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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파노라마] 메타버스, 낯선 익숙함
[디자인 파노라마] 메타버스, 낯선 익숙함
  • 오창섭
  • 승인 2022.01.12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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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디자인 파노라마 ②_오창섭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교수

<디자인 파노라마>가 새롭게 출발합니다. 최범 평론가, 오창섭 건국대 교수(예술디자인대학), 조현신 국민대 교수(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등 기존 필진은 한국 사회, 문화, 근현대사 등에 담긴 디자인 이야기를 이어나갑니다. 이들과 함께 여러 디자인 전문가가 초대 필진으로서 참여해 흥미로운 디자인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께 찾아갈 계획입니다.

국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속 세계에 있는 오창섭 교수의 아바타. 이미지=오창섭

최근 사람들의 관심이 디지털 세계로 쏠리고 있다. 그 현상 이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위협받는 일상을 디지털 정보 기술을 통해 지탱하려는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코로나19는 끝이 보이지 않고 있고, 그에 따라 생활의 불편함도 계속되고 있다.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날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불편함은 의외로 크다. 매일같이 들려오는 ‘거리두기’라는 표현이 두려운 것은 바로 그래서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외로움이나 불안 같은 정서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고 소통해야 한다. 오늘날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회합할 수 있는 플랫폼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메타버스의 정의는 무엇인가

‘메타버스’라는 용어도 바로 이러한 상황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메타(Meta)와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이 표현은 미국의 SF 작가인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1992년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타버스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SNS에 떠도는 ‘재미있으면 게임이고 재미없으면 메타버스’라는 이야기는 그런 혼란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디지털 정보 기술이 만들어낸 가상세계와 관계된 것이라는 데는 어느 정도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교육 현장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줌(Zoom)’이나 가상 부동산을 판매하는 ‘Earth2’ 사이트는 메타버스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가상세계만 아니라 그곳에서 활동하는 아바타의 존재를 통해 메타버스를 정의하기도 한다. 그들은 『스노 크래시』에 등장하는 메타버스의 개념을 충실히 따르려는 것으로 보인다. 소설에서 현실 세계의 인물은 가상세계로 들어가 아바타로 살아간다. 이런 맥락에 어울리는 메타버스의 사례로는 ‘로블록스(Roblox)’ 같은 게임을 들 수 있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제페토(Zepeto)’도 그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제페토는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제페토 세계 안에서 플랫폼 이용자는 3차원 아바타로 존재하고 그 아바타로 활동한다.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로 존재하며 무엇인가를 하는 모습은 2000년대 큰 인기를 얻었던 ‘싸이월드’를 연상시킨다. 물론 제페토는 20여 년 전의 싸이월드와 달리 가상세계의 모습도 다르고, 그곳에서 할 수 있는 내용도 다양하다. 인물이나 공간의 3D 표현도 매우 사실적이다.

게다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사용자와 닮은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고, 의상이나 액세서리뿐만 아니라 표정과 몸짓까지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 또한, 이용자들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 자신의 제페토 아바타의 모습을 올리며 즐길 수 있는 것 역시 새롭다. 하지만 가상세계와 아바타라는 맥락에서 보았을 때 제페토는 싸이월드의 연장선에 있다. 그래서 만일 제페토가 메타버스라고 한다면, 20여 년 전의 싸이월드 역시 메타버스일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일까? 오늘날 메타버스의 개념은 낯설고 새로우면서도 익숙하다.

 

사이버스페이스와 메타버스

메타버스의 내용을 확인하다 보면 ‘사이버스페이스’와 어딘지 모르게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대중들이 인터넷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2000년 전후에 디지털 네트워크 기술이 만들어낸 가상세계를 뜻하는 용어로 인기를 끌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사이버(Cyber)와 스페이스(Space)의 합성어다. 메타버스도 그렇지만, 사이버스페이스도 디지털 기술이 만들어내는 네트워크를 공간으로 이해하는 은유다. 이러한 은유 사용의 효과는 흥미롭다. 사람들은 육신이 자리하고 있는 현실 세계와는 다른 가상세계가 존재한다고 믿게 되었다. 그것은 문학과 영화적 상상력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원인이기도 했다.

