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7:05 (토)
만오만필
만오만필
  • 최승우
  • 승인 2021.12.31 10: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현동 지음 | 안대회·김종하 외 13인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680쪽

이토록 흥미로운 이야기 세상이라니
K-콘텐츠 상상력의 원천
조선 판 스토리텔링
야담문학의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지금까지 온전히 무명의 인물로 남아 있던, 조선 후기 남인(南人) 사대부 정현동(鄭顯東, 1730~1815)의 야담ㆍ필기집이다. 당대의 저명한 학자 안정복의 문인이기도 했던 그는 재야 지식인으로 86세를 살면서 견문한 야담과 실화 194화를 체계를 갖춰 엮어 이 책을 완성했다.
‘비렁뱅이의 출세기’, ‘천연두가 맺어준 인연’, ‘남편을 고발하여 죽인 여자’, ‘김 첨지의 대를 이어준 과객’, ‘후취의 처녀성’, ‘다섯 달 만에 태어난 아기’, ‘보쌈 당한 홀아비’, ‘양물을 물어뜯은 선비’, ‘낙태 사건의 처리’, ‘귀신의 시 사랑’, ‘간음인가, 도둑질인가’ 등 무엇보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깃거리들이 읽는 이의 시선을 잡아끈다. 마치 언론 사회면의 헤드라인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쓰는 안대회 교수의 경쾌한 번역도 허구와 사실의 공간을 누비며 조선시대 사회 풍경을 담아낸 이 콘텐츠를 현대적인 페이지터너로 변신시켰다. 또 실존한 등장인물의 생몰년과 행적, 관련된 복잡한 사건의 역사ㆍ문화적 사실, 난해한 문구의 근거 등은 여러 문헌들을 참고하여 각주에 밝혀서 이야기의 배경과 저간까지 폭넓게 이해하도록 도왔다.

이 책의 저자 정현동
문예에 능했던 어느 재야의 선비

정현동은 자가 용경(龍卿)이고, 호는 만오(晩悟)이다. 초명은 승연(升淵)이다. 1730년 12월 4일 출생하고 1815년 8월 16일 사망했다. 동래 정씨 명문가 후손으로 경기도 광주(廣州) 경안(慶安)에 세거한 직제학공파(直提學公派) 후손이다. 이 가문은 먼 윗대에는 문과 급제자를 내리 배출하였으나 고조부를 전후한 시기에는 과거 급제와 멀어졌다.
정현동도 여러 차례 과거를 보았으나 급제하지 못하고, 나이가 들자 과거를 포기한 채 경안으로 완전히 낙향하였다. 만오(晩悟)란 호는 이때 지은 듯하다. 같은 지역에는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이 거주하여 부친과 친분이 깊었다. 그 때문에 정현동은 일찍부터 안정복에게서 수학하였고, 그 외아들 안경증(安景曾, 1732~1777)과는 나이도 비슷하여 절친하게 지냈다.
안정복은 정현동을 “문예에 능하다”라고 평가하여 시문을 잘 짓는 능력을 인정하였다. 『만오만필』 하권 27화와 29화, 100화에 정현동이 손수 지은 시가 실려 있어 안정복의 평을 입증하고 있다. 보단(譜單)에 나오는 바, 문장과 학행이 있어 세상에서 추대하였다고 한다. 편저로 『열조통기(列朝通紀)』, 『전사절요(全史節要)』, 『가례보주(家禮補註)』 등의 책이 있고, 문집 2권과 만필(漫筆) 2권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문집과 여러 저작은 현존하지 않고, 교열하여 보완한 『열조통기』가 규장각에 전해 온다.
정현동은 안정복의 역사학 연구를 이어받아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안정복이 조선왕조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열조통기』를 마지막까지 정리하고 교감한 제자가 바로 정현동이었다. 안정복의 초기 제자로서 정현동의 존재는 오랫동안 존재감이 미약했으나, 이제 『만오만필』의 발굴을 통해 그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게 되었다.

