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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는 인간의 마음·역사·환경이 체화돼 있다
몸에는 인간의 마음·역사·환경이 체화돼 있다
  • 김봉억 기자
  • 승인 2022.01.19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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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_ 융복합 첨단연구의 현장 ‘체화된 마음 연구’ ① 몸이란 무엇인가

<교수신문> 특별기획_융복합 첨단연구의 현장 ‘체화된 마음 연구’ 첫 번째는 ‘몸이란 무엇인가’를 다룬다. 

인간은 일생을 통해 ‘몸’에 많은 기대를 건다. 몸의 건강, 몸의 안전, 몸의 아름다움 등등. 몸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러나 결국 우리의 몸은 제한된 시간에서 끝난다. 몸은 영원하지 않다. 죽음의 도래이다. 몸은 찰나의 불빛 같은 반짝거림으로 절망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몸은 희망인 동시에 절망을 뜻한다. 과연 몸이란 무엇인가?

이번 대담에서는 몸이란 무엇인가, 두 가지 몸 : 신(身)과 체(體), 몸은 마음의 그릇인가, 몸이 곧 마음인가에 대해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와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인문학부)가 의견을 주고받았다. 대담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해 1월 초에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 ‘몸’은 무엇인가?
최재목(이하 최): 삶의 의미를 묻는 것이 곧 몸의 의미를 묻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의 의미 속에는 본질적으로 몸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몸에 대한 의미를 간과할 때 삶의 의미 또한 간과될 수 있다. 몸이 없는 삶이 가능한가? 만일 가능하다면 그것은 관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 삶일 것이다. 

근대 이후 우리의 몸은 금기의 조작, 신비로부터 해방되었다. 마치 그린벨트 해제로 인한 토지의 난개발처럼, ‘숨김’에서 ‘벗김’으로, ‘그대로 둠’에서 ‘개조’로 치달아왔다. 욕망이 몸을 해석하고 자본의 유혹으로 상품화되었다. 그래서 주체는 너무나 가벼워져 부초(浮草)나 뜬구름처럼 방황하게 되었다. 또한 역사 속에서 몸은 ‘감추는 것=금기 준수’의 대상임과 동시에 ‘벗기기 위한 것=금기 침범’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몸은 감추기 위해서도 벗기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그 벗김과 숨김 사이의 ‘에로티시즘’과 ‘긴장’은 긴 역사를 통해 종교, 권력, 예술 등에서 살필 수 있다. 

몸의 ‘긍정/숭배’와 ‘부정/비하’도 있다. 오늘날의 스포츠 문화 등에서처럼 몸을 긍정하고, 삶의 의미 가운데 몸이 왕좌를 차지하고 신화(神化)하는 경향, 몸의 숭배는 몸 자체가 삶의 의미이다. 힘과 건강, 몸의 매력과 아름다움이 인간의 최고 가치이자 유일한 의미로 나타난다. 이와는 상반되게 몸의 궁핍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즉 추하고 위축된 신체, 병들어 고통 속에서 상해가고 있는 신체, 가난과 질병, 궁핍과 관리 부족으로 굽고 황폐해서 상해가는 신체, 무시무시한 파괴적 기계, 무력과 전쟁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진 육체,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에 무덤 속에서 썩어 문드러져가고 있는 사체와 해골…. 궁핍한 몸을 통해서 몸의 비하와 부정은 지상의 드러난 몸 자체가 삶의 궁극적 의미가 아님을 말해준다. 초기불교의 부정관(不淨觀), 백골관(白骨觀), 시신관(屍身觀)이 공(空)함을 말해주는 것도 그것이다. 

한 마디로 인간의 ‘몸’은 삶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준다. 몸에는 인간의 마음, 역사, 환경이 체화되어 있고, 그것이 몸의 담론으로, 몸+‘짓’(=행위)으로 층위를 가지며 드러난다.  
 
한형조(이하 한): ‘의미’가 몸을 말할 때의 키워드이다. 의미의 주재가 부재할 때, 그 몸의 방임은 다른 욕망의 주체들과의 갈등으로, 공동체의 혼란과 무질서로 이어질 것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억압하고, 다수가 소수를 내리찍는 자연 상태를 면하기 위해서도 질서는 필요하다. 여기 질서는 ‘의미’의 한 주요한 날개이다. 

우리는 지금 주어진 몸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곤혹 속에 있다. 쇼펜하우어가 갈파했듯, ‘몸’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고통과 권태의 시계추를 오가다가 백골 진토로 돌아갈 것이다. 이 시대 물신화가 증폭되고 허무주의가 만연한 것이 그 때문이 아닐까. 전통시대 주자학에서 발원된 이기론(理氣論)의 기본 테제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다. 기(氣)가 몸이라면 이(理)는 그 의미라 부를 수 있다. 의미를 배제한 몸은 배고프면 밥을 찾고, 나이가 차면 짝을 찾는 원초적 욕망의 쳇바퀴를 돌 뿐 아닐까? 

