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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공정하다는 공상에서 벗어나야
수능이 공정하다는 공상에서 벗어나야
  • 구소연
  • 승인 2021.12.2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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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구소연 중앙대학교 교육학과 박사 졸업

수능점수로 입학자를 선발하는 정시전형이 가장 공정하다는 주장이 대세다. 우리 사회 일반에는 수능 점수가 그야말로 실력에 기반한 결과를 보여준다는 신뢰와 믿음이 있는 것이다. 수능은 표준화된 객관식 시험이다. 다른 입시전형 요소에 비해 오류나 그에 따른 시비가 없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이번 2022학년도 수능에 출제 오류가 있었고 이 때문에 논란이 크게 일었다. 일련의 언론 보도를 보면, 이번에 우리 사회가 관심을 둔 문제는 수능의 변별력이었다. 공정한 대학입시를 위해 수험생들의 실력이 선명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오류 문항에서 헤맨 학생들이 정해진 수험시간을 충분히 사용할 수 없어 공정한 경쟁이 되지 못한 부분이 있고, 결과적으로 변별력이 약해졌다는 지적이다. 평가원이 항소하지 않았고, 입시 일정이 진행되면서 문항 오류와 관련된 논란은 잦아드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앞으로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 했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역사를 돌아보면, 문항 오류 문제는 재차 발생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아무리 체계를 다지고 다져도 이번과 같은 문제가 절대로 재현되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없을 것 같다. 문항 오류는 왜 반복되는가? 

가장 공정하다 여겨지는 객관식 시험이 가진 문제를 살펴보자. 객관식 문항이 객관적이다, 공정하다 하는 것은 정해진 정답에 따라 채점에서의 신뢰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누가 채점하든지, 언제 어디서 채점하든지 간에 정답자와 오답자를 가리는 일은 명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채점에서의 공정성은 담보되어 있다고 해도 좋겠다. 그러나 문제가 만들어지는 과정, 정답이 결정되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완전히 객관적인 문제를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출제자가 넓은 범위의 교육과정에서 어떤 문제를 꺼내들지, 그 문제의 정답을 무엇으로 결정할지에는 출제자의 주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 과정도 여러 출제자의 검토와 숙의를 거치고 거쳐 가능한 객관적이게 만들어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번과 같은 문항의 오류가 발생할 확률을 완전히 제로로 만들기는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본디 어떤 시험이든 전혀 오류가 없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응시자의 성취도를 잴 수는 없다. 그런 기대는 사실상 공상(空想)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출제 과정이 주관적인 문제가 있어서이기도 하고, 객관식 문항의 정답을 맞췄거나 틀렸다고 해서 실제 정답자가 그 문항이 요구하는 성취도에 이르렀는지 여부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객관식 문항이니만큼 사고의 과정을 확인할 수 없고, 소위 ‘연필을 굴려서’ 골라낸 것이 정답일 확률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실력과 별개로 문항 유형에 얼마나 익숙한지 여부에 따라 풀이 속도와 정답률이 달라질 수도 있다. 또한 정답을 잘 골라낼 실력자라도 시험 당일의 컨디션에 따라 혹은 실수로 혹은 출제자가 제시한 정보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어서 오히려 오답을 골라낼 여지가 있을 수 있다(2014학년도 수능의 세계지리 오류 문항이 그러했다). 다수의 문항으로 이런 식의 오차를 보정할 수 있지 않겠냐 하겠지만, 한 문제의 차이로 서열이 나뉘는 시험에서는 오차로 인한 점수도 실력으로 간주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설령 문항 오류가 없다고 해도, 객관식 시험 점수 하나로 어떤 개인을 완전히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년까지 입시전형에서 수능 비중이 더욱 강화될 계획이지만, 여기서 논한 객관식 시험이 가진 문제점들을 재고한다면, 수능의 비중은 오히려 약화되어야 마땅하다. 덧붙여 실상 더 중요한 것은 ‘대학수학능력’이 무엇을 측정하고자 하는지, 선다형 시험이 그 능력을 제대로 잴 수 있는지, 수능 준비로 인해 고교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이 공부다운 공부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

 

구소연 중앙대학교 교육학과 박사 졸업
중앙대 대학원에서 교육사회학을 공부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대한 정책 논의가 함축한 학교 교육과 교육기회 공정 배분의 의미 검토」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느릿한 것이 흠이지만, 꾸준하게 우리 사회의 교육 담론에 관심을 두고, 읽고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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