메타버스도 그렇지만 사이버스페이스 역시 문학의 산물이다. 1984년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은 자신의 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를 통해 이 개념을 선보였다. 의식이 현실 세계의 육체에서 벗어나 사이버스페이스 상의 새로운 신체, 다시 말해 아바타로 이전한다는 소설적 상상은 이후 1999년 「매트릭스」와 「13층」 같은 영화로 발전했다. 영화에서 첨단 기술이 만들어낸 공간은 인터넷 사이버스페이스의 미래였다. 그것은 현실 세계의 질서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계로서, 영화는 그 세계를 해방과 억압의 가능성을 동시에 포함하는 공간으로 그렸다.

사람들은 문학과 영화의 상상력을 매개로 디지털 네트워크를 이해했다. 현실 세계와는 다른 공간(세계)으로, 그래서 들어가고 나올 수 있으며 또 다른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보 기술 네트워크의 세계는 그렇게 현실 세계와 다른 공간적인 무엇으로 고착되어 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곳이 현실과 다른 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이고, 그래서 개인이 현실에서와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부와 권력, 그리고 흥미로운 모험이 가능한 곳이라는 말이다. 현실이 고단할 때 그 세계를 향한 호기심과 갈망이 커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지난날 사이버스페이스를 향한 관심 이면에는, 그리고 오늘날 메타버스에 대한 열광 이면에는 이러한 메커니즘이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몸은 현실 세계에 묶여있지만, 의식은 사이버스페이스라는 가상세계에 자리하는 새로운 신체(아바타)를 통해 현실에서와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상상은 매력적이다. 이 매력적인 상상이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의식이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얻을 때 현실의 신체와의 연결을 끊을 수 있어야 한다.

의식은 이곳이 아닌 그곳에만 있어야 한다. 그곳에 있으면서 이곳에도 있다는 것은 하나의 의식이 동시에 두 신체를 가지는 것으로, 뭔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 불편함을 알기 때문에 소설과 영화에서는 사이버스페이스로의 입장과 함께 현실의 육신을 잠시 멈추게 하는 것이다. 영화 「13층」에서 가상공간으로 이동하는 침대(?) 같은 장치, 그리고 「매트릭스」에서 목 뒷부분에 있는 플러그 장치는 의식이 사이버스페이스로 향하는 입구이면서, 입장과 동시에 현실의 신체와의 연결을 정지시키는 스위치이기도 하다.

사실 의식을 육체와 자유롭게 분리하고 연결하는 장치 없이 새로운 세계로의 완전한 몰입은 어렵다. 그런데 현재 인류의 기술은 거기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한동안 현실화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가상세계로 뻗어가는 디자인 파노라마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에 힘입어 메타버스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사실 사이버스페이스 이후 지난 20년 동안 관련 기술은 커다란 진보를 이루었다. 인터넷 기술은 물론이고 VR 기술, 데이터 처리 기술, 인공지능과 3D 표현 기술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도 넓고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은 여전히 현실의 몸에 묶여있다. 만일 누군가 현실에서 벗어나 가상세계로 들어가 그곳의 아바타와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세계를 메타버스라는 이름으로 상상한다면 그는 우리가 ‘아직’이라는 시간에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물론 메타버스는 유용하다. 우리는 메타버스 안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할 수 있다. 회의도 할 수 있고, 공연도 볼 수 있으며, 수업도 가능하다. 메타버스에서는 무엇인가를 만들 수도 있고, 사고팔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경험의 순간에 현실 세계에 있다는 인식에서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오창섭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교수

디자인 연구자로 한국디자인학회 최우수 논문상(2013)을 수상했으며,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전시 「안녕, 낯선 사람」(2017)과 DDP디자인뮤지엄의 「행복의 기호들」(2020) 전시를 기획했다. 저서로 『내 곁의 키치』,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 메타디자인을 찾아서』, 『인공낙원을 거닐다』, 『9가지 키워드로 읽는 디자인』, 『근대의 역습』, 『우리는 너희가 아니며, 너희는 우리가 아니다』 등이 있다. 현재 건국대 예술디자인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메타디자인연구실’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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