문학성 풍부한 야담집
상권 「이어(俚語)」

정현동은 상권과 하권을 뚜렷한 기준으로 나눠 『만오만필』을 서술했다. 어느 권이나 이야기를 서술할 때 소재나 주제를 표제로 명확하게 제시하여 분류하지는 않았으나 대체로 유사한 이야기를 모아서 편집하려는 편찬자의 의식이 뚜렷하다. 상권에 실린 86화는 대부분 서사성이 짙고, 이야기가 길게 펼쳐져 야담의 서사적 성격에 잘 부합한다.
이야기 소재로 보면, 남녀의 기이한 만남과 출생의 비밀, 과객과 암행어사, 재산 다툼과 소송사건, 여성의 절개와 음행, 귀신과 도적, 과거시험과 길흉화복, 보은과 복수, 호환(虎患)과 전란, 치부(致富)와 재난 등 조선 후기 야담에 흔히 등장하는 소재를 고루 싣고 있으면서도 다른 야담집에서 보기 힘든 독자적인 이야기가 적지 않다. 또 상당수 이야기는 이 책에서 처음 나오거나 소재가 비슷하다고 해도 줄거리나 표현에서 차이가 크다. 그 이전이나 이후 야담집과 직접적인 교섭이 적은 탓이다.
특히 ‘야담의 시대’라 할 만한 18세기와 19세기에 야담집은 주로 노론 지식인에게서 나왔다. 소론의 경우 이현기(李玄綺, 1796~1846)의 『기리총화(綺里叢話)』 1종이 전하지만, 남인의 경우엔 지금껏 전무했다. 이제 이렇게 『만오만필』이 발굴됨으로써 남인의 첫 번째 야담집 편찬자가 등장하는 셈이다. 정현동은 노론 지식인과 직접적인 교유가 드물었기에 그의 야담집은 독자적이고 창조적인 소재와 구성, 표현이 우세하다. 남인 지식인에게서 나온 유일한 야담집 『만오만필』이 지닌 남다른 가치가 여기에 있다.

당대 사회상이 반영된 가치 있는 사료
하권 「고사(古事)」

『만오만필』 하권은 상권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고사」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옛날에 일어난 실화를 많이 다루고 있다(하지만 하권에도 야담의 성격에 해당하는 긴 이야기가 몇 편 수록되어 있다). 조선 왕조의 역사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지만 동시대에 견문한 사실과 저자 집안의 사적과 저자의 경험담까지 이야기의 폭이 넓다. 전대 문헌에서 채택한 기사도 보이나 대개는 저자의 견문에 기댄 기사이다.
하권 역시 주제별로 유사한 이야기를 모아 편집하여 대체로 역대 군주의 행적, 명재상과 명문가의 일화, 중국사의 괴이한 일화, 근년 사회의 변란, 명사의 일화, 친가와 외가 인물의 행적과 일화, 친구들의 일화가 많다. 글에서는 역사를 중시한 태도가 확연히 드러난다. 안정복의 문인으로서 저자는 조선왕조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열조통기』를 정리하여 교감하고, 중국 역대 왕조사를 축약한 『전사절요』를 저술한 행적에서 알 수 있듯이, 자국의 역사를 속속들이 이해한 학자였다.
저자가 특별히 관심을 기울인 인물에는 국왕으로는 조선 전기의 성종이 있고, 정승으로는 정광필(鄭光弼), 집안 선조이자 지방관으로는 정언충(鄭彦忠), 지방관으로는 이지광(李趾光)이 있어 각각 여러 이야기로 다루었다. 특히 이지광 이야기는 『만오만필』의 독자적 기사 중 하나로 꼽힌다. 그의 행적을 사대부 일화의 하나로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으나 그 글을 윤색하면 하나의 훌륭한 야담이 될 만한 정도다. 이렇게 하권에는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행적과 일화의 비중이 크지만, 그렇다고 이야기로서의 흥미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나아가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아들로 만든 역사 조작의 과정을 밝혀내고, 임진왜란 때 북관대첩을 거둔 정문부를 천하 명장으로 평가하고 그가 재평가되는 과정을 서술하였다. 역사적 사건과 문제적 인물을 평가한 안목이 높은 수준이다.