주자학은 말한다. “인간의 몸은, 우주의 다른 생명과 마찬가지로 의미를 안고 태어난다. 성찰과 탐구를 거쳐 이들을 발견하고, 그를 구현하는 것이 인간의 길이다.” 이 점에서 나중 유입된 서학, 기독교와 닮았다. 다만 주자학은 이 의미(理)를 자연적 예비로 읽는데 비해, 혹은 현대적 용법으로 생물학적 진화의 자연적 결과라고 보는데 비해, 기독교는 신의 초월적 명령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다르다. 그러나 이 둘은 그 거리가 멀지 않다. 조선 후기 박해를 기억하는 분들은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서학은 유교와 대립하지 않고 그 어떤 전통보다 가깝다. 주자학의 어법으로 하자면 서학은 리학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 ‘의미’의 차원이 근대와 더불어 사라졌다.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강조되고, 욕망은 욕망인 한 존중받게 되었다. 몸이 신의 자리에 등장했다. 니힐리즘의 싹이 이때 뿌려졌다. 어느 시대이든 신이 죽는 법은 없다. 다른 것으로 대치될 뿐이다. 

△ 두 가지의 몸? ‘신’(身)과 ‘체’(體)에 대해 설명한다면.
최: 몸은 남성과 여성, 인간과 동물, 평범함과 신성함, 아름다움과 추함 등으로 구분되고, 종교제례와 스포츠 사이에서, 질병과 의학, 해부학의 측면에서, 미적, 예술적, 시적 풍경으로 보이기도 한다. 

서양의 철학사에서 보면, 후설은 인식 주체(subject)로서의 마음과 인식 대상(object)으로서의 몸이라는 전통적 구분을 비판하고, 대상으로서의 몸((Körper)과 살아있는 주체로서의 몸(Leib)을 구분했다. 메를로 퐁티는 후설이 제시한 두 가지 몸 개념을 이어받아 객관적 몸(corps objectif)과 현상적 몸(corps phenomenal)을 구분하고 거기에 지각을 중심으로 하는 체화 개념을 추가, 체화주의의 기반을 제공했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효경』에서 말한 ‘신체(身體)+발부(髮膚: 머리털과 피부)’처럼 몸(corps)과 살(chair)을 구분한 바 있다. ‘살아있는 주체로서의 몸’(Leib)은 ‘신(身)’에, 대상으로서의 몸((Körper)은 체(體)에 대비시켜 볼 수 있다. 

‘신’은 생리현상을 가진 살아 움직이는 생명 내용을 드러낸 몸이고, ‘체’는 장기를 담은 그릇으로 형식적(외관) 면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신과 체는 분리할 수 없다. 둘 다가 있어야 몸이다. 

한: 주체와 객체의 구분, 물리적 현상학적 구분은 동양에서는 생소할 듯하다. 그들이 인식론 근처를 건드릴 때에는 언제나 실용적 관심 하에서 도덕적 지평을 담론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그들이 생각한 ‘몸’의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몸은 기(氣)의 집적이다. 나는 천지의 기운과 부모의 정혈로 빚어진 한시적 생명이다. 코로 하늘을 들이 쉬고, 입으로는 땅의 음식을 먹는다. 이 연속이 몇 분이라도 끊기면 그는 생명을 잃을 것이다. 사람들은 또 어떤가, 주변의 동물, 식물과 풍경들…. 이들 모두 어찌 나와 무관하겠는가. 생명의 상호의존은 본질적이고, 우주는 전체적으로 하나이다. 이 지점을 각성하고 놓치지 않아야 우주의 ‘의미’를 구현하는 길이 열린다. 우리는 다만 ‘육신’의 욕구라는 좁은 지평 하에서만 사물들을 평가하고, 이용하는데 익숙하기에 이들과의 연속과 유대라는 지평을 평소에는 까마득히 잊고 산다.

몸이 개별성을 말살하면 질서의 이름으로 전체주의적 억압이 따를 것이고, 전체성을 도외시하면 저만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망나니가 될 것이다. 개인의 성숙이나 정치적 기술은 이 두 지평을 우호적으로, 쌍생적으로 저글링해 나가는 기술로 집약된다.

△ 몸과 마음의 관계는?
최: ‘신’은 ‘육신’-‘신체’처럼 형식적 외관적 몸(=魄, 얼)과 연관을 가지면서 ‘정신+인격+풍모+정서 등’(魂, 넋)의 심적 영역과 깊이 연결된 ‘주체로서의 몸’을 말한다. 그래서 이 ‘신’은 ‘심’과 항상 붙어있다. 반면 ‘체’는 육체(肉體), 존체(尊體), 옥체(玉體)처럼 ‘이목구비(耳目口鼻)+오장육부(五臟六腑)+발부(髮膚)’를 기반으로 하고 상대방(타자)과 구별된 개별체로서의 ‘신’과도 연속되지만, 주로 외관적 형식을 강조한 이른바 ‘대상으로서의 몸’을 말한다. 그래서 이 ‘체’는 ‘신’과 붙여서 말한다.

