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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고 아름다운 청소년문학의 세계
기묘하고 아름다운 청소년문학의 세계
  • 최승우
  • 승인 2021.12.30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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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란 지음 | 사계절 | 280쪽

지금 청소년문학의 새로 난 길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퀴어, 페미니즘, 정체성, 장르문학 등 최근 새롭게 바뀐 청소년문학의 지형도를 통해 들여다본 우리 사회의 다양성 지향과 청소년 이야기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나다
2015년에 나온 오세란의 『청소년문학의 정체성을 묻다』가 청소년문학이 활발히 나오고는 있지만 비평이 부재하던 시기에 청소년을 위한 문화, 문학의 지형도를 세우려는 평론집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기묘하고 아름다운 청소년문학의 세계』는 이미 새겨진 공식 루트에서 좀 더 깊이 들어가 다양한 샛길을 탐색하며 청소년문학의 새로운 방향성을 점쳐보는 평론집이라 할 수 있다. 서평 중심인 보통의 비평집과 달리 이번 평론집엔 청소년문학과 문화, 지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키워드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퀴어, 젠더, 성정체성, 페미니즘, 포스트휴먼, SF, 장르문학 등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전방위적으로 다루는 글들을 통해 우리는 인권 담론에 머물러 있던 보수적인 청소년문학의 틀에서 벗어나 좀 더 문학적이고 불안정하고 자유로운 청소년문학을 만나게 된다.

새로운 청소년문학의 구체성을 짚다
1부 ‘새로운 청소년문학이 온다’에서는 퀴어, 포스트휴먼, 소수자성을 테마로 장르문학과 SF 작품들을 두루 다루면서 청소년문학의 최근 경향을 살핀다. 시대가 바뀌어 비인간 존재를 주목하기 시작한 문학은 인간 이후의 환경을 탐색하며 타자와 비인간을 포함한 새로운 주체를 인간과 동일선 위에 놓고 공존을 추구한다. 오세란은 SF를 중심으로 포스트휴먼 문학을 살피면서 미래의 시간과 가상공간에서 인간이 어떻게 정의되는지 살핀다. 최영희, 듀나, 최의택 등의 SF 작품들을 통해 인간중심주의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밝히는 한편 인간으로서의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 세상의 모든 존재 앞에 겸손해질 준비를 하게 하는 포스트휴먼 소설을 통해 인간다움을 재해석한다.
저자는 기존의 청소년소설에 영어덜트물, 장르소설이 합류하면서 발생한 청소년소설의 장르화 경향을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인다. 판타지, SF, 추리, 스릴러, 호러, 로맨스, 무협, 역사 장르가 혼종되면서 각 장르의 특징적 캐릭터인 좀비, 마녀, 탐정, 영웅 등이 합류해 청소년 독자에게 교육이 아닌 재미를 제공하려는 움직임을 구체적 작품 분석과 함께 보여준다. 엔터테인먼트적인 장르서사와 청소년소설이 만나 독자층을 확장하고 작품성을 확보하는 것이 현실의 청소년 독자를 적극 끌어들일 수 있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조건 가볍고 유머러스하기만 한 도식적인 명랑소설에 대한 경계도 잊지 않는다. 이금이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 김민경의 『지구 행성에서 너와 내가』 등 탄탄한 리얼리즘 서사로 청소년 독자를 설득하는 진지한 재미 역시 청소년소설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최근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다양성 지향 움직임과 실천을 이렇듯 청소년문학 작품들에서 찾아낸다. 여기서 다룬 이야기들은 어린이, 청소년의 다양한 모습을 그대로 존중하고 수용하고 이들을 좀 더 자유로운 존재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이다.

문학이 현실의 청소년 독자를 만났을 때
2부 ‘청소년, 자기 서사의 주인공’에서는 본격적으로 현실의 청소년 독자와 작품이 만나는 현장을 살펴본다. 「독서들로부터: 페미니즘과 청소년 독서 교육 현장」은 퀴어, 페미니즘 서사가 중심이 된 청소년문학의 경향과 실제 교육 현장에서의 청소년 독자들의 반응을 살피고 이 변화의 의미를 살피는 의미 있는 좌담이다. 강남역 집회, 낙태죄 폐지 운동, 나다움 어린이책 회수 사태 등으로 드러난 변화하고 있는 젊은 세대와 그 변화를 읽지 못하는 사회 인식의 괴리에 대해 논하면서 이것이 학교에서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을 때 학생들에게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를 직접 청소년과 대면해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는 현장의 교사, 전문가와 살펴본다. 아이들은 페미니즘 소설의 주제를 처음엔 ‘호소’로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여성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소수자 문학을 학교 현장에서 다루는 것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숨어 있는 아이들에게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주고 안정감 있게 뒤를 받치는 역할을 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는 교사의 목소리는 청소년문학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따뜻한 응원이 되어준다.
오세란은 이에 한 발 더 나아가 청소년문학은 우리는 모두 괴물이고, 그것을 긍정해 ‘괴물화’가 되어 비상하자고 말하는 장르라고 정의한다. 의인화되어 있거나 괴물로 은유되는 아동과 청소년은 인간과 비인간을 교차하는 존재로 작품에서 그려지는데, 이때의 괴물은 비이성적인 존재, 기이하고 비정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지금보다 훨씬 큰 자아를 품고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껏 우리가 인간중심주의로 바라본 ‘인간’은 오히려 다른 존재와 생명에 대한 존중, 연대가 결여된 비정상적인 사람일 뿐이다. 저자는 아동청소년문학 읽기는 이러한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권을 복권하기 위한 유효한 방법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청소년은 기성세대에 편입되지 않아 자유로운 시선으로 사회를 비판할 수 있고, 조직화된 사회권력 관계에서 언제나 을이며, 신체적으로도 정서의 진폭을 예민하게 느끼기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기에 적합한 장르로서 청소년문학의 매력을 꼽는다. 그러면서 검열자로서 어른이 청소년소설 속 아이들의 다양한 날개를 꺾고 우리 사회 시스템이 정한 청소년의 틀에서 벗어날까 봐 통제하는 청소년 이야기를 더는 생산하지 않기를 바란다. 크고 아름다운 날개를 단 이야기가 청소년소설로 나와 청소년들의 삶이 좀 더 자유로워지고, 세상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아냈다.

