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5:00 (토)
지옥 미리 경험하기…사탄은 잘 생겼다
지옥 미리 경험하기…사탄은 잘 생겼다
  • 장동석
  • 승인 2021.12.24 1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들의 풍경_『살아생전 떠나는 지옥 관광』 김태권 지음 | 한겨레출판사 | 228쪽

인간 유혹하려면 미남미녀가 추남추녀보다 수월하다
시시포스 신화처럼 현실에서 희망 품으면 그게 지옥

먼저 묻겠다. 지옥을 믿는가? 특정 종교 이야기가 아니라, 「전설에 고향」에 자주 나왔던 이승을 떠나면 저승으로 간다는 이야기도 말고, 당신만의 신념으로 지옥이 있다고 믿는가?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대개는 ‘그런 건 없다’고 말할 것이다. 숱한 철학도, 요즘 흔한 자기계발서도 ‘지금, 여기’를 살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래서 더더욱 궁금한 것이 미래에 가게 될 지도 모를(?) ‘지옥’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이들에게 김태권 작가의 『살아생전 떠나는 지옥 관광』을 권한다. 뒤표지(전문용어로 표4)에 보면 이 책에 대한, 짧지만 확실하게 설명하는 문구가 있다. “인류가 수천 년간 상상해온 온갖 지옥들, 그림으로 만나는 세계 지옥 백과.” 작가는 고전을 포함한 여러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지옥과 그것과 관련한 명화나 삽화를 통해 지옥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준다. 

첫 번째 주제는 ‘지옥 인물 열전’인데, 그 첫 물음이 흥미롭다. “사탄은 과연 미남일까?” 대답은 “과거 서양미술을 보면 악마는 대개 못생겼다”이다. 16세기 작품 피터르 브뤼헐의 『반역한 천사의 추락』을 보자. 천사는 곱게 잘생긴 반면, 천사는 “기괴”하다. 이어지는 작가의 말이다. “벌레나 물고기, 개구리, 사람이 뒤죽박죽 뒤섞인 모습이다.” 하지만 작가는 악마가 “잘 생겼다고 볼 근거” 또한 제시한다. 『성서』에 따르면 악마는 신에게 대들다 지옥으로 쫓겨난 존재, 즉 전직은 천사였다. 천사는 “본디 예쁘고 잘생겼으니까, 악마 역시 틀림없이 예쁘고 잘생겼을 것”이다. “적어도 한때는 말이다.” 오늘날 그가 하는 일을 봐도 그렇다. 악마의 “현재 직업은 유혹하는 일”인데, 그러자면 “아무래도 미남미녀가 추남보다 유혹하는 일을 더 잘”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보기에 지옥에서 가장 잔인한 형벌을 받는 인물은 시시포스다. 시시포스는 요즘 말로 지옥에서 ‘희망고문’을 받고 있는 중이다. 작가는 “시시포스가 벌 받은 언덕은 그리스신화 지옥 투어에서 가장 유명한 코스”라고 단언한다. 시시포스가 하늘의 비밀을 누설한 죄로 영원한 형벌을 받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는 지옥에 갇힌 여느 영혼처럼 “찔리지도 얻어맞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시시포스를 가장 딱하게 생각할까. 저자의 답변이다. “어쩌면 벌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가 품은 희망 때문일 수도 있다.” 이룰 수 없는 희망을 마음속에 담고 사는 일, 곧 지옥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작가가 사용한 시시포스 관련 미술작품은 상징주의 대표적인 화가로, 악마적 형상을 즐겨 그린 프란츠 폰 슈투크의 「시시포스」(1920)다. 

 

악마는 지옥에만 있는 게 아니다

문제는 악마가 지옥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는 히틀러를 그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히틀러를 지옥에 있는 것으로 묘사한 그림을 그린 이는 독일 출신 화가 조지 그로스다. 그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전부터, 즉 극우파 정치 깡패였던 젊은 시절부터 그림으로 히틀러를 비웃었다. 하여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달아나고 달아나다 미국에 눌러”산다. 독일 이름 게오르그마저 조지로 바꾸고 자신을 감췄지만, 「카인 또는 지옥에 간 히틀러」라는 작품을 1944년 세간에 내놓고야 만다. 형제를, 아니 인간을 쳐 죽인 ‘최초’의 인간 카인과 히틀러가 동급이라는 고발 아닌 고발인 셈이다. 지옥이 있다면 히틀러는 반드시 그곳에 있을 게 분명하다. 

어디 히틀러뿐이랴. 우리 주변에 살며 우리는 괴롭히는 일상의 악마는 또 얼마나 많은가. 『살아생전 떠나는 지옥 관광』은 김태권 작가 특유의 위트와 (상세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지적 요소들이 담겨 있다. 더더욱, 읽는 재미는 말할 것도 없으니 일독을 권한다. 

* 이번 호로 ‘책들의 풍경’ 연재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