인간의 ‘몸’(신체)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기본적으로 생명과 연관해서 이해되며, 그 유한성을 벗어나기 위하여 다양한 이해와 해석이 있어왔다. 더욱이 몸은 마음, 정신과 깊은 관련 속에서 탐구되어 왔다. 폴 발레리는 몸을 ①개체적 몸(=자아적 몸)인 제1의 몸, ②사회적 공동체적 몸(=타아적 몸)인 제2의 몸, ③해부학적 의학적 조작적 몸인 제3의 몸, ④미지(열린, 텅빈)의 몸으로서 제4의 몸으로 구분하였다. 제1의 몸은 점이나 선에, 제2의 몸은 평면에, 제3의 몸은 시공간 내에, 제4의 몸은 초시공간에 대응해볼 수도 있다. 

몸과 마음은 결국 ‘언어’를 통해 ‘기술적 묘사’(descriptive portrayal)가 아니라 ‘표현적 묘사’(expressive portrayal)를 통해 그 자체가 자유롭고 ‘생기 있게’ 드러난다. 인간의 마음은 몸에 체화되어 ‘언어, 색채, 소리 등’을 매개로 인지적인 유동을 이루고, ‘표현적 묘사’를 통해 은유적, 상징적인 세계를 다채롭게 열어간다. 그래서 시, 문학, 예술, 과학기술, 종교로도 전이, 이동, 변환되며 세계와 나 사이를 만들어 낸다.

한: 최 교수가 적시한 폴 발레리의 구분에 따르면 동양 특히 유학의 전통에서 문제 삼은 것은 ①개체적 몸(=자아적 몸)인 제1의 몸, ②사회적 공동체적 몸(=타아적 몸)에 집중되었다. 이것이 도덕과 정치의 중심 주제였고, 나중 이 갈등과 그 초월의 테제에서 종교가 뛰어들게 된다. 윤리학적 테제는 그럼 단순해진다. 유교의 오랜 전통과 나중 주자학과 양명학, 그리고 서학의 도입이라는 복잡한 도정을 거치지만 원리는 단순하게 정리된다. 개체적 관심을 제어하고, 타자와의 유대를 강화하고, 질서를 존중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다.

퇴계가 사단과 칠정을 한사코 두 갈래로 이원화한 것, 그리고 율곡이 인심 도심조차 일원적 지평에서 읽으려고 한 것, 그리고 양명학이 이 규범의 내적 기원을, 즉 사회적 충동의 자발성을 역설하는 것, 그리고 이윽고  서학이 영혼과 육신의 이분법을 더욱 극적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 모두가, 이 기본 테제의 변주라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모두를 이학(理學)이라 부른다. 

몸의 시대, 아마도, 다들 아쉬울 듯도 하다. 그렇다. 정작 몸, 신체의 긍정적 자기 구현적 지평에 대해서는 전통이 매우 인색하지 않은가? 오랜 세월, 우리는 ‘도덕’의 이름 아래 ‘신체’를 학대했고, 질서의 이름으로 개성을 말살해온 것이 아닌가?  

또 하나를 성찰해야 한다. 과연 ‘의미’가 도덕에만 있는 것일까? 사회가 최소한의 필요로 개인에게 요청한 것을 절대적 목소리로 일치시켜도 되는 것일까? 그것은 혹 사회적 필요가 인간에게 강제하고, 내면화시킨 기만은 아닐까? 쇼펜하우어도 인간의 비참한 삶의 구원은 ‘예술’로만 가능하다고 했다. 몸의 기예를 최대한 세련되게, 미학적으로 끌어올린 곳에 구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음악, 미술, 문학 등의 창조적 작업이 지상의 몸이 이룩할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닌가 한다.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인문학부)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잊혀진 동아시아 고전의 덤풀을 헤쳐 왔다. 지은 책으로 『성학십도, 자기 구원의 가이드맵』 『붓다의 치명적 농담』 『조선 유학의 거장들』 『왜 동양철학인가』 등이 있다.

최재목 영남대 교수(철학과)
일본 츠쿠바대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동양철학(양명학), 넓게는 동아시아철학사상문화비교다. 한국양명학회장과 한국일본사상사학회장 등을 지냈다. 저서로『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내 마음이 등불이다: 왕양명의 삶과 사상』『노자』 등이 있다.

<체화인지연구단은>

<교수신문>은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의 융복합 연구가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첨단연구의 현장을 찾아 지식생산의 새로운 흐름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체화된 마음 연구 : 몸-뇌-세계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를 연구하고 있는 ‘체화인지연구단’이다. 체화인지연구단은 최근 인지과학 분야에서 마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는 ‘체화된 마음 이론(theory of embodied mind)’을 2021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인문사회분야 일반공동연구 지원사업(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주관)으로 수행하고 있다. 

체화된 마음 이론은 내재주의와 뇌 중심주의에 치중하고 있는 현재의 ‘마음 연구’를 극복하기 위한 인지과학 이론으로, 1990년대 이후로 해외 학계에서는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체화인지연구단에서는 철학, 문학, 미학, 인지과학, 법학, 영화학, 의학 등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모여 융복합적으로 체화된 마음을 연구한다. 

이번 특별기획에는 20명의 교수·연구자가 참여한다. 연재 주제별로 체화인지연구단 연구자와 관련 외부 전문 연구자의 대담 형식으로 풀어내 자유롭고 생생한 담론을 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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