재야의 한 선비가 채록해 엮은
조선시대 인정세태의 모든 것

이렇게 『만오만필』은 허구에 뿌리를 둔 야담과 역사적 사실에 뿌리를 둔 필기(筆記)를 하나의 저술에 녹여서 편찬한, 고심이 담긴 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상권에 주를 이룬 것처럼 수록된 이야기의 소재는 흥미롭고 이채롭다. 여행에서 만난 과객의 특별한 체험, 남녀의 기이한 인연 맺기, 변화하는 여성의 지위와 정절 관념의 퇴색 현상 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양반 남성이 기녀나 이미 성경험이 있는 여성과 정식으로 혼인하는 파격적인 사연도 등장한다.
게다가 재산 증식과 재산 다툼 등 경제적 문제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고, 가족이나 친척, 친구 사이의 분쟁이 다수 보인다. 함경도 기녀가 양반 청년 안생과 결혼하는 내용을 담은 상권 3화와 속량한 노비를 갈취하는 양반 이야기인 62화, 친구를 배신하고 치부하는 내용의 75화, 동생네 재산을 독차지하려고 가짜 남편을 만드는 이야기인 84화 등에서 유교 윤리를 중시하는 국가와 사회에서 현실은 오히려 반대로 흘러가는 인정세태를 폭로한다. 재미난 이야기 속에서 사회현실의 실태와 치부를 드러내는 특징이 돋보인다. 때는 조선시대, 다양한 소재와 서사가 뒤섞인 길거리 이야기의 박물지이자 픽션과 팩트가 동행하여 만들어놓은 이 탁월한 이중주는 수준 높은 문학성과 시의적인 사회성을 고루 성취해내고 있었다.

문학사적 가치와 저자의 현실 맥락

야담집으로서 『만오만필』은 18세기에 출현한 『천예록』과 『잡기고담』, 『학산한언』, 『동패낙송』의 뒤를 잇고, 19세기에 나온 『기리총화』와 『계서잡록』, 『계서야담』, 『청구야담』, 『동야휘집』에 앞서 출현하였다. 앞에 나온 야담을 계승하면서 뒤에 나온 야담집에 영향을 주었다. 19세기 박물학자 이규경(李圭景)이 『오주연문장전산고』 「우리나라의 귀신같은 용사들에 대한 변증설[東國神勇辨證說]」)에서 이 책의 하권 57화를 인용한 것을 보면, 당시 지식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읽혔던 듯하다.
저자 정현동은 재야 지식인으로 경기도 광주에 머물며 작품을 썼다. 또 스승이 쓰다 만 미완의 역사서를 완성한 역사가의 면모도 보였다. 근기(近畿) 지역 남인 학자로서, 저명한 사학자 안정복의 문인으로서 역사와 사회를 보는 관점이 이 책을 저술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사회의 큰 현안이던 천주교 문제에 안정복과 견해를 같이하여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담배의 폐해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서술한 다음 저자로서 논평도 덧붙이곤 했는데 보수적 유자(儒者)의 관점을 강하게 내비쳤다. 또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고, 관직에 나서지 못한 처지로 80세 노년에 저술한 탓인지 “장수와 요절, 부귀와 빈천에는 각기 정해진 운명이 있다”라며 운명에 순응하는 소극적 태도와 풍속과 세태를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관점도 엿보인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

꼬장꼬장한 아우라가 연상되는, 조선시대 어느 향촌 선비의 붓끝에서 탄생했으나 『만오만필』 속에는 현시점에서도 주의 깊게 바라봐지는 몇몇 지점들이 존재한다.
먼저 조선사회에서 ‘기회’ 문제의 일단면을 읽어볼 수 있는 지점이다. 정현동 스스로는 생원진사시에 입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만오만필』에는 이와 관련된 두 측면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는데, 하나는 능력과 처지가 못 됨에도 편법이나 조력자의 등장으로 급제의 영예를 누린 이들을 바라보는 운명론의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역경 속에서도 부와 명예를 이룬 사람들은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능력주의의 입장이다. 이는 재주와 뜻을 품고 있었지만 끝내 급제하지 못한 저자 본인의 형편과 회포가 투영된 것으로,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소외자로 머물고 만 재야 선비의 복잡한 심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작품 속에서 주인공이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들의 형상이다. 이들은 재치 있고 기지 넘치는 기녀는 물론, 수완 좋은 며느리나 당당한 과부들로 등장한다. 여기서 당대의 전형적인 여성상을 상기할 때 떠오르는 소극적이거나 순응형의 캐릭터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간 엄존해온 신분ㆍ계급ㆍ빈부ㆍ이념ㆍ사회적 격차의 흥미로운 혼돈상을 남아낸 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개성들이 아닐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