우리를 새롭게 이끌어준 작가들의 세계
3부 ‘아동청소년문학의 새로운 길을 보여주다’에서는 일찍이 기존 관념과 편견의 벽에 부딪히면서도 자신만의 풍성하고 아름다운 날개를 펼친 작가들을 집중 조명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다윈 영의 악의 기원』으로 한국 문학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박지리 작가와 편집자이자 평론가로서 아동청소년문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쌓은 김이구 작가이다. 오세란은 박지리의 첫 책 『합체』를 비롯해 『맨홀』 등 모든 작품을 찬찬히 살피며 그가 청소년소설의 정체성에 중요한 담론을 제공했음을 밝힌다. 박지리 작가가 비극적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가 우리 청소년소설에 어떻게 스며들어 오늘의 풍성한 이야기들의 씨앗이 되었는지를 논한다.

박지리의 인물들은 “우주를 차마 어지럽히지 못한” 소년들이며 “영원한 세븐틴”이다. 그는 어른이 되지 못한 이들의 절망을 그리거나 ‘어른이 된 다윈’의 섬뜩한 모습을 보여주는 역설로 세상을 고발했다. 박지리가 만들어낸 유의미한 절망을 읽으며 청소년들이 만나는 세상, 어른이 만들어낸 세상이 어떤지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박지리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세상의 세븐틴’들에게 어떤 새로운 아버지와 세상을 만나게 해주어야 할지,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255쪽

김이구 평론가는 1950년대 암울한 시대에 미래 세대를 이끌어갈 어린이를 위해 SF 작품을 쓴 한낙원 작가를 발굴해 ‘한낙원과학소설상’ 공모를 만들고, 일찍부터 아동청소년작가들을 SF 세계로 이끌었다. 또한 『해묵은 동시를 던져 버리자』라는 평론집을 통해 작가들이 ‘어린이’를 인식하는 방식의 문제점과 그로 인한 관습적인 동시 창작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시적 모험과 타자와의 소통을 강조한 그의 이야기는 글쓰기의 모험과 모든 존재와의 소통을 꿈꾸는 지금의 아동청소년문학 작가들에게 새로운 모험을 꿈꾸게 한다.

기묘하고 아름다운 청소년문학을 꿈꾸며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평론가이자 청소년문학의 애독자로서 치열한 읽기와 고민과 애정이 가득 담긴 글들은 최근 4, 5년간 급속한 속도로 변하고 있는 우리 청소년문학의 지형도를 세밀하게 보여주면서 이 길들이 우리를 어디로 안내할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독서 교육에 관심이 있는 전국국어교사모임 ‘물꼬방’에서 활동하는 송승훈 교사는 교사들에겐 청소년문학이 낯설 수 있는데 이 책을 통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추천사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교사들은 대부분 대학 시절에 청소년문학 읽기를 훈련받지 않아서, 교사가 되어서도 그 책들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고등학생들에게 청소년문학은 엄청 빠져드는 이야기이다. 2000년대 초반에 청소년 권장도서에 청소년문학이 많이 들어온 뒤로 지금은 중고등학교에서 많이 권하고 있다. 오세란 평론가의 글은 그 작품들이 어떤 세계를 그리는지, 그 책들을 어떻게 읽을지에 대해 말을 걸어주는 꽤 괜찮은 공부 벗이다. 고민 많은 청소년에게 청소년문학은 ‘사는 힘’이 될 때가 종종 있다. 이 책은 무엇보다 청소년소설의 현재 지형을 잘 알려준다. 수많은 청소년 출판물 중에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

독자와 시대가 함께 만들어가는 장르로서 청소년소설은 사회·문화 지형도, 청소년 독자의 위상 등 독서생태계와 밀접히 소통하며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다양한 정체성과 연대의 힘이 중요해진 시대에 봉합된 정체성에 갇히지 않고 비규범적이고 비순응적인 보편성을 획득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솔직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모든 존재가 그 자체로 기묘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지배규범에 도전하고 저항하는 청소년문학의 미학적 본질을 이 책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문학은 날개 잃은 성인이 돌아보는 결과론적 과거의 성장담이 아니라 청소년이 펼칠, 아름답고 다양한 빛깔의 날개를 지켜주려는 전위의 문학이 되어야 한다. 청소년문학은 정체성의 정체, 정상의 비정상을 의심하며 날개 달린 괴물을 전유하여 인간 너머의 존재가 되기를 꿈꾸는 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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