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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요된 정책이 빚은 부작용 심각 … 재검토 여론 확산
강요된 정책이 빚은 부작용 심각 … 재검토 여론 확산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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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8 10:35:36
학부제(모집단위 광역화)의 명암을 조명하기 위한 토론회가 줄을 잇고 있다. 연세대 총학생회가 지난달 29일, 학부제의 본질을 진단하기 위해 학생토론회를 떱쳬?데 이어, 고려대와 성균관대도 지난 5일과 11일, 같은 주제를 놓고 대학과 학생들이 대화를 나누었다. 영남대 교수협의회(회장 권오중 사학과)도 지난 14일 ‘학부제 이대로 좋은가’란 주제로 교수토론회를 열었다.

영남대 토론회에서 장현갑 교수(사회과학부)의 지적은 학부제에 대한 일반적 비판을 대변한 것이었다. “학부제는 백화점식 학과 나열로 인한 낭비를 없애고, 학문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대학의 특성화를 꾀하자는 좋은 취지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전공선택권이 무시되고, 학문적 성격이 떨어지는 학과간 통폐합을 진행하는 등 학문생태계의 건강성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다.”

최근 잇따른 학부제 토론은 이 제도가 내세운 목적이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 중점이다. 가장 근본적인 목표였던 전공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게 학생들의 가장 큰 불만사항. 연세대 토론에서 학생들은 이점을 중점적으로 따졌다. 전공지원이 인기학문에 편중되다보니 점수로 전공을 배정할 수밖에 없어 전공선택권이 오히려 박탈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세대 총학생회의 자료에 따르면 계열별로 인문 70%, 사회 40%, 이학 50%, 공학 30%의 학생들이 전공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과간 협력체제 구축 역시 허울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성규 영남대 교수(경영학부)는 학부제가 학과제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지적한다. 최교수는 “학부제라는 실체없는 공허한 개념하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은 전면적인 학과 통·폐합일 뿐이다. 이수학점, 졸업요건, 학위인증 등에 있어 학부와 학과가 똑같다”고 비판했다. 학부제의 도입은 교육과정과 구조의 개편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그 과정이 생략됐다는 것이다.

본래 취지에서 엇나간 학부제는 어떤 부작용을 낳고 있는가. 조태섭 영남대 교수(자연과학부)는 △인기학문과 비인기 학문의 극명한 분할 △기초과목 수강회피로 인한 교육 질 저하 △학부 편성전공들간의 유사성 결여 △학생들의 소속감 결여 △입학생의 학력저하 등을 든다.

결국 이러한 부작용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제도가 충분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채, 교육부의 일방적인 강요로 진행됐기 때문이란 평가이다. 고려대 토론회에서 김인환 교무처장(국어국문학과)은 “대학이 나름의 교육원칙을 갖고 일관성 있게 계획을 수립·집행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면서 “BK21사업 등이 추진되면서 교육부가 내건 조건이 모집단위 광역화이기 때문에 대학이 재량권을 행사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털어놓았다. 교육부의 거듭된 해명과 달리 학부제는 대학에 강요되고 있다는 얘기다.

학부제와 관련한 토론회가 최근 잇따르고 있는 것은 이 제도가 빚고 있는 부작용과 폐단이 그만큼 한계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책당국의 기대와 달리, 학생들은 전공선택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전공재수생이 생겨나는가 하면, 학생들의 인기전공 쏠림현상으로 인한 학문편식은 기초학문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현장 교수와 학생들의 일반적인 평가. 결국 번지수를 잘못 찾아 오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넓게 보자면 학문간 유기적 협력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미는 퇴색하고, 남은 것은 왜곡된 학문구조 뿐이라는 해석이다. 결국 교수와 학생들에게서 환영받지 못한 점은 고사하고, 시행 당사자인 대학조차도 무리한 강행으로 인한 부작용을 자백하고 있다.

이들 토론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교수와 학생 모두 학부제가 분명 필요한 학문분야도 있다고 인정하는 부분이다. 차별성 없이 중복되고 있는 학문분야에 따라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번지수를 잘못 찾고 있는 학부제가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성규 교수의 지적처럼 “문제는 어떻게 전문화·특성화와 교육적·학술적·행정적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 학문간, 학과간 통·합을 이뤄내느냐”에 달려 있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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