에서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주 고객은 역시 서민층이다.

파인다이닝을 표방하는 고급 레스토랑들은 거의 상류층 주거지 근처에 몰려있다. 고급 레스토랑들에서는 주차서비스인 발렛파킹을 해주고 고객들의 편의를 최대한 맞춰준다. 그리고 싱싱한 고급 제철 재료들로 요리한 아주 소량의 음식들을 여러 접시에 예술적으로 담아내어 매우 비싼 가격에 팔고 상류층 고객들은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닌 아트를 눈으로 소비하고 비싼 와인과 함께 즐긴다. 

아무리 먹고살기가 힘들어진 팍팍한 세상이라고 해도 밥 굶는 사람은 없어졌다는 복지국가시대에 대한민국 서민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못 먹었던 시절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음식을 쌓아놓는다. 그리고 먹고 토한다. 가진 것이 몸뚱이밖에 없을 때 사람들은 더 날씬하고 예쁜 몸을 유지해 돈을 벌어 다시 음식을 사려고 한다. 

코로나19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설문조사가 진행되지 못했던 지난 2년을 건너뛰고 2019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통계자료를 보면 식이장애 전체 진료 환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여성의 경우 20~30대로 1만2천925명, 남성은 70~80대에서 2천467명으로 나타나 여성은 청년기에 남성은 노년기에 식이장애를 많이 겪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왜 여성은 청년기에 식이장애를 많이 앓고, 남성은 노년기에 식이장애를 앓게 되는 것일까. 여성과 노인, 아동은 과거 취약계층으로 분류되었고 여전히 상대적 빈곤율은 높다. 과거에는 개발도상국의 15~24세 여성과 모델이나 배우 같은 일부 직업군에서 나타났던 식이장애가 이제는 성별에 상관없이 전 연령층, 전 직업군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영국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찰스 황태자의 외도와 과도한 미디어의 사생활 노출로 거식증과 폭식증을 반복하며 자기혐오에 빠져 자살시도를 하는 등 식이장애를 앓았었다고 알려져 있고, 프랑스 모델 이사밸 카로는 여러 차례 디자이너와 광고주에게 선택받지 못하자 31kg이 될 때까지 음식을 섭취하지 못했다. 그녀가 앙상한 몸으로 ‘거식금지’란 광고를 찍은 직후 사망하게 되면서 식이장애의 위험성은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섭식장애로도 불리는 식이장애는 거식증과 폭식증의 형태로 나타나는 음식 섭취와 관련된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두 증상은 따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병행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주로 사춘기에 증상이 발현되는데 식이장애가 심해지면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에 이르거나 우울이 심해져 자살까지 하게 된다. 식이장애는 개인에게 심각한 신체적 손상과 심리적 어려움을 가져오고,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심할 경우 생명의 위협까지 줄 수 있는 심각한 질병이다.

로마시대 말기 부패와 향락이 극도에 치달았을 때, 로마의 귀족들은 공연과 연회를 즐기며 좀 더 많이 음식과 포도주를 섭취하기 위해 비스듬히 누워서 식사를 하고 씹은 후 구토용 그릇에 버렸다. 로마의 상류층 귀족들이 토한 음식은 기르는 가축들의 먹을거리가 되었다. 

로마시대 말기에 부패했던 귀족들보다도 더한 향락과 사치를 연일 중계되는 미디어와 SNS로 보면서 많은 젊은 여성들과 아동들, 가난한 자들이 살을 깎아내고 토한다. 그리고 노동력을 상실한 노인들은 죽을 날을 기다리며 안 먹는다. 그것이 식이장애에 걸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류인경 전 서울여대 외래교수 
서울여대 바롬인성교육원과 기초교육원에서 강사를 지냈다. 이화여대에서 사회복지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치유와돌봄(care&cure)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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